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qual partner
지구라는 이름을 가진 푸른 별을 떠나 우주로 향했어도 인간은 다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였다. 사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던 일조차 거대한 이득을 위해서라면 싸움으로 변질시키는 인간들. 그들의 바닥을 자라면서 계속 보면서 큰 덕분일까. 인간이었음에도 해린은 인간을 싫어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깊고 단단해지는 해린의 감정에 증오라는 이름이 붙는 것을 지금까지 막아준 사람은, 10살에 만나 성인이 된 지금까지 함께 일한 파트너였다. 테리어드 W. 매저즈라는 이름을 가진 해린의 파트너는 아름다운 여성이었으나,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해도 섣불리 그녀에게 다가가는 사람은 없었다.
테리어드의 얼음처럼 차가운 태도도 그녀에게 섣불리 다가가는 사람을 없애는데 한 몫 했겠지만, 가장 크게 활약한 것은 그녀의 직업이었다. 파일럿. 로봇이라는 무기를 움직이기 위해 선택되어 죽는 그 순간까지 조종석에서 내려올 수 없는 끔찍한 직업이 테리어드의 직업이었다. 이 끔찍한 직업은 테리어드가 로봇을 움직이기에 적합한 자라는 판단을 내린 정부에 의해 결정되었고, 그 결정이 영원히 만나지 못 하고 우주의 어딘가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던 테리어드와 해린을 만나게 했다.
로봇을 움직이는 자와 로봇을 움직일 에너지를 제공하는 살아있는 연료. 어린 나이로 감당하기는 무거운 현실과 동료들의 죽음을 버티며 만난 해린과 테리어드는 대립하면서도 서로를 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살기 위해서 놓지 않았다고 생각한 상대방을 놓지 않은 진짜 이유가 사랑이라는 감정임을 깨달았을 때, 해린은 고요한 별의 바다에서 가장 반짝이는 제 파트너에게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마음을 전했다.
당신에게 내 마지막을 줄게요. 당신도 내게 당신의 마지막을 줘요.
테리어드는 코드네임인 미스 티아가 아니라 이름을 부르며 해린이 전한 마음을 받아들였다. 연인이 되었다고 해서 두 사람의 관계가 드라마틱한 변화를 맞이한 것은 아니었다. 전함에는 파트너인 두 사람이 연애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으니까.
출격하기로 한 파일럿의 부상으로 예정에 없었던 출격이 결정되었다. 곧고 바른 자세로 로봇에 연료를 보충하는 해린을 지켜보던 테리어드가 픽 웃었다. 해린보다 키가 큰 테리어드의 손이 해린의 머리에 닿았다.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스킨십을 끝낸 테리어드는 상관이 내린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로봇을 타고, 별의 바다로 나갔다. 모든 시스템의 정상 작동을 확인한 로봇이 발진하는 모습은 몇 번을 보아도 적응되지 않았다. 그 로봇에 탄 사람이 자신의 파트너이자 연인인 테리어드라고 해도.
영원히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해린은 귀걸이를 매만졌다. 이 귀걸이와 같은 디자인의 팬던트는 별의 바다에서 적과 전투를 벌이는 테리어드의 목에서 달랑이고 있었다. 귀걸이를 매만지며 별의 바다를 보던 해린은 고요한 우주를 보며 테리어드가 불렀던 노래를 생각했다.
오래 전, 지구에서 불렸던 노래죠.
들어본 적 있나요, 퀘이사?
그때는 고개를 저으며 들어본 적 없다고 했던 노래를 해린은 입술을 움직여 불렀다. 사랑을 이야기 하는 노래. 노래에 관심이 없었던 해린의 세계에 노래를 선물한 테리어드는 이 노래를 그렇게 평가했다. 우리와는 거리가 있는 노래라고 덧붙이며 별의 바다를 보던 테리어드의 얼굴을 해린은 그녀와 떨어진 지금도 선명히 그려낼 수 있었다. 복잡한 감정이 녹아있는 그 표정의 이유를 궁금해 하고, 그녀의 얼굴을 매만지고 싶다고 바란 순간부터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제 마지막을 그녀에게 주겠다는 마음이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겠지.
승리와 함께 돌아온 그녀의 마음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해린은 제복 속의 초콜릿을 찾았다. 단맛이 없는 초콜릿이 해린의 입 안의 온기와 만나 녹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에도 로봇의 연료를 채워주는군요.”
전투의 피곤함에 잠들었을 거라고 생각한 연인의 목소리가 로봇에 연료를 보충하던 해린의 귀를 두드렸다. 나가기 전에만 채우면 된다는 사람이 많지만, 이 로봇의 연료를 보충하는 사람은 해린과 같은 화성에서 태어난 자들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들이었다. 컨디션이 나쁘면 연료가 전부 채워지지 않기도 하는 우스운 상황 때문에 스러지는 목숨이 많았다. 예전이었다면 그 점을 지적하며 날카로운 말을 내뱉었겠지만 지금은 해린도 알았다. 저 말이 테리어드의 자신을 향한 걱정이 녹아있는 말이라는 사실을.
“아침도, 저녁도 없는 별의 바다에 늦은 시간은 없습니다.”
“평소에는 아침과 저녁의 구분을 잘 하고 있는 당신일 텐데요.”
“오늘은 넘어가요, 테리어드.”
곁으로 다가온 테리어드의 손이 해린의 손을 잡았다. 아무 것도 물어보지 않고 그저 잡고만 있음에도 안심이 되는 테리어드의 손은 오늘도 승리를 움켜쥐고 돌아왔다. 함장과 승무원들은 그 승리에 환호하며 테리어드를 승리의 신이라고 칭송했지만, 내일도, 모레도 승리하면 좋겠지만 전장은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무서운 장소였다.
“오늘도 돌아와 줘서 고마워요.”
“당신이 내 마지막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당신도 내 마지막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지막을 가져간 사랑하는 연인을 해린은 두 팔로 끌어안았다. 말보다 강한 마음의 표현에 같은 행동으로 화답한 테리어드의 입술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 세계가 전쟁을 벌이는 세계가 아니었다면, 가수가 되어 많은 사람의 마음에 노래로 행복을 전하고 있었을 연인의 목소리가 조용한 격납고 안을 울렸다. 노래가 멈추는 그 순간까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던 해린이 마음의 박수를 보내며 말했다.
“오늘도 멋진 노래였어요. 그런데 오늘 부른 노래는 처음 듣는 노래네요.”
“어떤 노래인지 궁금한가요?”
“당신이 부른 노래는 항상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내게 그 노래를 가르쳐주세요.
좋아요. 하지만 자고 일어난 뒤에요. 라고 대답한 테리어드가 몸을 떼어낸 뒤, 손을 뻗었다. 해린은 그 손을 잡았다. 격납고를 떠나 방으로 향한 두 사람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잠시 떨어졌던 서로의 손을 잡고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은, 손을 떼어내지 않고 눈을 감았다. 해린은 처음으로 테리어드의 손을 잡은 그 날처럼 울지는 않았다.
울음은, 당신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 순간부터 버리기로 했으니까.
*
생일 축하드려요, 유님!^ㅁ^
AU지만 티아해린이 조금 일찍 만나서 파트너가 되는 연성을 써봤답니다. 제 취향을 좀 부어서 로봇이 등장하고 로봇의 연료가 특수하게 설정되어버렸지만 티아해린이 사랑을 하고 있으니 괜찮은 거 같습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생일 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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