단편

당신의 첫 번째 선택

<span class="sv_member">에메트</span>
에메트 @acidcatsle
2026-02-21 01:34

01.

 

“그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아이렌은 반사적으로 열리려던 입을 꾹 닫았다. 지금까지 들은 어떤 목소리보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금발의 청년, 라세인의 얼굴은 처음 만난 날부터 계속 이어진 아이렌의 거부반응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착한 일을 해서 부모님의 칭찬을 받으면 행복하게 웃었던 아이렌의 손이 유일한 도피처인 쿠션을 강하게 쥐었다. 구름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하늘을 눈에 간직한 라세인의 손이 언제나처럼 쿠션에 얼굴을 묻으려는 아이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길은 언제나 아이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부모님과는 거리가 멀었다.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서 쿠션을 적셨다.

 

아이렌이 허락한 거리에 앉아있던 조용히 라세인이 일어났다. 일어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걸음을 옮긴 라세인이 방을 나가서 가져온 것은 휴지 한 통이었다. 아이렌의 옆에 휴지를 놔둔 라세인이 방 밖으로 나가자 혼자가 된 아이렌은 쿠션을 내려놓고 휴지를 뽑았다. 눈물은 라세인이 가져온 휴지를 전부 쓸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02.

 

“당신이 지금 하는 일은 고집이야, 길잡이별.”

 

엘피스의 지적은 정확했다. 라세인이 아니어도 아이렌을 맡아줄 사람은 많았으니까. 하지만 가족의 죽음으로 받은 충격이 회복되지 않은 불안정한 아이를 바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보낼 수는 없었다. 그것이 라세인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 아이가 스스로 결정할 여유가 생기는 순간까지는 참아줬으면 좋겠어.”

“그 아이가 당신의 곁에 있기를 바란다면?”

“불가능한 일이야.”

 

시간이 흐르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그 아이가 평범한 일상과 거리가 먼 자신을 선택할 리가 없다. 단언하는 라세인을 보며 한숨을 삼킨 엘피스가 말했다.

 

“눈에 선하군.”

 

지금 한 말이 현실이 되어서 당황하는 당신의 얼굴이.

 

 

03.

 

엘피스와 나눈 대화가 현실이 되었기 때문일까. 당황한 표정을 금방 얼굴에서 지울 수 있었던 라세인은 자신의 옷자락을 꼭 쥐고 놓아주지 않는 아이렌을 보았다. 입 속에 맴도는 많은 말들을 정리한 라세인이 아이렌. 하고 이름을 부르자 아이렌이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가득한 얼굴을 닦아줄 휴지가 없음을 아쉬워하며 라세인이 말했다.

 

“내 곁에 있으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어.”

“알아요. 하지만 내가 가진 능력도 평범한 일상과 어울리지 않잖아요.”

“그대는 어리고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평범한 일상을…”

“그 일상은 거짓이에요, 라세인.”

 

아이렌은 착하고 마음이 약했다. 이렇게 고집을 부려도 열심히 설득하면 상처를 감추려고 애쓰면서 현실을 받아들이겠지. 하지만 그것이 옳은가. 정말로 옳은가. 온실 속에서 곱게 키워진 화초처럼 살다가 세상에 나와서 다양한 일을 겪고 성장했던 경험이 있는 청년은 결국, 소녀와 눈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푸른 눈과 갈색 눈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나는 좋은 보호자가 될 수 없어. 언제나 그대보다 세계를 우선할 거야. 그런 나쁜 보호자와의 삶을 바란다면―”

 

내 손을 잡아, 아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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