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
자신이 움직이면 분명 그녀가 나설 것이라는 날카로운 지적을 받은 가혜는 원래 맡고 싶었던 역할을 포기하고 맡은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 연회장에 섰다. 레이디. 라는 낯선 호칭으로 부르며 다가온 사람들이 손을 뻗었으나 파트너가 있어서. 라는 냉정한 거절로 쳐내며 레오가 보내준다고 약속한 파트너를 기다리던 가혜는 자신의 거절에도 새하얀 장갑을 낀 손을 거두지 않는 용기 있는 남자를 은색 눈으로 바라보았다. 앞머리를 전부 넘긴 은발의 남자였다. 무늬가 화려한 가면 속의 검붉은 눈이 가혜의 모습을 담았다.
아카르 르 메르바하. 인간의 복장으로 화려하게 꾸미고 제 앞에 등장한 이 남자가 레오가 보내준 파트너란 사실을 깨달았음에도 가혜는 금방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레오의 제안을 수락한 그의 행동에는 어떤 속셈이나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그의 파트너가 되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라고 판단한 후에야 가혜는 아카르의 손에 자신의 손을 순순히 넘겼다.
자리를 연회장의 중앙으로 옮기자 아까보다 빠른 템포의 선율이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가혜가 직접 선택한 첫 파트너는 난폭하고 거친 리드로 춤을 시작했다. 아카르가 의도한 그의 발을 밟는 대실수를 자신의 반사 신경으로 겨우 피한 가혜가 얼굴을 찡그렸다.
"최악의 리드군."
"제가 어떻게 리드해도 따라오실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대."
차가운 물을 그 반반한 얼굴에 부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짜증나는 소리를 하고 있는 팔카셰룬의 대공작은 적응됐는지 더 이상 자신의 의도에 넘어오지 않는 가혜를 웃으며 칭찬했다.
"천제의 누님께서 춤에 능하다는 소문은 사실이었군요. 정말 감탄했습니다, 그대."
"내가 그대의 칭찬에 감사의 말을 하리란 기대는 없겠지."
"아예 없지는 않았죠."
"마왕들을 대표하는 그 혀에 사는 뱀은 수 백 마리였군."
"칭찬 감사합니다. 이 칭찬의 답례는 다음 스텝이 끝난 후에 드리죠, 그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라서 차단하고 있던 감정공유의 능력을 푼 가혜는 자신이 느끼는 아카르의 감정이 흥미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인지. 아니면 개입으로 만든 이 웃기지도 않는 상황인지. 아카르에게 어느 쪽이 흥미롭냐고 물을 생각이 없었던 가혜는 입을 다물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다. 예고해준 대로 다음 스텝이 끝나자마자 답례가 찾아왔다. 답례를 잘 넘기고 연회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안무로 시선을 집중시킨 순간, 반주자들의 연주가 끝났다. 많은 시선을 무시하며 가혜는 파트너가 되어준 아카르의 손을 놓았다.
"안무까지 즉흥적으로 넣을 줄은 몰랐네요. 즐거웠습니다, 그대."
"할 일이었으니까. 다음 파트너는 제대로 리드하길 바라지, 은의 대공."
"오늘의 파트너는 당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혼돈의 부탁이라서?"
"부탁과 관계없이 저는 제 역할을 잘 아는 사람이라서요. 제가 퇴장할 시간 역시 잘 알고 있죠, 그대."
감사하지 않은 얼굴로 그것 참 감사하군. 이라고 말한 가혜는 자신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다음에 만나죠. 라는 작별인사를 남기고 연회장을 떠나는 아카르의 모습을 바라보다 발코니로 향했다. 불쾌한 도움이었고 짜증나는 춤이었지만 시선은 확실히 끌었다.
"이제부터는 전부 그대에게 달렸어."
자신만이 아니라 그 은의 대공까지 미끼로 사용한 이 거창한 작전이 성공하길 바라며, 발코니에 도착한 가혜는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
혜아랑 아카르.
비즈니스 파트너.(세계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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