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렸다
물렸다.
물린 것은 한참 전인데도 따끔하지 않은 목에 남은 잇자국 두 개는 아직도 거슬렸다. 나는 잇자국 위에 새 밴드를 붙이고 물병을 땄다. 악력이 없는 내 손은 예상대로 물병은 금방 딸 수 없었다. 몇 분의 씨름 끝에 물을 마신 나는 잇자국을 생각했다. 이 잇자국은 내 인생을 꼬아놓은 원흉이었다. 뱀파이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했던 괴물은 불쑥 나타나서는 내 목에 잇자국 두 개를 남기고 나를 태양 아래에서는 걸을 수 없는 몸으로 만들었다. 한 달간 나는 이 골치 아픈 몸을 알아보려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
없는 돈을 쪼개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기, 십자가 형태의 액세서리들을 잔뜩 사서 쳐다보기, 마늘을 왕창 넣은 불고기를 먹으려다가 실패하기 등등. 내가 한 모든 시도들은 다 나의 상태에 변화를 주지는 않았다. 내가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 없음만을 알려줬을 뿐이다. 예전처럼 살 수 없음을 깨달은 나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떠올렸다. 피. 뱀파이어는 피가 필요했고 밥은 나의 허기를 채워주지 않았다.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으로 구한 것은 마트에서 파는 작은 동물이었다. 작은 동물은 바닥을 긁고 싶을 정도로 한계에 달했을 때, 마셨다. 울면서 마셨다.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몸임에도 나는 버텨야 했고 살아야 했으니까.
제법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나는 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태양의 빛을 피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았고 내 유일한 정보통인 인터넷에 검색했다. 아르바이트는 나의 생을 이어주고 있었지만 정보는 참담했다. 결국 나는 얼마 전, 이 불행한 생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결심은 했지만 나에게는 용기를 줄 계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최후의 만찬이었다.
최후의 만찬. 마지막이 오면 먹고 싶은 그 음식을 이렇게 젊은 나이에 먹게 되다니. 나를 물어버린 뱀파이어를 향해 온갖 욕을 하며 최후의 만찬으로 먹고 싶은 것들을 찾았다. 편의점 도시락은 가장 먼저 제외했다. 허기도 채워주지 못 하면서 먹어야 했던 전자레인지 3분 혹은 5분 정도의 음식은 이제 진절머리가 났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인간일 때, 딱 한 번 갔었던 레스토랑에 예약을 했다. 통장을 긁어모아도 부족해서 아끼고 아끼던 게임팩들과 게임기들을 팔았다. 겨우 구매했던 N모 사의 게임기가 눈에 들어왔다. 정가보다 비싸게 구매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시간이 생각나 또 나를 물어버린 뱀파이어를 향해 욕을 했다. 그는 분명 유병장수 할 것이다.
죽을 방법은 태양으로 했다. 마늘을 먹으면 고통만이 오는 것 같았고, 십자가 형태의 액세서리는 소용이 없었으니까. 최후의 만찬을 먹고 태양에 의해 재가 되어 사라진다. 좋은 마지막이었다.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끝날 수 있는 마지막. 가끔 오는 부모님의 전화와 문자가 생각났지만 부모님을 인간에서 벗어나버린 나의 생에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유언 하나 정도 남길까. 아예 남기지 않을까. 고민하며 밖으로 나왔다. 여름으로 넘어가는 공기가 나를 맞았다. 인간일 때와 다른 것이 없는 공기인데도 우울했다. 직장에서 잘렸다는 말을 들은 그 밤 이상으로. 다음 월급이 나오면 바꾸겠다고 생각한 주머니 속의 휴대폰을 쥐고 걸음을 옮겼다. 바꾸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할부가 남아있었다면 죽겠다는 생각도 못 했을 테니까.
구한 집은 다행히도 전세였다. 보증금은 부모님께 가겠지. 월세가 아니라 전세를 구한 과거의 나에게 감사하며 밤거리를 목적지도 없이 걷다가 공원에 핀 장미를 발견했다. 붉은 색이 예쁘다. 밤이 아니라 낮에 더 예쁘겠지. 더 이상 태양 아래에 설 수 없는 몸이 생각나 울음을 터뜨린 그 순간, 안녕하세요.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방금 들은 인사는 분명 자연스러운 한국어였는데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낯선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어두운 금발의 외국 여성이라니.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네요.”
“종교는 기독교고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정해진 종교라서 다른 종교는 안 믿습니다.”
거친 목소리로 외국 여성을 향해 두다다 말을 쏟았다. 게임에서 잡았던 딜러 캐릭터로 네임드를 쓰러뜨릴 때도 이렇게 빠르게 쏟아본 적은 없었다. 답답한 마음이 그대로 쏟아진 거 같아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가는 발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흘끗 옆을 보았다. 외국 여성은 그대로 내 옆에 있더니 무언가를 내밀었다. 명함이었다. 왜 이런 전개가 이어지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전개에 눈을 깜박이는 내게 여성이 말했다.
“당신의 우울을 덜어줄 수 있을 거예요.”
죽기로 결심한 내게는 의미 없는 말이었다. 찢어버리려고 한 순간, 여성의 손이 닿았다. 나보다 더 차가운 체온이었다. 나는 그 차가운 체온에서 술 때문에 제대로 드문드문 끊겨있는 그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송곳니 두 개가 내 피부를 찢고 파고들었던 그 날의 기억. 술기운에 닿았던 그 사람의 손도 이렇게 차가웠다. 그것만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여성은 말없이 나를 떠나갔다. 혼자 남은 나는 여성이 준 명함을 손에 든 채로 생각에 잠겼다.
최후의 만찬이냐. 명함이냐. 셰익스피어가 욕할 정도로 어이가 없는 고민이었지만 내게는 중요한 고민이었다. 고민하던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명함을 받고 왔는데요.”
여성의 명함을 내밀자마자 접수원은 나를 이쪽으로 오세요. 라고 안내했다. 소독약 냄새가 짙은 병원에서 나를 맞이해준 사람은 어제의 외국 여성이 아니라 분홍 머리카락의 여성이었다. 염색인가. 굉장하다. 같은 생각은 여성의 눈을 본 순간에 전부 날아갔다. 여성의 눈이 금색이었다. 렌즈로는 구현할 수 없는 색이 나를 담았다. 현실에서 이런 비현실을 체험하다니. 그 날이 생각나서 온 몸을 떠는 나를 소파에 앉힌 분홍색 머리카락의 여자가 말했다.
“동족이네요.”
입만 뻐금거리는 나에게 그녀는 자신과 어제의 여성도 뱀파이어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어제의 여성을 그분이라고 칭했다. 그분은 당신을 도와주고 싶으셨나 봐요. 변덕이겠지만요. 그런 도움은 필요 없다고 말하려는 나에게 그녀가 컵을 내밀었다. 비릿한 냄새와 인간의 음식에는 동하지 않았던 식욕이 동하는 몸을 통해 나는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피였다. 인간의, 피. 작은 동물을 죽인 살인자임에도 이것만은 마시지 않으려고 했다. 이것을 마시면 정말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죽으려고 했는데,
“인간으로 살려고요?”
당신이 죽어도 그 이유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어요. 차라리 긴 시간을 걸으세요.
그녀가 덧붙인 말이 진실이었다. 알아주는 사람은 없고 나는 그냥 실종된 사람 하나가 될 뿐이겠지. 최후의 만찬과 명함 중에 내가 선택한 것은 이 명함이었다. 그 선택에서 나의 길은 정해진 것이다. 나는 컵에 든 피를 전부 마시고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금색 눈동자가 피를 전부 마시고 인간이길 포기한 나를 담았다. 입술에 피를 묻힌 내가 그녀의 눈 안에서 웃었다.
“맛있네요.”
정말 맛있다고 몇 번이나 말한 나는 휴대폰을 보았다. 아직 해결할 것이 많았지만, 나에겐 시간이 있었다. 나는 밴드를 떼어내고 질릴 정도로 긴 시간을 선물해준 송곳니를 매만졌다. 뱀파이어에게 물렸다.
얼굴도 모르는 뱀파이어가 남긴 잇자국은 이제 거슬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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