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새벽에 잠든 꽃

<span class="sv_member">에메트</span>
에메트 @acidcatsle
2026-02-21 01:22

산하엽. 비가 오면 투명해지는 하얀 꽃의 이름은 선명히 떠올릴 수 있었지만 눈꺼풀이 무거웠다. 끝. 자신이 태어난 세계를 오랫동안 지켜온 창조의 맹약자, 류아이렌은 지금 자신을 데려갈 마지막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쁘게 달렸다. 울었던 적도 있었고 힘든 적도 있었지만 아이렌은 제 삶을 포기하지 않고 내달렸다. 그 걸음을 멈추고 휴식에 들어갈 날이 왔을 뿐이었다.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산하엽의 향기를 맡으며 눈을 감자 많은 얼굴이 스쳐갔다.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만나고 싶다는 마음보다 강한 바람을 끌어안고 아이렌은 눈을 감았다.

마지막이었다.


밤과 아침의 사이에 자리한 아름다운 새벽빛을 맞이한 산하엽 향기를 맡으며 그의 가족은 잠들어있었다. 사실은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늦었다. 내가 너무 늦었다. 보호자와 피보호자이자 서로의 등을 맞댈 수 있는 동료로 함께 걸어왔음에도,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들어주지도 못한 라세인이 무거운 입술을 움직였다.


“미안해.”


사과의 말을 건넸음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던 라세인 데 루베르니겔은 자신을 사랑하는 신들에게 사적인 마음을 담아 바랐다. 아주 잠깐만 지금을 멈춰준다면 나는. 흐르던 모든 것이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멈춘다. 라세인은 자신을 사랑하는 신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바란 사적인 욕심을 들어줬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하는 가족을 하늘로 보낼 준비를 하지 못 했던 라세인은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라세인의 눈물은 시간이 다시 흐르고 비가 내린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별이 새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였다.


*
제가 사랑하는 캐들이라 실제 이럴 일은 없겠지만 썰로 풀었던 게 너무 쓰고 싶어서 썼습니다. 썰 풀때의 소재는 티아님께 도움을 받았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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