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신사님
걱정은 인간도, 뱀파이어도 피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다니엘과 함께하면서 걱정과 거리가 멀어졌던 카멜리아 역시 피하지 못 하고 걱정 하나를 안았다. 뱀파이어라는 정체를 들켜서 생겨난 걱정은 아니었다. 사실 카멜리아는 몰랐지만 정체를 들켜도 카멜리아가 위험에 노출되는 일은 없었다. 윈체스터 가(家)라고 불리는 견고한 성과 그 성의 주인인 다니엘 로렌 윈체스터가 카멜리아를 위험에 노출되게 놔두지 않을 테니까. 카멜리아의 걱정은 자신을 위험에 노출되게 놔두지 않은 연인, 다니엘과 관련이 있었다. 걱정이 생긴 이유를 들은 다니엘은 웃을지도 모르지만 카멜리아는 다니엘이 자신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난다는 점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익숙한 일상이었고 항상 그렇게 생활하면서도 스스로를 잘 관리하는 다니엘이라서, 카멜리아가 가진 걱정의 크기가 커지는 일은 없었지만 런던에는 막 계절의 변화가 온 참이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초록빛이었던 숲이 가을의 울긋불긋한 빛으로 물드는 계절을 맞은 영국은 낮에는 선선하고 밤에는 쌀쌀했다.
9월에 보았던 나뭇잎들의 색이 더욱 짙어지고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들이 종종 발에 밟히는 10월의 첫 날이었다.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한 걱정은 여전히 카멜리아의 주변을 맴돌았다. 재단사에게 날씨가 쌀쌀해졌으니 여름보다 조금 두꺼운 천으로 만든 옷을 부탁하거나, 몸에 좋은 찻잎을 한번 알아보거나. 다양한 해결 방법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거리를 걷던 카멜리아의 발을 낯익은 냄새가 붙들었다. 평소보다 더 어두워 보이는 골목에서 나는 냄새였다. 평소에는 이런 냄새가 안 났는데 티룸이라도 생긴 걸까. 보통 때는 의심스러운 장소에는 발을 들이지 않는 카멜리아였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카멜리아가 골목으로 발을 옮겼다.
짧게 끝날 거라고 생각한 골목은 굉장히 길었다. 마침내 골목의 끝에 도달한 카멜리아는, 호흡을 고르다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자신이 아는 런던의 집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건축물들이 여기저기에 보이는 거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소리는 지르지 않았지만 낯선 이의 손에 잡혀서 놀란 새처럼 당황한 카멜리아의 후각을 아까보다 진해진 커피향기가 건드렸다. 또각. 바닥을 울리는 발소리와 함께 나타난 사람은 고양이를 닮은 금색과 팔레터콰이즈색의 색이 다른 두 눈이 인상적인 어두운 피부의 여성이었다. 옷은 사냥할 때의 카멜리아처럼 남성의 옷이었고 키도 컸지만 여성이 맞았다. 신체의 선이 남성이라기엔 굉장히 가는데다 어깨를 좀 넘는 감청색의 머리카락 역시 길었으니까. 카멜리아를 관찰하듯 지긋이 바라보던 여성이 웃으며 카멜리아에게 물었다.
“소원이 있어서 왔어요?”
“아뇨. 저는 소원이 없어요. 소원은 이미 이뤄졌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걸요.”
“하지만 걱정인형이 필요한 얼굴인 걸.”
“처음 듣는데 당신이 말하는 걱정인형이라는 인형은, 요즘 런던에 유행하는 인형인가요?”
“음, 걱정을 대신 먹어주는 인형이에요. 레이디… 괜찮다면 이름을 알려주세요.”
“카멜리아. 카멜리아 테슬라예요.”
“네, 레이디 테슬라. 난 시오. 시오라고 해요. 여긴 대화하기엔 애매한 장소니까 장소를 옮길까요?”
카멜리아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여기도 영국인가? 라고 고민하는 얼굴이네요. 영국 맞아요. 카멜리아는 호박색 눈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한 시오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일에 휘말린 기분이 들었지만 사실 인간들 기준으로 생각하면 뱀파이어인 자신 역시 현실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카멜리아는 일단 시오를 따라가기로 했다. 또각또각. 아까 전과 똑같은 발소리를 내며 걸어간 시오는 근처에 있는 집의 문을 열었다. 현관을 열자마자 거실이 보이는, 굉장히 개방적이란 느낌이 드는 집이었다. 카멜리아는 집으로 들어갔다. 이상하게 자신을 기다리는 괴물의 입에 삼켜지는 기분이 들었다.
윈체스터 저택에 있는 소파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푹신한 소파에 앉은 카멜리아는 골목에서 맡은 커피향기의 출처가 시오와 이 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얌전히 앉아서 향을 감상했다. 곧 커피향이 나는데도 자신의 향을 잃어버리지 않은 은은한 홍차 한 잔이 향을 감상하던 카멜리아의 앞에 놓였다. 감사 인사를 한 카멜리아는 시오가 내어준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침에 다니엘과 마셨던 홍차의 맛이었다. 그리고 입에 감도는 그 맛은 카멜리아에게 아침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품에 계속 안겨있고 싶다는 욕심을 품에 만들었던 키스의 기억을.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시오는 그 점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하는 카멜리아와 같은 차를 마시던 시오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탁. 소리를 낸 시오의 눈과 카멜리아의 눈이 마주쳤다. 시오가 물었다.
“정말로 걱정 없어요?”
“저는…”
아까와 같은 대답을 돌려주려던 카멜리아가 입을 다물었다. 키스의 기억이 이 골목으로 들어오기 전에 자신의 머리를 지배했던 걱정과 걱정의 해결 방법들을 상기시킨 탓이었다. 머뭇거리며 시오와 홍차가 담긴 잔을 번갈아보던 카멜리아는 입술을 달싹였다. 아마 시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오늘이든 내일이든 다니엘에게 털어놓았을 이야기였으리라.
“날이 추워졌잖아요. 그래서 저보다 늦게 자는데도 항상 저보다 일찍 일어나는 연인이 조금 걱정되긴 해요.”
“반지까지 나눈 사이라면 걱정되겠네요. 나라도 걱정하겠다~”
“최근에 맞췄어요.”
카멜리아는 시오에게 자신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서 빛나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금색 반지가 다니엘과 맞춘 세 번째 반지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첫 번째 반지를 맞춘 뒤에 다니엘은 또 다시 반지를 맞추자고 했다. 카멜리아는 다니엘에게 약했다. 그리고 다니엘이 흥미를 보이는 일이나 다니엘이 재미있게 생각하는 일은 같이 해주고 싶었다. 어떤 일이든. 반지를 손으로 매만지며 웃던 카멜리아는 오늘도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자신과 같은 모양의 반지를 끼고 있던 다니엘의 모습을 그리며 시오를 보았다.
“여기는 뭐하는 곳인가요?”
“가게에요. 이것저것 팔고 있어요. 어쩌면 레이디 테슬라의 걱정을 덜어드릴 물건도 있을지도 모르죠.”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물건도 있으면 좋겠네요.”
“있어요.”
잠깐만요. 하고 사라졌던 시오는 향로 하나를 가지고 돌아왔다.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연인들 모양의 작은 향로는 눈부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새하얀 도자기였다. 돈이야 있고 산다고 하면 바로 낼 수 있지만 정말로 이 향로가 자신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을지 고민하던 카멜리아는 속아도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그 향로를 사기로 했다. 돈을 지불하려고 값을 묻는 카멜리아에게 시오는 고개를 저었다.
“레이디 테슬라가 지금 한 머리 장식. 난 그걸 받고 이 향로를 팔고 싶은데요.”
내 가게의 물건 중 몇 가지는 돈으로 살 수 없거든요.
엉뚱한 요구를 받고 호박색 눈동자를 깜박이던 카멜리아는 자신이 머리에 한 머리 장식에 손을 가져갔다. 망설임 없이 건네주는 카멜리아에게 향로를 포장해서 건네준 시오는 잘 가요. 곤란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당신이라면 괜찮을 거예요. 라는 이상한 말을 하며 카멜리아를 배웅했다. 인간이 아닌 걸까. 하지만 시오에게서 나는 커피향기는 카멜리아가 수없이 맡은 동족의 체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복잡해지는 머릿속의 생각들을 털어내듯 고개를 좌우로 휘저은 카멜리아는 지금은 집에 돌아가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들어왔을 때와 다르게 짤막하게 느껴지는 거리를 나오자마자 골목에 도착했다. 뒤를 보니 아까까지 있었던 거리가 없었다. 꿈? 하지만 품에는 향로가 든 상자가 있었다.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알려주는 상자를 안고 골목 밖으로 나온 카멜리아는 자신의 극장으로 돌아왔다.
연극은 오늘도 잘 끝났고 성공적으로 끝난 공연에 행복한 배우들과 제작진들은 동료애를 다진다는 명목으로 뒤풀이를 갔다. 뒤풀이에 참여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카멜리아 뿐이었다. 다들 뒤풀이를 가지 않아도 이해해줬다. 반지를 끼고 다닌 후로는 더더욱. 극장의 문단속을 끝내고 무게로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수상한 거리에 있는 수상한 가게에서 구매한 향로를 들고 극장 밖으로 나와서 마차를 타려던 카멜리아를 클라이드. 라는 목소리가 붙들었다.
카멜리아는 웃으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보았다. 지팡이를 든 스트로베리 블론드의 신사, 다니엘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품에 든 상자 때문에 그에게 안기지 못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카멜리아는 제 표정에 번지는 아쉬움을 숨기지 못 했고, 다니엘은 그 아쉬움을 바로 알아차렸다.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이야.”
“내가 왜 이런 얼굴을 하는지 알겠어요, 다니?”
“오, 클라이드. 나는 얼굴만 보고 누군가의 생각을 읽는 마법사가 아닌데.”
“다니를 안을 수 없어서요.”
“머리 장식이 사라지고 나타나 그 품을 차지한 방해물이 문제군요, 레이디 테슬라.”
“특이한 가게에서 이 물건을 사는 값으로 요구한 게 머리 장식이었거든요. 집에 머리장식은 많으니까 괜찮아요.”
“내일 사지.”
내일도 외출 준비를 해야겠어, 카멜. 피곤하면 취소해도 돼. 시간은 많으니까.
친한 사람들은 부르는 애칭이 ‘카멜’이었지만, 다니엘이 부르는 ‘카멜’은 다른 사람들이 부르는 애칭과 달랐다. 더 설레고 두근거렸다. 안아줘요. 집에 돌아가면 내가 안아줄게요. 요청을 받은 다니엘은 빙그레 웃으며 카멜리아를 품에 안았다. 그 품을 차지한 방해물이라고 불린 상자도 함께 다니엘의 품에 안겼다. 수상한 거리에 있는 수상한 가게에서 구매한 향로였지만 카멜리아는 이 향로의 특별한 힘을 믿기로 했다. 뱀파이어인 자신과 다니엘도 존재하는 세계니까 있을 수 있으리라. 믿기 힘들 정도로 특별한 힘을 가진 물건이, 말이다.
집에 돌아와서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방으로 돌아온 카멜리아는 상자를 풀고 향로의 불을 켰다. 카멜리아가 좋아하는 재스민의 향이 불이 켜진 향로에서 풍겼다. 향기는 생각도 안 하고 사버렸는데 좋아하는 향이라니. 시오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생각나긴 했지만 이렇게 예쁘게 생긴 향로에 위험한 힘은 없을 거라고 판단한 카멜리아는 방 안을 떠도는 재스민 향기를 맡으며 하루의 피로를 털어내다 노크소리를 들었다. 똑똑. 들어와요. 카멜리아의 대답이 끝나고 방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이 방의 또 한 명의 주인인 다니엘이었다. 카멜리아는 방으로 들어오지 않고 방 밖에 서있는 다니엘을 보다가 아까 극장 앞에서 한 약속을 떠올렸다. 자신을 안아주면 집으로 돌아가 다니엘을 안아주겠다는 약속. 약속을 기억한 카멜리아의 두 팔이 다니엘을 끌어안았다. 다니엘은 자신을 끌어안은 카멜리아를 가볍게 안아들고 말했다.
“방해물의 정체는 향로였군.”
“좋은 향로라는 설명을 들어서 사버렸어요.”
“재스민은 클라이드가 좋아하는 향이지.”
귓가에 속삭이는 다니엘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도 좋았지만, 자신의 취향을 기억해준다는 사실이 기뻐서 사랑을 듬뿍 담아 다니엘의 목에 키스한 카멜리아가 도착한 장소는 침대 위였다. 카멜리아의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 다니엘이 고개를 숙였다. 그 수상한 가게에서 홍차를 마셨을 때와는 다른 이유로 붉게 물드는 제 얼굴을 느끼며 카멜리아는 눈을 감았다.
등줄기를 매만지는 손길을 느끼면서 다니엘보다 일찍 잠에 떨어진 카멜리아는 사라져버린 재스민 향에 아쉬움을 느끼다가 옆을 보았다. 다니엘은 오늘도 아마… 자신보다 먼저 일어난 다니엘이 모든 준비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오는 중이라 옆자리가 비어있을 거라고 생각한 카멜리아의 호박색 눈에 낯익은 스트로베리 블론드의 소년을 보고 동그래졌다.
이해가 안 되는 현실에 모든 움직임을 멈춘 카멜리아의 옆에서 자다가 일어난 소년은 잠기운 가득한 얼굴로 카멜리아를 보며 그 작은 입술을 움직였다. 클라이드. 처음 보는 소년이 클라이드라는 이름을 알 리가 없었다. 스트로베리 블론드에 회색 눈을 하고 다니엘과 꼭 닮을 수도 없었고. 상황을 대충 파악한 카멜리아는 다시 누워서 잠으로 떨어진 소년―아마도 어려진 다니엘이라고 추정되는―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침대를 빠져나왔다.
“…이유는 모르지만 다니가 어려진 것 같아요.”
다시 일어나서 카멜리아와 대화를 나누고 대화를 통해 카멜리아가 정리한 결론을 들은 다니엘은 작아진 손을 보다가 침대에서 내려왔다. 알아야 할 사람들에게는 설명을 해둘 예정이고 누구와 만날 약속도 없었으니까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곤란한 일이 벌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언제 돌아갈지 알 수 없는 작은 몸이 된 다니엘이 향한 곳은 책상 앞이었다. 책상에 있는 무언가를 잡으려고 뻗어진 작은 손은 그 목적을 이루지 못 하고 허공을 헤맸다. 책상 위의 물건을 바라보다가 손이 닿는 서랍 손잡이를 쥔 다니엘은 서랍 손잡이를 그대로 잡아당겼다. 힘을 얼마나 줄지 모르는 아이의 실수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짜증이 가득 들어간 목적이 있는 행동이었다. 보통의 아이였다면 서랍 손잡이도, 서랍도 멀쩡했겠지만 다니엘은 보통의 아이가 아니라 뱀파이어였다. 뱀파이어의 조절 없는 힘에 강제로 끌려나온 서랍은 서랍 손잡이와 분리된 뒤, 바닥으로 떨어졌다. 요란한 소리를 낸 서랍 안의 물건들이 바닥을 굴러다니는 와중에 서랍 손잡이를 쥔 다니엘의 작은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새파랗게 질린 카멜리아는 뛰다시피 다가가서 책상 앞에 선 다니엘이 다치지 않았는지를 확인했다.
“다니, 괜찮아요? 손에 피가…”
카멜리아는 서랍 손잡이와 다니엘의 손을 떼어낸 뒤, 다니엘이 유일하게 다친 곳인 손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흔적이 남을 깊을 상처는 아니었으나 지혈되지 않은 손에서는 계속 피가 떨어졌다. 뚝뚝. 카멜리아는 제가 사용하는 손수건을 마시려고 놓아둔 물에 적셔 손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준 뒤, 사용인에게 붕대와 약을 부탁했다. 사용인이 가져온 약을 다니엘의 손에 바르고 붕대에 묶은 카멜리아가 진정된 얼굴로 말했다.
“위험했어요.”
“네가 치료해줬잖아.”
“언제든 치료해줄 거지만 다치지 말아요.”
다니가 다치는 건 싫어요. 라고 말한 카멜리아가 다니엘의 손에 입을 맞췄다. 다니엘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다치지 않은 손으로 카멜리아의 뺨을 매만졌다. 작은 다니엘의 손은 카멜리아가 기억하는 다니엘의 손처럼 차가웠다.
*
설명을 들은 제럴드와 모니카가 있는 저택에 머무는 편이 나을 텐데도 다니엘은 카멜리아와 함께 저택을 나섰다. 오늘 가기로 한 장소는 머리 장식을 살 백화점과 티룸이었지만, 카멜리아는 생각을 바꿔 자신이 운영하는 극장, 요람으로 향해 공연이 있는 날까지 닫혀있을 예정이었던 요람의 문을 열었다.
내 입맛을 맞추는 차를 끓이기는 힘들 테지만 기대하지. 라고 마차에서 말했던 다니엘은 마차에서 보내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극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잠이 든 상태였다. 마부의 도움을 받아 잠이 든 다니엘을 등에 업은 카멜리아는, 새근새근 자는 다니엘을 자신이 일하는 집무실 소파에 눕혔다. 담요가 없음을 아쉬워하며 다니엘의 말랑한 뺨을 매만진 카멜리아는 차를 끓일 준비를 시작했다. 찻잎, 찻주전자, 찻잔, 쟁반을 찾아서 준비를 마치고, 자신이 마실 차와 다니엘이 마실 차를 완성한 카멜리아의 머릿속에 어제 시오가 한 말이 떠올랐다.
-곤란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당신이라면 괜찮을 거예요.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 곤란한 일이 오늘 일어난 이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테이블에 차를 내려놓는데 다니엘이 일어났다. 카멜리아는 잠기운을 털어내고 소파에 앉는 다니엘의 옆자리에 앉았다. 다니엘은 물끄러미 카멜리아를 바라보다 노크소리를 듣고 웃었다. 하늘을 바로 날 수는 없겠어. 어제의 뒤풀이도 있어서 올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정한 목적지에 손님이 오다니. 카멜리아는 차가 식기 전에 티타임이 시작되길 바라며 입술을 움직였다.
“들어와요.”
“계신 것 같아서 와봤는데 휴일에도 나오셨네요, 레이디 테슬라.”
손님은 이번 연극의 주연을 맡은 여배우, 조세핀이었다. 각본가랑 몇 번이나 부딪혀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여주인공을 맡게 된 그녀는 다니엘에게도 고개를 숙이다가 다니엘의 머리카락을 눈에 담고 짓궂게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에 번진 웃음의 의미를 모르는 카멜리아를 당황스럽게 하는 말을 입에 올렸다.
“애인분과의 사이에 벌써 아이가 있으셨는지는 몰랐어요. 레이디 테슬라랑은 안 닮았는데 애인분이랑은 정말 쏙 빼닮으셨네요.”
“오해에요, 조세핀. 정말 곤란한 오해고 내가 이 아이를 낳으려면…”
“알아요. 알아요. 레이디 테슬라께서 10대에 애인분을 만나셨어도 무리겠죠. 농담이었어요.”
전 놓고 온 물건이 있어서 그걸 찾으면 바로 돌아갈게요. 다음 공연 날에 만나요.
그때는 더 멋진 공연을 하겠다는 포부를 당당히 밝히고 돌아가는 조세핀을 보며 카멜리아는 10년은 나이를 먹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조세핀은 몰랐지만 조세핀이 말한 일은 카멜리아에게 가능한 일이긴 했다. 카멜리아는 시간이 빠른 인간이 아니라 시간이 느린 뱀파이어였으니까. 10년은 나이를 먹은 기분 때문인지 갈증이 일었다. 갈증을 달래기 위해 차를 마시려는 카멜리아의 옆에서 언제나처럼 우아하게 찻잔을 든 다니엘이 말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아들이 있었나보군.”
농담이라는 말까지 들었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다니엘의 말랑말랑한 뺨을 카멜리아는 두 손으로 쪼물거렸다. 어려진 지금도 다른 사람이 뺨을 쪼물거렸다면 아침에 일어났던 일 이상의 사단을 벌여놨을 다니엘은 카멜리아의 손길을 얌전히 받아들이며 회색 눈에 카멜리아의 배시시 웃는 얼굴을 담았다.
“언젠가는 그렇게 될지도 모르니까 익숙해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말을 마친 카멜리아가 고개를 숙여 다니엘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평소에 다니엘이 하던 일이었다. 다니엘도 이런 감촉과 이런 간질거림을 느끼며 했을까. 백화점에 갈 수 없어서 머리 장식은 사지 못 하겠지만, 이렇게라도 다니엘과 단 둘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카멜리아는 차받침에 놓았던 찻잔을 들었다. 적당히 식은 홍차는 맛있었다. 분명, 다니엘과 둘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카멜리아가 자신과 다르게 지금의 상황을 답답하거나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는 다니엘에게 물었다.
“하고 싶은 일 없어요?”
“내게 던질 질문은 아닌 것 같군.”
이 장소를 선택한 건 클라이드니까.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뜻임을 알아차린 카멜리아는 고민하다가 다니엘의 손을 잡았다. 크지 않고 작은 손이었지만 체온은 똑같았다. 다니엘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려주는 증명 속에서 카멜리아가 말했다.
“다니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새벽이랑 다른데.”
키스를 거듭하고 몸을 겹쳤던 새벽의 상황을 생각한 카멜리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 어제는 정말 자신도 놀랄 정도로 요구가 많았었다. 어려져도 기억과 성격은 그대로라서 자신을 여전히 당황하게 만들거나 얄밉게 놀리는 다니엘에 대한 작은 불만을 이마에 키스해주는 것으로 푼 카멜리아가 이마에서 떼어낸 입술을 달싹였다
“지금은, 그런 기분이에요. 욕심이 생기면 제대로 말할게요. 이제 예전처럼 숨기거나 참는 카멜이 아니랍니다.”
나의 신사님.
카멜리아의 말을 들은 다니엘은 찻잔을 내려놓고 카멜리아의 무릎에 누웠다. 베개처럼 푹신하지 않을 무릎에서 눈을 감은 다니엘의 머리카락을 만지던 카멜리아는 입술에서 내뱉는 소리에 기억하는 선율을 실었다. 어릴 적에 들었던 자장가를 부르는 카멜리아의 목소리가 다니엘의 귀를 부드럽게 두드렸다.
평소보다 굉장히 많이 잔 다니엘이 돌아온 시간은 저택이 달빛에 잠겼을 때였다. 돌아온 다니엘은 향로가 풍기는 재스민 향기 속에서 카멜리아를 끌어안았다. 카멜리아는 평소처럼 다니엘을 올려다보며 돌아온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와요. 하고 인사한 카멜리아는 오늘 있었던 일들이 자신의 걱정을 덜어준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조금은 덜어준 것 같기도 했다. 오늘 다니엘은 늦게 잤지만 평소처럼 일찍 깨지도 않았으니까. 그래도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카멜리아는 두 팔로 다니엘을 끌어안았다. 언제나의 다니엘의 품이 카멜리아를 안심시켰다.
“돌아온 기분은 어때요?”
“더 자고 싶지는 않군.”
“오늘 다니는 정말 많이 잤으니까요. 이따 잘 수 있겠어요?”
“자장가는 들었으니 책이 좋겠어.”
주어가 없는 분명하지 않은 말이었지만 책이 좋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은 카멜리아가 웃었다. 호박색 눈이 다니엘을 담았다. 오늘은,
“어떤 책이든 읽어줄게요.”
나의 다니.
평소보다 더욱 힘내서 책을 읽겠다고 생각한 카멜리아는 서로를 끌어안은 팔을 풀고 손을 내미는 다니엘을 보았다. 함께 해주시겠습니까, 우리 아가씨. 에스코트를 청하는 사랑하는 신사의 손에 카멜리아는 제 손을 올렸다. 드디어 받는 에스코트의 목적지는 서재였다. 책의 냄새가 가득한 그 곳에서 다니엘이 어떤 책을 고를지 기대하는 마음을 품고 카멜리아는 걸음을 옮겼다. 밤이 찾아온 저택의 긴 복도에 다니엘과 카멜리아의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둘만의 비밀이 될 발소리였다.
*
다니카멜 1900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하합니다~!
티아가 저번에 리퀘해준 작아진 다니가 등장하는 다니카멜인데 스피나의 자캐도 한명 짠하고 스페셜 게스트로 데려왔어. 자캐 넣어서 쓰는 자컾연성은 이게 처음인데 티아가 즐겁게 봐줬으면 좋겠다.
보름달이 예쁜 추석에 다니카멜 1900일이라니. 넘 좋고 기쁘다. 1900일이란 긴 시간을 함께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티아랑 다니 내가 많이 쪼아해. 사랑해!
- 이전글equal partner 26.02.07
- 다음글멸망한 세계의 연인 26.02.0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