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마녀에게
왕의 자식은 둘이었지만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은 자식은 왕자뿐이었다. 처음 태어난 자식이자 첫 번째 왕비가 낳은 공주는 왕자와 다르게 축복받지 못 했다. 말을 배우기도 전에 별궁으로 옮겨진 갓난아이. 이 부조리한 상황에 연민의 시선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했다. 공주는 마녀였으니까. 가시덤불 모양의 멍을 지녀서 언젠가 사망하게 될 반쪽자리 마녀지만 공주였기에 성은 가질 수 없었지만 이름은 붙었다. 나스카. 그리고 어른들의 사정으로 나스카에게 붙여지게 되어 그녀의 약혼자가 된 사람이 루드베키아 변경백의 막내아들인 테미르디케 아일라 루드베키아였다.
사랑하는 딸이 하루라도 더 살기를 바란 첫 번째 왕비의 부탁을 변경백이 거절하지 못한 결과였다. 당사자인 테미르디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낙천적으로 보지 않았지만 비관적으로 보지도 않았다. 약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을 약혼시킨 점은 불만이었지만 나스카는 좋았으니까.
“체스는 어제 했으니까 오늘은 다른 놀이를 하자, 디케.”
테미르디케보다 1년 빠르게 세상에 태어난 나스카는 사람들이 퍼뜨리는 소문과 다르게 동생인 왕자에게 저주를 걸 정도로 사악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붙은 마녀라는 칭호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강하게. 하지만 이 거부감을 사람들 앞에 보여줘도 이미 나스카를 마녀라고 취급하는 사람들은 진실을 믿지 않으리라. 왜곡된 진실을 믿고 자신이 별궁으로 간다는 사실에 화를 냈던 어머니와 쌍둥이 누나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운 테미르디케는 나스카를 따라 별궁 밖으로 나갔다.
“약초 찾기 놀이를 하려고? 그 놀이의 어떤 점이 재미있어, 나스?”
“분명 도움이 될 거야. 그래서 찾는 거야.”
반쪽자리 마녀였지만 점술에는 재능이 있는 나스카의 말에 테미르디케는 약초를 찾던 것을 멈추고 나스카를 보았다. 나스카가 점을 치는 자들과 비슷한 말을 할 때면 자신과 그녀에게 정해진 이별의 시간이 더 빨리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몄다. 얼굴에 뚜렷하게 드러난 불안감을 알아챈 나스카의 손이 테미르디케의 뺨에 닿았다. 생일에만 이 별궁에 배달되는 인형을 매만지듯이 쓰다듬는 손길을 테미르디케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여는 다른 사람한테는 안 이래. 귀하니까 이러는 거야, 나스.”
“알아. 나도 디케가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순순한 건 싫어.”
정말로 싫어. 라고 덧붙이며 약초 찾기를 그만둔 나스카의 두 팔이 테미르디케를 끌어안았다. 아직은 나스카의 키가 더 컸지만 언젠가는. 그녀의 키를 추월한 멀지 않은 미래를 그리며 테미르디케는 자신에게 허락된 나스카의 이름을 불렀다.
“나스.”
이별의 시간을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했음에도 나스카가 사라져버릴까 두렵다는 마음을 품은 모순적인 자신을 나스카가 눈치채지 못 하길 바라면서.
나스카의 어머니인 왕비가 테미르디케를 약혼자로 정한 이유는 테미르디케의 특수한 체질 때문이었다. 그는 저주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루드베키아 가문에서는 불문에 붙였지만 딸을 하루라도 더 살리기 위해 이곳저곳을 수소문한 왕비의 귀에 그 정보는 결국 들어갔다. 왕비는 많은 것을 지불하고 테미르디케를 별궁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테미르디케는 나스카의 저주를 늦추기 위해 그녀의 손을 잡고 나란히 누웠다. 지금은 손이었지만 저주가 더욱 진행되면 손으로는 무리겠지. 그때는 더 깊은 접촉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은 왕이 붙여준 스승이었다. 그때도 별궁에 있을까.
생각에 잠겨서 얼굴을 찡그리던 테미르디케를 제 찡그려진 얼굴을 매만지는 나스카의 손길을 느끼고 고개를 나스카 쪽으로 틀었다.
“벌써부터 얼굴 찡그리지 마. 예쁜 얼굴이 망가지잖아.”
“망가지면 도망갈 건가? 저 멀리?”
“안 도망가.”
너야말로 도망가지 마. 라고 말하며 테미르디케와 거리를 좁히는 나스카에게는 간절함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선고 받은 자의 간절함. 테미르디케는 그 간절함을 온전히 품어줄 수 없는 어린 자신을 원망하며 나스카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댔다.
“시간이 멈추는 마법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럼 여와 나스의 시간을 멈출 텐데.”
“시간이 멈추면 네가 원하는 어른이 될 수 없어, 디케.”
“그렇군. 그럼 시간이 빨리 가길 바라야겠어.”
“시간에게 불가능한 일만 바라네.”
정말 어리다니까. 하고 등을 토닥이는 나스카의 손길을 느끼며 테미르디케는 눈을 감았다. 테미르디케가 다른 사람에게는 어린애 취급을 받으면 싫어한다는 사실을 나스카는 아직 모른다. 아는 날이 오더라도 이렇게 대했으면 좋겠다. 테미르디케는 그녀에게 마음껏 어리광 부리는 일을 좋아했으니까.
공주가 왕자에게 저주를 걸어서 왕가를 파멸시킨다는 나쁜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왕은 별궁에 살던 나스카와 테미르디케를 북쪽으로 보냈다. 나스카가 21살. 테미르디케가 20살에 벌어진 일이었다. 옷과 약초들 외에는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은 두 사람의 새로운 보금자리는 잿빛의 성이었다. 다른 나라와의 경계까지 보내지 않은 것이 왕의 자비였다. 왕의 눈도 왜곡된 진실에 멀어버린 것이 아니길 바라며 테미르디케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돌아다니는 나스카의 뒤를 쫓았다.
“눈이 많네. 디케, 이거 봐.”
어제까지 불덩이인 몸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밝은 모습의 나스카는 금방 녹아버리는 눈을 두 손에 쥐었다. 나스카의 체온을 견디지 못한 눈이 녹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스카가 테미르디케를 바라보았다.
“나도 녹을까?”
“나스.”
“녹는다면 네 손에 흔적을 남기고 녹았으면 좋겠어.”
네가 나를 잊지 못 하도록.
이미 영원히 잊지 못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을 삼킨 테미르디케는 다시 눈을 쥐려는 나스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뒤, 아직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입맞춤을 나스카에게 선물했다. 서툴렀지만 깊고 뜨거운 입맞춤이 끝나고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다. 입맞춤의 여운으로 붉어진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나스카를 보며 테미르디케가 말했다.
“결혼하자, 나스.”
둘만의 결혼식을 하자. 그리고 여가 귀하를 영원히 잊지 못 하게 만들어줘.
나스카가 20살이 되었을 때부터 몇 번이나 했지만 거절의 답 밖에 얻지 못 했던 청혼이었다. 이번에도 거절하려는 듯이 제 품에서 벗어나려는 나스카를 품에 가두고 팔이라는 감옥에 구속한 테미르디케가 말했다.
“이번에는 거절하지 마. 여는 귀하의 것이니까.”
차가운 눈 속에서 진심을 드러냈기 때문인지,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온기를 가진 유일한 사람이 눈앞의 자신 밖에 없어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스카는 그 청혼을 승낙했다. 두 사람은 반지를 나누는 대신 서로의 손을 마주 잡은 후, 한 번 더 입을 맞추고 잿빛의 성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간 두 사람은 오래도록 나오지 않았다.
서로에게 자신을 잊을 수 없는 영원한 흔적을 남기듯이.
*
디케나스 3주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하합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새 3주년이 되었네요! 3주년 기념 연성으로 뭘 쓸까 고민하다가 머릿속에 스쳐간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 하는 시절부터 단단히 묶인 디케나스가 보고 싶어서 에유로 써보았답니다. 쏘님이 즐겁게 읽어주시면 좋겠어요~!^3^
3년이란 긴 시간 저랑 디케랑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쏘님이랑 나스 제가 많이 좋아하고 사랑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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