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하고 질투하는 나의 용사
세계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예언을 받은 용사, 에르위니아 레일리안을 죽이라는 임무를 받은 라세인 데 루베르니겔의 얼굴은 담담했다. 전장에 나가서 생명을 빼앗았을 때보다 쉬운 일이었다. 더욱이 상대는 용사라고 불리고 있었지만 무기도, 자신이 가진 힘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할 정도로 미숙한 또래의 소년이었다. 긴 기다림 끝에 찾아온 첫 번째 기회에서 라세인은 에르위니아를 죽이지 못 했다.
용사가 되는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는 이야기가 정말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세계를 위해 노력하는 소년을 죽일 정도의 매정함이 라세인 데 루베르니겔에게는 없었다. 임무를 실패한 라세인의 마음에 스며든 에르위니아는 라세인을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 했던 세상을 선물했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첫 사랑도 에르위니아가 선물한 세상에서 만났다. 하지만, 라세인이 처음으로 마음에 담은 소중한 사람이 바라보는 곳은 라세인이 아닌 에르위니아였다.
어디서나 찬란히 빛나는 용사. 그러나 라세인이 동경하고 질투했던 용사는 예언대로 세상을 멸망시켰고, 살아남은 라세인은 새롭게 만들어진 세상에서 자신의 실패가 가져온 결과를 곱씹었다.
많은 죽음과 끝없는 절망.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경험시키고 싶지 않은 끔찍한 결과 속에서 부유하던 라세인을 꺼낸 사람은 깼네. 잘 잤어, 라세인? 이라고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인사했지만 예전과 분위기가 달라진 에르위니아였다.
“그대도 무사했군, 에이린.”
“어마어마한 빚을 졌으니까 죽을 수 없잖아.”
“빚인가.”
“그래, 빚이야. 하지만 라세인은 나처럼 짊어질 필요가 없어. 자기가 하는 짓이 뭔지도 몰랐던 내게 휘말렸을 뿐이니까. 나를 탓하고 평범하게 살아.”
“그럴 순 없어.”
많은 것을 봐버렸거든. 나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라세인의 손을 잡은 에르위니아의 두 눈이 천천히 다른 색으로 물들었다. 금색과 은색으로 변한 두 눈에 라세인의 모습이 비쳤다.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길이 있어, 라세인.”
같이 걸어볼래?
임무를 실패했던 당시에 에르위니아가 선물했던 세계보다 더욱 낯선 세계가 펼쳐지리라는 예감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군신의 사제는 세계를 멸망시킨 용사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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