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복수

<span class="sv_member">에메트</span>
에메트 @acidcatsle
2026-02-21 01:28

유록은 자신이 혼자라는 현실에 빠르게 적응했다. 강해서도 아니고, 약해서도 아니었다. 절망하지 않고 나아가지 않고는 휘둘린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알려준 작은 아버지―가환이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날은 카일리움이 멸망하는 순간까지 오지 않겠지만.― 가환은 유록이 필요할 때면 적절한 도움을 주었다. 유록은 그 도움을 받으며 무럭무럭 성장하며 필요 없는 것들을 하나씩 버렸다. 웃음도 그 중 하나였다. 그래서,


카일리움에서 가장 높은 자리로 향하던 진유를 이해하지 못 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가 지은 미소가 눈에 박힌 탓이다. 왜 웃는 거야? 유록은 진유의 즉위식에서 내뱉었던 그 중얼거림을 주인공이 진유에서 다른 사람들로 바뀐 이 자리에서도 내뱉고 말았다. 그럴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대한 결혼이었다. 많은 천족들이 결혼의 주인공들을 축하했다. 유록도 축하했다. 동시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천제의 권력으로 그 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일은 포기하겠소. 긍지인 날개를 걸고 맹세하지. 하지만 누님이 그 건에 대응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오. 누님은 당사자니까.


누님―가혜가 당사자라던 진유의 말을. 미설의 피를 이어받은 천족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면, 유록의 조모인 미설처럼 공주라고 불리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을 가혜가 선택한 반려는 도연이었다. 앞뒤 꽉 막힌 장로들을 싫어하긴 했으나 도연은 항상 천제의 편을 들어주는 가주는 아니었다. 누구보다 냉정하고 공정하게. 이득을 챙기고 손해를 줄이며 자신의 자리와 기반을 단단히 한 도연은 유록에게 언제나 껄끄러운 상대였다. 살을 내어주고 이득을 취하는 진유보다 더.


장로들도 곧 도연이 얼마나 껄끄러운 상대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미래까지 자신이 책임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 유록은 금색 눈에 오늘의 주인공인 두 천족을 담았다. 카일리움의 결혼식에는 신랑이 신부에게 입을 맞추는 순서는 없었으나, 거래에 의해 이뤄진 결혼이라는 사실을 드러낼 수는 없으므로 가벼운 접촉과 시선은 오갔다. 오가는 접촉과 시선 속에서 유록은 자신이 내뱉은 중얼거림의 답을 찾았다.


유록이 어렸을 때는 무척이나 부럽게 생각한 은안에 사랑이 있었다. 아주 미세해서 유심히 보지 않으면 놓쳐버릴 사랑의 씨앗이. 은안이 아니라는 이유로 온갖 질시를 받으며 자란 천족은 가혜와 도연의 행복을 응원해주기로 했다. 그것이,


그녀가 자신에게 상처 입힌 세계에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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