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순간과 지금

<span class="sv_member">에메트</span>
에메트 @acidcatsle
2026-02-07 19:08
“학교 어딘가에 마음을 비춰주는 신비한 거울이 있대. 카멜, 같이 찾아볼래?”

평온한 삶을 바라는 카멜리아 테슬라는 고개를 저었다. 단호한 거절에 아쉬운 표정을 짓던 소녀는 금방 화제를 돌렸다. 카멜리아는 화제를 돌리는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곧 대부분의 학생들이 호그와트를 떠나는 계절이 온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자신은 남겠지만 쓸쓸하지 않았다. 이젠 익숙해진 일상이었으니까.

*

대부분의 학생들이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떠나버린 호그와트는 조용했다. 늘 들려오던 학생들의 목소리가 전부 사라진 낯설고 평온한 세상을 느릿하게 걷던 카멜리아의 발이 목적지인 도서관 앞에서 멈췄다. 손을 내밀면 원하는 책을 얻을 수 있는 신비한 도서관 안으로 들어간 카멜리아는 자신이 원하는 책이 꽂힌 책장을 찾아서 넓은 도서관을 걸었다.
목적지인 책장에 도착했으나 카멜리아가 찾는 책은 책장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인기 있는 책은 아니었는데. 다른 책을 찾기 위해 책장을 떠나려던 카멜리아는 책장으로 다가오는 거침없는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거침없는 발소리의 주인은 옷을 장식한 파란색이 잘 어울리는 스트로베리 블론드의 소년이었다.
다니엘 로렌 윈체스터라는 이름을 가진 메탈에 가까운 차가운 회색 눈의 소년은 친구가 적은 카멜리아도 아는 유명인이었다. 호그와트에서 교수로 일하는 아버지, 로렌스 윈체스터의 하나뿐인 아들이란 점도 유명했으나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래번클로의 퀴즈였다. 답을 알아내기 위해 수많은 학생들이 토론까지 벌이는 어렵고 난해한 퀴즈를 3분도 안 되어서 해결해버리는 종잡을 수 없는 소년.
지나가다 마주친 적은 있었지만 한 번도 말을 섞어본 적 없었던 다니엘이 카멜리아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황금향은 여기에 없는데.”
“황금향이 아니라 책을 찾으러 왔어요. 손에 든 책, 혹시 다 보셨나요?”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책을 덮는 일을 다 봤다고 정의한다면 다 봤겠지.”
“그럼 책장에 꽂으시거나 제게 건네주시면 안 될까요? 꼭 읽고 싶었던 책이어서요.”

카멜리아의 제안을 들은 다니엘은 손에 든 책을 카멜리아에게 건넸다. 다니엘이 건넨 책을 감사합니다. 란 말과 함께 받은 카멜리아는 여전히 웃으며 자신을 보는 다니엘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에게 할 말이 있는 걸까?
궁금했지만 책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궁금증보다 컸던 카멜리아가 고개를 숙여서 작별 인사를 하고 책장을 떠나려는 순간, 카멜리아의 귀를 다니엘의 목소리가 두드렸다.

“다니엘.”

갑작스럽게 귀에 들려온 이름은 통성명을 하자는 뜻이겠지. 눈앞의 종잡을 수 없는 소년을 바라보던 소녀는 결국 입술을 열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학생들과 교수들만이 아는 제 이름을 입에 올렸다.

“카멜리아 테슬라에요.”
“클라이드군.”

눈앞의 소년, 다니엘이 상대방의 이름을 특이하게 부른다는 소문 정도는 카멜리아도 들은 적이 있다. 헛소문이라고 넘겼던 그 소문이 사실이었을 줄이야. 호그와트를 졸업한 미래에도 유명할 소년에게 카멜리아에요. 라는 대답으로 이름을 정정해준 카멜리아는 이번에야말로 책장을 떠났다.

“이상한 사람.”

들리지 않을 거리까지 와서 작은 목소리로 처음으로 대화한 래번클로의 소년의 첫 인상을 중얼거린 후플푸프의 소녀는 몰랐다. 소년이 도서관을 떠나는 자신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

기숙사가 달라서 또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다니엘을 카멜리아가 두 번째로 만난 장소는 안뜰의 분수 앞이었다. 동전을 위로 던졌다가 받는 동작을 반복하던 다니엘은 자신을 본 카멜리아의 인사에 처음 만난 그 날처럼 웃었다. 눈동자는 눈이 퍼붓는 겨울처럼 차가운 회색인데 웃음만은 신사처럼 부드러운 소년은 손바닥에 내려앉은 동전을 분수로 던졌으나 동전이 어디에 들어가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동전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안 봐요?”
“확인할 필요가 있나.”
“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는 사람들은 소원을 빌고 동전을 던지니까요.”
“전부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지는 않아, 클라이드.”
“빌지 않았어요?”

카멜리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다니엘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꺼낸 동전을 카멜리아에게 던졌다. 그리고는 카멜리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다니엘과 함께 있으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도, 안뜰의 분수에서 재회한다는 것도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었다. 다음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제 손바닥에서 햇빛에 반짝이는 동전을 바라보던 카멜리아는 눈을 감고 작은 소원 하나를 빈 뒤, 반짝이는 동전을 분수를 향해 던졌다. 던진 동전이 분수에 정확히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먼저 반응한 사람은 다니엘이었다.

“정확히 들어갔군. 이제 네 소원은 이뤄질까. 아니면 이뤄지지 않을까.”
“이뤄질 거라고 생각해요.”
“던진 동전이 분수에 들어가서?”
“안 이뤄지면 소원이 이뤄질 때까지 노력할 테니까요. 모든 소원은 그렇게 이뤄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방금 준 동전의 답례를 하게 해줄래요? 나랑 시간을 보내는 게 싫지 않다면요.
기꺼이. 라는 대답을 너무나도 빠르게 내어준 다니엘이 손을 내밀었다. 카멜리아는 내밀어진 그의 손을 잡았다. 신사에게 에스코트를 받는 레이디가 된 기분으로 안뜰을 나가던 카멜리아는 나란히 걷던 다니엘을 보다 요란한 소리에 놀라 걸음을 멈췄다. 클라이드. 다니엘에게 이름을 불린 순간, 카멜리아는 자신을 놀라게 만든 소리의 정체를 깨달았다.
심장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빠르게 뛰고 있었다.

*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빈 앞으로도 계속 평온하게. 라는 소원을 이루는 방법을 카멜리아는 잘 알았다. 머글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고 마법사의 세계에서 살면 된다.
마법사의 재능을 부여받지 못한 하나뿐인 오빠, 길버트를 피해 도망치듯 마법사의 세계로 온 카멜리아는 잔디밭에 누워서 눈을 감은 다니엘의 숨소리를 들었다. 나란히 눕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럴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용기라는 것을 마법사의 세계로 올 때 다 써버렸기 때문일까.

카멜리아보다 먼저 성인이 된 길버트는 사회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 일을 찾다가 도박에 중독되었다. 문을 무섭게 두드리던 소리가 싫어서 계속 자기만 하던 카멜리아를 구한 것이 호그와트의 편지를 가지고 온 먼 친척, 가드너 아주머니였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호그와트가 아니었다면. 생각에 잠겼던 카멜리아는 자신의 바깥으로 말린 머리카락에 조심스럽게 닿은 손길을 느끼고 손길의 주인인 다니엘을 보았다.

“이제 보네.”
“내가 보길 기다렸던 것처럼 말하네요.”
“맞아. 기다렸지.”

다니엘과 같이 있을 때면 얌전히 있지 못 하는 심장이 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다니엘. 카멜리아가 한숨과 함께 부른 이름에도 다니엘은 당당했다. 잘못한 게 조금도 없다는 듯이 당당한 소년이 몸을 일으킨 뒤, 카멜리아의 머리카락 한 움큼을 손에 쥐고 고개를 숙였다. 어떠한 감촉도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입맞춤을 받은 카멜리아의 얼굴이 사과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오해해요.”
“전에도 말했잖아. 오해하라고.”
“다른 사람들이 오해한다고요. 다니엘은…”
“상관없어.”

카멜리아.
잘 불러주지 않던 이름을 부른 다니엘이 카멜리아의 이마에 이마를 맞댔다. 가까워진 거리에 긴장해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 카멜리아의 손을 다니엘은 부드럽게 매만졌다. 긴장을 풀어주려는 것처럼.

“아까보다 훨씬 나은 표정인데, 클라이드.”
“다른 사람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봐요?”
“아니. 네가 처음인데.”

겨우 원래의 색으로 돌아온 카멜리아의 얼굴이 다니엘의 말에 다시 붉게 물들었다. 가까이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다니엘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매만졌던 카멜리아의 손을 놓아주었다. 이 사람은 자신을 놀리는 게 재미있는 걸까. 친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재미없다는 평을 들으며 살아온 후플푸프의 소녀는 두 손을 뻗었다. 용기를 내서 뻗어진 두 손이 다니엘이 목에 두른 목도리에 닿았다.

닿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 하는 카멜리아를 다니엘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듯이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는 다니엘을 카멜리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음에도 심장은 요란하게 뛰었다. 다니엘에게 이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 정도로.

“내가 목도리를 빼앗아서 도망가면 어쩌려고 가만히 있어요?”
“빼앗고 싶어, 클라이드?”
“아뇨. 잠시 두르는 걸로 충분해요.”

부정의 뜻으로 고개를 휘저은 카멜리아가 목도리에 닿았던 손을 내리자 다니엘은 자신의 목에 두른 목도리를 풀었다. 그리고 목도리를 놔두고 와서 허전해 보이는 카멜리아의 목에 푸른 목도리를 둘렀다. 허전했던 목에 두르게 된 목도리에서는 다니엘의 향이 났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향에 감싸인 카멜리아가 입술을 열었다.

“다니엘이 준 동전으로 빌었던 소원은 앞으로도 계속 평온하게 해달라는 거였어요. 내 일상은 평온이랑 거리가 멀었으니까요. 그런데 자꾸… 욕심이 나서 평온이랑 거리가 멀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해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
“오늘도 다니엘은 내가 가장 원하는 말을 해주네요. 맞아요. 영원하지 않으니까 소중한 거죠. 순간이. 그리고…”

지금이.
다니엘만 겨우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덧붙인 카멜리아의 손이 다니엘의 손을 잡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다니엘을 올려다보았다. 가장 원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인지 용기가 났다. 그래서 카멜리아는 자신의 심장이 요란하게 뛰는 이유를 말하기로 했다. 이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괜찮았다. 그 정도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들어줄래요, 다니엘?”

카멜리아 테슬라는 다니엘 로렌 윈체스터가 좋았다.

*

비밀의 방에 거침없이 들어가는 다니엘을 따라간 카멜리아는 멈춰선 다니엘의 앞에 있는 큰 거울을 보고 언젠가 친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만약 저 거울이 친구가 말했던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이라면 밀려오는 두려움에 걸음을 멈추고 나아가지 못하는 카멜리아를 다니엘이 불렀다. 클라이드. 언제나 자신을 재촉하지 않고 늘 기다려주는 사람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든 카멜리아는 어느새 두려움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저 거울이 정말로 그런 거울이라고 해도.

“가요. 갈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줘요, 다니.”

지금은 괜찮다고 생각하며 웃는 카멜리아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인 다니엘의 손을 잡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은 두 사람을 비췄다.
서로의 지금을 함께하기로 한 두 사람의 순간을 축복하듯 오래도록.


*
티아가 리퀘해준 호그와트 에유 다니카멜을 1월 1일에 짜잔~하고 들고 온 스피나.^~^
새해 복 많이 받고 올해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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