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인간
에르위니아나 라세인은 별의 멸망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맹약자가 된 모양이지만, 코류는 그렇지 않았다. 지구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평화로운 고향, 라엔쿠르에 비해 재미있는 별이었지만 코류는 긴 시간을 사는 신수였다.
지구라는 별의 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저주도, 아주 작은 파문 하나만이 변화의 전부인 일상도 지지부진.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때에 가게로 찾아온 사람이 로비사였다. 주시하는 자라 불리는 별의 미래를 보는 힘을 가진 아름다운 은발의 여성이 물었다.
“지루해요?”
정체도 밝히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이 아름답지만 무례한 여성에게서 코류는 자신의 세계를 바꾼 스승, 알테시에스와 만나던 날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녀를 따라가면 무언가가 바뀔 것이다. 근거라고는 조금도 없는 강한 예감이 코류가 맹약자가 된 이유였다.
로비사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시작하게 된 맹약자의 삶은 예상대로 지루하지 않았다. 지루할 틈이 없이 바빴고, 저주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다양한 방면으로 알아보고 시도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로비사의 능력을 끌어다 쓸수록 강제로 보는 미래만큼은 달갑지 않았다.
자신의 두 눈으로 본 선명한 미래와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행동하는 기분이 얼마나 처참한지. 꼭 운명이라는 실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가 된 기분을 지울 수 없어서 이번에는 그 흐름을 거부하려고 했다. 하지만 미래에서 본 작은 손이 생을 바라며 제 옷을 잡은 순간, 코류는 지금까지 느꼈던 처참함과는 조금 다른 기분을 느꼈다. 이 작은 손의 주인이 생이 갈망하는 모습이 조부에게서 도망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 그 때의 자신과 닮았기 때문일까.
“로데가 옳았네.”
이 문제로 코류가 투덜거릴 때마다 로비사는 말했다. 본 미래와 똑같이 말하고 똑같이 행동한다고 해도 자신은 자신이다. 로비사가 옳았다. 미래를 보았더라도 이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그러니 처참함을 느낄 필요는 없다. 주시하는 자처럼 운명을 자신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코류의 손이 황혼의 숲에서 태어났으나 마녀가 되지 못한 인간의 손을 잡았다.
“그래, 바라는 대로 네 주인이 되어줄게.”
난 네가 오늘 한 선택을 후회할 나쁜 주인이 되겠지만 살아가자.
- 이전글돌아오지 않을 26.02.21
- 다음글백은의 꿈이 끝난 감청의 새벽 26.02.2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