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나와 춤출까요

<span class="sv_member">에메트</span>
에메트 @acidcatsle
2026-02-21 01:28

별을 담은 이름이 어울리는 운명을 지닌 탓에 별 반짝일 혜라는 글자를 이름에 넣을 글자로 받은 금발의 소녀, 가혜는 어렸을 때부터 반짝였다. 어둠에 먹히지 않는 빛. 아비의 혈통을 증명하는 은안만은 죽는 그 날까지 인정받지 못할 테지만, 가혜는 눈을 물들인 색깔 이상으로 밝게 성장했다. 밝게. 누구보다 밝게. 그렇게 성장하던 가혜에게도 불행은 찾아왔다.


첫 번째 불행은 사랑하던 어미였다. 혜아, 괜찮아. 불안을 누르기 위해 속삭이는 목소리가 거짓임을 알았음에도 어린 가혜는 믿었다. 어미의 손을 잡고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그 믿음을 비웃는 운명에 의해 가혜는 결국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온기도, 속삭이는 목소리도 선명한데 다시는 만날 수 없다니. 무력했던 자신이 싫었던 가혜는 힘을 얻기 위해서 검을 들었다. 반복하지 않으려면 힘이 필요했다. 아름다운 금색의 머리에 붉은빛이 돌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었다.


두 번째 불행은 상냥한 오빠였다. 오빠를 위로해주기 위해 건넸던 서툰 위로가 원인이 되어 어떤 날보다 크게 싸웠지만, 늦은 시간에 밖으로 나가는 오빠를 외면할 정도로 매정한 동생도 되지 못 했던 가혜는 반복하지 않으려고 얻었던 힘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그 날, 깨달았다.


원하던 힘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개처럼 달려든 사내에게 물린 순간에도 터지지 않았던 눈물이 터졌다. 호흡하는 순간순간마다 뭔가에 짓눌리는 기분으로 고통을 견뎠으나 한계였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 가혜는 별을 담은 이름이 어울리는 운명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비웃으면서 지키기 위해 들었던 검으로 자신을 해한 뒤, 혼미한 정신으로 찾아올 죽음을 기다렸다. 주마등이 사라지기 직전에 보인 것은 금빛 실처럼 반짝이는 제 머리카락이었다. 자신에게 찾아온 죽음이 어린 날의 자신이라니. 가혜는 돌아가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는 어린 날을 바라보던 눈꺼풀을 나직한 한숨과 함께 닫았다.


가혜에게 조금 더 살고 싶다는 마음을 심어준 것은 광망의 마녀라고 불리는 마녀였다. 끝내 버리지 못한 검을 챙기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마녀가 건넨 잘 가, 혜아. 라는 인사를 받은 가혜는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지만 마녀는 애매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시 만나지 못 하리란 사실을 말할 수 없는 마녀의 씁쓸함을 담은 표현이었다는 것을 지금의 가혜는 알았다.


고향의 비보다는 거칠었지만 마음을 부드럽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고향의 비와 똑같은 푸른 별의 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푹 젖어버린 가혜의 몸이 움직였다.

거세어질 기미가 없는 비를 파트너이자 연주가로 삼은 춤에는 관객도 없고, 호응도 없었지만 가혜의 춤은 언제나 자신을 위한 춤이었다. 자신이 원한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춤에서 마지막으로 새가 된 가혜의 춤이 끝났다. 박수 대신 그녀의 머리 위에 얹어진 포상은 우산이었다. 비를 막아주는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움직인 가혜의 은색 눈은 자신의 갑작스런 잠적에 가장 마음이 애탔을 사람의 모습을 담았다.

검은 머리카락을 낮게 묶은 금안의 청년은 가혜와 혈육이라고 알리려는 것처럼 가혜와 닮아있었다. 청년은 어렸을 때부터 가혜를 바라보며 병아리처럼 따라다니던 그녀의 막내 동생, 진유였다. 걱정의 빛이 가득한 금안으로 가혜를 바라보던 진유는 가혜의 젖은 어깨에 들고 온 겉옷을 둘러주며 말했다.


“감기 걸리겠소, 누님.”

“누우면 네가 간호해줄 테니 한번 정도는 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감기에 걸려도 내 간호보다는 요양을 선택할 누님이란 사실을 잘 아는 이 동생을 놀리지 마시오.”

“반쯤은 있었는데 누우면 가의까지 화낼 테니 포기하마.”

“언제 카일리움으로 돌아올 거요?”

“가고 싶을 때.”

“누님에게 수작 거는 이상한 자들은 없었고?”

“넌 걱정이 너무 많아, 진유.”


벌이야. 언제 돌아가는지는 말해주지 않겠다.

생각하지도 못한 벌을 받고 누님~이라고 칭얼거리며 철회를 요청하는 진유를 보던 가혜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운명이 어째서 별을 담은 이름이 어울리는 운명인지는 여전히 알지 못 하는 가혜는, 쏟아지는 동생의 잔소리를 멈추기 위해 진유가 든 우산을 빼앗아서 멀리 던져버리는 짓궂은 장난을 쳤다. 가혜가 던져버린 우산을 눈으로 쫓는 진유의 손을 가혜의 손이 잡았다. 순탄하지 않은 인생의 굴곡을 증명하듯 곱지는 않은 감촉이었다.


“리드는 내가 할 테니 춤이나 추자.”


좋소. 라고 말하며 가혜에게 모든 것을 맡긴 진유의 발과 환한 얼굴로 진유를 리드하는 가혜의 발이 경쾌한 리듬의 음악을 연주하는 비에 두드려지는 땅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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