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tto
적응하지 못 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었다. 해린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3일간 돈으로 자신을 묶어둔 의뢰인이 바라는 대로 파티에 참석하기는 했지만, 파티의 분위기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른 가수의 노랫소리가 약간의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춤을 추기에 알맞은 곡을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부르는 가수를 해린은 진짜 색을 덮어버린 렌즈를 착용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대의 조명에 반짝이는 드레스는 인어의 꼬리를 연상시키지 않았고, 가수의 목소리 역시 해린이 사랑하는 목소리와 많이 달랐다. 가수의 오른쪽 가슴에는 문신도 없었다. 벨(Bell). 누구의 이름인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몸에 새길 정도로 소중한 이와 관련되었다는 사실은 해린도 어렴풋이 짐작했기에 문신에 관련된 질문은 입에 담지 않았다. 많은 경험은 해린에게 상처를 터뜨리는 것만이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해린이 사랑하는 테리어드 역시 알고 있으리라.
해린이 사는 집의 진짜 주인이며 해린의 연인인 테리어드는 오늘도 자신의 성인 몬도 카네에 있을 것이다. 천적이라는 단어로 불리던 과거에 헤집어놓았던 그 가게의 부활을 해린은 제법 반겼다. 얼굴이나 표정에는 티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테리어드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반응을 보고 픽 웃은 테리어드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던 해린은, 테리어드에 대한 생각으로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한 일과 관계없는 자신의 표정을 추슬렀다.
“아, 여기 있었군. 오늘이 가기 전에 자네에게 소개할 사람이 있네.”
3일이 지나면 끝나는 관계임에도 해린을 자신의 액세서리처럼 부려먹었던 의뢰인의 목소리가 표정을 추스른 해린의 귀를 두드렸다. 해린은 시간을 확인하고 얌전히 의뢰인의 뒤를 따랐다.
*
가면이 신체적인 특징 전부를 가려주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가면을 사랑했다. 파티의 규칙이라며 의뢰인이 건네준 눈만을 가리는 심플한 단색의 가면을 쓴 해린은 화려한 가면을 쓴 아름다운 금발의 여성이 자신이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눈치 챘다. 가면을 썼다고 그 여성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그건 자신의 기억이 날아갔거나 자신의 몸에 다른 사람의 영혼이 빙의되었다는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상황에 자신이 당첨되었다는 불운한 경우뿐이리라. 해린은 고개를 숙였다. 의뢰인은 여성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지만 해린은 그녀의 이름 전부를 알았다. 미스 티아. 그리고 테리어드 W. 매저즈. 어느 쪽도 부를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이 아쉽다고 생각하며 해린은 테리어드가 내민 손을 잡았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들었어요. 아쉬우시겠네요.”
“저보다 더 좋은 사람이 만나실 겁니다. 세상은 넓고, 경호원 역시 많으니까요.”
하지만 발코니에서 보는 풍경은 놓치면 후회가 남으실 풍경이니 꼭 보셨으면 좋겠군요.
꼭이라는 말은 강조하지 않았지만 테리어드는 해린이 하는 말의 뜻을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죠. 손등에 키스하고 싶은 욕망을 누르며 해린은 자신을 또 액세서리처럼 써먹으려는 의뢰인에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지금 가지 않으면 짙은 후회를 남길 발코니였다.
“내가 알아채지 못 하리란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은 모양이군요.”
먼저 도착한 테리어드의 목소리가 해린을 반겼다. 늦지 않으려고 했는데 의뢰인을 떨쳐내는데 조금 시간이 걸린 모양이었다. 늦어서 미안해요. 사과의 말을 건넨 해린은 아까 전에 눌렀던 욕망을 더 이상 누르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다. 테리어드의 손등을 잡아 가볍게 입을 맞춘 해린이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니까 올 거라고 믿었습니다.”
“미리 둘러봤는데 안에서 이야기 한 것만큼 후회가 남을 풍경은 아니던데요. 왜 그런 말을 했죠?”
“혼자 있으면 후회가 남을 풍경이 아니지만 당신이 있으면 달라지죠.”
테리어드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물어보지 않고 해린을 보았다. 키가 큰 테리어드가 내려다보고 키가 작은 해린이 올려다보는 구도였지만 싫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해린은 천적이라는 관계로 묶여있던 과거에도 이 구도를 싫어하진 않았었다. 춤을 추기에는 좁지만 밀회를 나누기에는 넓은 발코니에서 해린은 테리어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머리카락을 매만질지 뺨을 매만질지 고민하는 사이에 얼굴이 가까워졌다.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두 사람의 얼굴이 멈췄다. 입술 대신 숨결이 닿았다. 서로를 느끼고 싶은 욕망이 녹아있는 숨결이 닿을 때마다 해린은 긴 밤이 끝나고 아침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이곳이 밖이 아니라 집이기를 바랐으나 밖이었다.
입 맞추고 싶었지만 입 맞출 수 없었고, 이름을 속삭이고 싶었지만 이름을 속삭일 수 없었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닿지 못 하게 된 기분이었다. 만약 집이라면 나는 지금 당신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을까. 아쉬움을 남긴 접촉이 끝나고 테리어드가 말했다. 집에서 만나죠. 낯선 이름으로 불리며, 해린이 모르는 사람을 연기하러 갈 테리어드의 인사였다. 해린은 그래요. 라는 말 대신 테리어드의 왼쪽 손목을 잡아 입술을 눌렀다. 피를 마시는 뱀파이어라도 된 것처럼 오래 손목에서 떨어지지 않던 입술을 떼어낸 해린은 자신의 손목에 착용하고 있던 시계를 테리어드의 손목에 채웠다.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다시 내 손목에 채워주러 와요.
언더 시티의 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위험하지 않았으나 마피아에게 붙은 죽음이라는 그림자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테리어드는 상어의 이빨에 비유되는 나이프를 쥐는 손으로 시계를 풀어낸 해린의 손목을 매만진 뒤, 몸을 돌렸다. 손목을 확인한 해린은 제 손목에 선명히 남은 립스틱 자국을 보고 웃었다. 대체 언제 립스틱을 꺼내서 손에 바른 건지. 그녀의 빠른 손이 남긴 자국을 들여다보던 해린은 이제 ‘특별하지 않은 풍경’이 된 발코니를 둘러보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2시. 신데렐라가 유리 구두를 떨어뜨리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시계를 채워주러 올 자신의 여왕님을 편하게 맞이할 수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의뢰인에게 끝을 고하기로 한 해린은 다시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 얼굴에 번졌던 밀회의 여운은 사라져있었다.
발코니를 특별한 풍경으로 만든 달콤한 밀회의 흔적을 조용히 숨긴 해린의 소매처럼.
*
티아해린 1900일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와아, 티아해린 1900일이라니 시간이 정말정말 빠르네요. 이 연성은... 고해합니다. 가면 쓴 티아양이 보고 싶어서 쓴 연성이 맞습니다. 무도회, 가면, 발코니! 세 소재를 사랑하는 제 욕망이 글 여기저기에 많이 묻어있을 거 같네요.
1900일이란 긴 시간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고 유님이랑 티아양 제가 많이 좋아해요 사랑해요~>ㅅ<
5월이지만 덥네요. 핸디 선풍기가 무척이나 필요한 날씨가 되어버렸어요. 더위 조심하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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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tto : 촉각. 이탈리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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