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국화가 피어나는 정원
수레국화 가득히 피어난 기린의 정원을 관리하는 사람은 기린이 선택한 무녀, 클레어였다. 클레어와 기린의 무녀가 할 일이 아니라며 클레어를 말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줄다리기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관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계속 말리라는 기린, 그리젤다의 말로 종료되었다. 자신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오랫동안 끝나지 않았을 줄다리기를 제 무녀의 승리로 만들어준 기린은 그 날, 수레국화로 만든 화관을 받았다.
“이 화관, 나한테 주는 거예요?”
“…네, 마음에 안 드신다면 다시 만들게요.”
신수의 무녀는, 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정화의 힘을 사용할 수 없는 신수 대신 오염된 것들을 정화하는 사람이었다. 편의상 무녀라고 불리고 있지만 그들은 오염된 것들에 의해 망가져가는 인간의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영웅이었다. 그리젤다는 자신이 선택한 영웅을 마른 꽃잎을 닮은 눈에 담았다.
빨라지기 시작한 오염 때문에 신수조차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인간의 세계를 구하기 위해 신은 신수에게 인간의 세계의 오염을 버틸 수 있는 뿔을 선물했다. 뿔을 가지고 태어나는 단 하나의 신수만이 인간의 세계에 내려갈 수 있다는 말과 함께.
그리젤다는 뿔을 가지고 태어난 최초의 기린이었다. 오염된 것들에 어떤 신수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린이 인간의 세계에 내려가는 것을 많은 신수들이 반대했지만 신이 선택한 운명을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는 없었다. 신처럼 인간을 사랑하는 신수들은 결국 그리젤다를 인간의 세계로 내려 보냈다. 무녀를 찾기 위해 나가고 싶었지만 신전 밖으로 나가면 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무거워졌다.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방법임을 안 그리젤다는 기다렸다. 50년이라는 긴 기다림에 지쳐버린 순간, 그리젤다의 앞에 나타난 것이 클레어였다.
“당신이 만든 화관이라면 언제나 마음에 들지. 머리에 씌워줘요.”
당신의 손으로.
내가 당신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 당신은 알까. 분명, 모를 것이다. 사막에서 물을 찾는 나그네처럼 애가 타서 몇 번이나 정원의 꽃을 망가뜨렸던 그리젤다의 손이 자신의 동그란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그리젤다와 거리를 좁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클레어의 표정이 긴장의 빛으로 물들었다. 그리젤다의 무녀는 숨을 한번 삼키고 큰 결심을 한 사람처럼 발소리를 내지 않고 걸어와서는 보라색의 꽃으로 만들어진 화관을 그리젤다의 머리에 얹었다.
“클레어.”
그리젤다가 언제나처럼 거리를 벌리려는 클레어의 이름을 부르자 클레어는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그리젤다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신수의 옆에 앉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차마 그러지 못 하는 귀여운 무녀의 손을 잡은 그리젤다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클레어를 보다 자신의 무릎을 툭툭 건드렸다.
“아무도 없잖아요.”
하늘에서도 그랬지만 그리젤다의 유혹이나 부탁에 넘어오지 않는 사람은 드물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클레어가 결국 그리젤다의 무릎에 앉았다. 클레어의 손을 놓아주지 않은 상태로 그리젤다는 클레어의 목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몸을 가늘게 떨던 클레어가 고개를 돌려 그리젤다와 눈을 맞췄다. 입 맞추고 싶은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리제가 곤란해지잖아요.”
“날 가장 곤란하게 만드는 건 클레어야.”
언제 그랬냐고 묻고 싶은 표정을 짓는 클레어의 뺨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린 그리젤다는 대화가 더 오고 간 후에야 자신의 품에서 긴장을 푼 클레어를 두 팔에 가뒀다. 처음엔 사랑이 아니라 호기심이었지만 클레어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리젤다는 클레어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클레어가 품은 과거의 아픔들도 사랑해버린 신수는 늘 조용하던 신전을 시끄럽게 만든 축제의 밤, 검푸른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무녀였지만 인간이었기에 클레어는 그리젤다의 마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 했으나 결국 그리젤다가 내민 손을 잡았다. 눈물로 젖은 그녀의 얼굴을 그리젤다는 자신의 숨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리제도 그래요. 날 곤란하게 만들어요. 아까 전에도 계속 닿아있고 싶어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아직 서투른 신수는 더 말해달라고 조르고 싶은 욕심을 눌렀다. 선택된 존재임에도 클레어의 말 하나하나가 마음에 박히는 이 순간을 온전히 소유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슬펐지만, 슬픔만이 그리젤다를 지배한 감정은 아니었다. 그리젤다는 기뻤다. 하늘에 있었을 때처럼 이 순간을 온전히 소유할 방법이 있었다면 짧은 시간이 주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 했을 테니까.
“곤란하게 만들었으니까 사과해야겠네. 입 맞출까요? 어제는 클레어가 정화하러 가서 두 번 밖에 못 했으니까 오늘은 세 번 하자.”
자, 첫 번째. 라고 말하며 얼굴을 가까이 하자 클레어는 그리젤다의 목을 두 팔로 끌어안은 뒤, 눈을 감았다. 입을 열어 그리젤다의 혀가 자신의 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도운 클레어는 자신의 숨결을 헤집고 열기를 선물하는 그리젤다의 옷깃을 잡았다. 옷깃을 잡았음에도 손에 힘을 주지 못 하는 것이 타인에게 상처라고는 줘본 적이 없는 그녀다웠다. 입술을 떼어낸 그리젤다는 입맞춤이 선물한 열기에 더욱 붉게 물든 클레어의 뺨을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은 뒤,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번 남았네요.”
“리제.”
“왜?”
망설이고 있었지만 클레어의 표정과 눈에 깃든 욕망이 클레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그리젤다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젤다는 품에 안은 클레어의 몸을 눕힌 뒤, 클레어의 옷에 손을 가져갔다. 바르르 떨면서도 자신의 옷 위에 얹어진 손을 가슴 사이로 인도하는 클레어를 보며 그리젤다는 깨달았다. 그녀와 자신의 사이에는 살아가는 시간이 다르다는 큰 문제가 있지만 상관없었다.
“사랑해요.”
달콤하게 속삭이며 고개를 숙인 기린의 뿔에 무녀의 손이 닿았다. 연인의 이름을 부르며 기린은 오늘도 맹세했다. 나는 당신의 죽음에 슬픔에 젖더라도 다시 태어난 당신을 사랑하리라. 영원히. 서로의 몸을 탐하는 서투른 연인의 입술이 만났다. 깊은 입맞춤이었다.
*
7일 일찍이지만! 리제클레어 600일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폭죽)
원래 리제클레어 600일은 7일 뒤인 21일이지만 그날 기념일이 겹쳐버리는 바람에 쏘님께 질문을 드렸는데 일주일 앞당긴 오늘 챙기게 되었지요! 쏘님께 리퀘를 받고 저의 마음과 욕망이 듬뿍 담긴 신수리제무녀클레어!의 이야기를 써보았습니다. 둘이 알콩달콩 러브러브하는 모습을 이렇게저렇게 써봤는데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쏘님이랑 클레어 제가 많이 좋아해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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