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의 심장
스스로를 여행자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사리엘을 부르는 또 하나의 이름은 방랑자였다. 너만큼 여행이라고 부르는 행위에 어울리지 않는 자는 없겠지. 재미있는 별명이구나. 누구보다 오래 자신을 보아온 골트하임의 노브, 일레인이 한 말에 사리엘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책장에 꽂힌 책을 뽑았다. 그의 손에 뽑힌 책은 최근에 일레인이 가져온 성경이었다.
“서재에 있는 성경은 시엘이 직접 구매한 거야?”
“내 서재에 있는 책은 대부분 다 내가 구매했지.”
다른 사람에게 선물 받은 책으로 서재를 꾸미는 취향은 없어.
덧붙인 말을 들은 리즈벳은 그럼 이 책도 시엘이 구매했겠네. 라고 말하며 성경을 내밀었다. 보존 마법을 걸어두기는 했으나 오랜 책의 향기가 나는 성경을 리즈벳은 사리엘의 옆에 앉아 펼쳤다. 도와줄까? 손을 잡고 사리엘이 던진 질문을 들은 리즈벳은 고개를 저었다. 시엘이 가르쳐준 보람이 없잖아. 직접 읽어볼래. 번역 마법의 편리함을 알고 있음에도 번역 마법에 기대지 않고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리엘의 사랑스러운 심장은 펼친 성경을 천천히 읽어나갔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예전의 언어로 적힌 책을 읽는 것은 어려울 텐데도 리즈벳은 포기하지 않았다.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발견한 리즈벳의 눈이 멈췄다. 몇 번이고 눈으로 읽은 그 구절을 소리를 내서 읽어보기 위해 입술을 움직일 준비를 하는 모습은 사리엘의 눈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리지라는 이름을 가진 심장을 만나기 위해 이 땅, 저 땅을 돌아다닌 것이 아닐까. 오랫동안 방랑자라고 불린 청년은 처음 걸렸을 때는 해제할 생각 밖에 없었던 저주마저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만든 리즈벳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마태오 7장 8절이군. 좋아하는 구절이야.”
“뱀파이어인데도 성경 구절을 좋아해?”
“뱀파이어랑은 상관없어.”
“그렇게 생각하는 시엘이라 서재에 뱀파이어가 이런 책을? 이라고 말할 책들이 가득한 거구나.”
다시 책을 읽으려는 리즈벳의 몸을 끌어안아 자신의 무릎에 앉힌 사리엘은 잠깐 놀라긴 했지만 금방 상황에 적응한 리즈벳의 뺨에 입을 맞췄다. 전부 네 덕분이야, 리지. 달콤하게 속삭이는 사리엘의 목소리에 리즈벳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 뱀파이어가 아니라 인간이었다면 그녀의 심장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뛰고 있었으리라.
“나를 만나서 시엘은 변했어?”
“많은 네가 나를 변하게 했지.”
나는, 너를 모르고 살아온 시간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변했어.
사리엘의 말을 들은 리즈벳은 앞을 보고 있던 몸을 틀어서 사리엘을 보았다. 영원한 밤을 걷게 되는 바람에 달과 인공적으로 만든 조명 아래에서만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넘긴 사리엘은 리즈벳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떨어진 입술이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이마였다. 부드러운 키스에 작게 떨리던 리즈벳의 두 팔이 사리엘의 목을 감았다. 시엘. 열기가 담긴 목소리를 들은 사리엘은 이마에 도착한 입술을 천천히 내렸다. 뺨을 타고 내려간 입술이 하얗고 가느다란 목에 닿았다. 그 목에 선명히 새겨진 한 쌍의 송곳니가 남긴 자국 위에 사리엘은 조심스럽게 입술을 눌렀다.
엘리자베트 폰 로텐부르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랑스러운 소녀는 심장이 멈춰버린 뱀파이어의 많은 것을 바꿔놓고 죽었다. 짧은 생을 살아가는 인간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자신의 욕심임을 알면서도 사리엘은 긴 시간을 기다려 그녀를 찾아갔다. 다양한 이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녀는 언제나 그의 심장이었다. 더 이상 뛰지 않는 심장이 다시 뛰는 기분을 사리엘은 리지를 사랑하며 느꼈다. 네가 없어지면 심장이 뛰지 않는 것 같다는 사리엘의 진심을 처음으로 들은 리즈벳이 열기에 젖은 목소리로 사리엘을 불렀다.
“시엘.”
“리지.”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담긴 사랑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사리엘과 리즈벳은 입술을 겹쳤다. 서로의 입술에 서로를 원하는 마음과 간절함과 사랑을 담고 서로를 탐하던 두 뱀파이어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잊은 듯한 입맞춤을 끝내고 서로의 모습을 담았다. 영원히 자라지 않는 소녀의 뺨을 쓰다듬는 사리엘의 목에 리즈벳의 입술이 다가왔다. 목에 소리가 나는 입맞춤을 하며 흔적을 남기던 리즈벳이 뾰족해진 송곳니로 사리엘의 목을 건드렸다.
“너라면 괜찮아.”
흡혈의 허락을 받은 리즈벳의 송곳니가 사리엘의 목을 파고들었다. 자신을 처음으로 흡혈한 일레인이 남긴 흔적과 다르게 사라질 흔적이라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며 사리엘은 리즈벳의 등을 토닥였다. 피를 마시는 소리가 어느 때보다 달콤하게 들리는 밤, 품에는 자신의 손을 잡고 밤을 걷는 연인이 있었다. 잊어버렸던 심장이 뛰는 감각을 다시금 기억하게 만든 리즈벳이 사리엘의 목에서 입술을 떼어냈다. 공복을 해결한 리즈벳이 만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지켜보던 사리엘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를 보는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방금 피 마셨어.”
“내 피가 아니라 다른 사람 피라도 달콤하겠지.”
“가끔은 질투하잖아.”
“너를 사랑하니까.”
“알고 있어, 시엘.”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군.”
눈을 감아, 리지.
사리엘의 말을 들은 리즈벳이 눈을 감았다. 눈꺼풀 뒤로 사라져버린 아름다운 눈동자를 보고 싶다는 욕망을 참으며 사리엘은 자신의 피냄새가 짙게 나는 리즈벳의 입술을 입술로 덮었다. 또 다시 겹쳐진 입술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작은 몸은 키스가 깊어지자 바닥으로 눕혀졌다.
밤을 걸으며 영원을 살아갈 연인은 서로의 호흡과 열기를 뒤섞는 입맞춤을 거듭하며 몸을 겹쳤다. 서로가 서로의 심장임을 확인하듯이.
*
크림님의 생일을 축하드립니다!^0^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쭈물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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