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한 세계의 연인
멸망한 세계에서도 살고 싶은 사람은 있는 법이다. 루우네 메라클 역시 살고 싶어서 ‘바깥’으로 나가는 일을 시작한 사람이기에,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 하면 여기서 끝나버릴 청년이 품은 생에 대한 욕구를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을 챙기는 것에도 급급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충동적인 결정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청년을 도왔을지도 모른다. 이대로 놔두는 것이 제일 좋다. 바깥에서 쓰러질 사람이라면 ‘안’으로 들어가도 살 수 없을 테니까. 결론을 내리고 청년이 누워있던 자리를 떠나가려던 루우네의 바지자락을 청년의 손이 잡았다. 꾸욱. 바깥에서 생을 바라던 언젠가의 자신과 똑같은 짓을 청년이 하고 있었다.
쳇. 하고 혀를 차며 루우네는 자신의 바지자락을 잡은 청년의 손을 떼어낸 뒤, 청년을 업었다. 가볍다. 한동안 밥을 먹지 못 해서 마른 것일까. 이 세계에서 죽지 못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었으나 루우네는 투덜거렸다. 잘 챙겨먹지 그랬어요. 옷자락을 잡을 때까지는 있었던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렸는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청년을 품에 안은 루우네는 과거에 사용했던 바이크라는 것을 사막이 되어버린 바깥에 나갈 수 있게 개조한 이륜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자 출발한 이륜차는 사막보다는 상황이 나았지만 죽음이 더디게 온다는 변화 밖에 없는 안으로 향했다.
“잘 잤어요?”
안으로 데려온 청년이 의식을 회복한 것은 일주일 후의 일이었다. 바깥에서의 일을 마치고 돌아온 루우네를 본 청년은 세계가 멸망하기 전에 있었다던 호수를 닮은 푸른 눈으로 루우네를 바라보다 웃었다. 부드러운 웃음이었다. 안의 사람들에게도, 바깥에서 죽어버린 사람에게도 볼 수 없는 평온한 삶이 담긴 웃음.
“바깥에서 쓰러졌을 텐데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나단 윈체스터라고 해요.”
“바깥으로 나가는 일을 하거든요. 루우네 메라클. 루우네라고 불러요.”
자아. 라고 말하며 루우네는 나단에게 마른 수건과 옷가지를 건넸다. 보수를 비싸게 받지만 실력만은 확실한 세진은 나단이 영양만 보충하면 금방 회복될 정도의 괜찮은 상태라고 했지만 루우네는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가벼웠는데 영양만 보충하면 금방 회복한다니. 세진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 역시 배제하지 않은 루우네는 깜박이는 노란 전등 아래에서 자신이 사는 집의 구조를 간단히 알려주었다. 모래를 털어내기 위해 그의 몸을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기는 했지만 한계가 있는 방법이었다. 또 다시 감사의 인사를 한 나단의 모습이 욕실로 사라졌다. 물소리를 들으며 루우네는 생각에 잠겼다. 이제, 어쩐다.
*
안에 있는 집에 빈 집은 없다는 말을 듣고 돌아온 루우네는 자신의 설명을 들은 나단을 보며 나단이 만든 토스트를 물었다. 바삭한 토스트는 루우네의 입맛을 예지라도 한 듯한 소스와 재료만이 사용된 완벽한 토스트였다. 바깥에 나갈 때마다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한 목적으로 먹는 그 끔찍한 빵과는 차원이 달랐다.
“요리 잘 하네요.”
“다른 집안일도 할 수 있어요. 혹시 루우네 씨가 괜찮으시다면…”
저랑 같이…
나단은 머뭇거렸다. 선택지가 하나인데도 머뭇거리는 사람을 처음 본 루우네는 안경 너머에 존재하는 특이한 색깔을 가진 눈과 보라색 눈을 느릿하게 깜박였다. 식사나 청소에 대한 보수는 많이 못 줘요. 그래도 괜찮다면 있어요. 그러다 질리면 나가도 된다는 말을 하려다 루우네는 말을 멈췄다. 나단의 환히 웃는 얼굴을 본 탓이었다. 세진도 웃기는 했지만 나단처럼 웃지는 않았다. 그는 멸망하기 전의 세계에 살았던 사람처럼 웃었다. 평범하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죽어가는 세계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고 생각하며 루우네는 한 번 더 토스트를 베어 물었다.
“아, 그리고 루우네 씨라고 부르지 말고 루우네라고 불러요.”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말한 그 말을 알아들은 나단이 알았어요. 라고 대답한 뒤, 루우네의 이름을 불렀다. 루우네. 방금 전까지 씨라고 불렀다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자연스러운 발음이었다. 왜 저렇게 자연스러운 거냐고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루우네는 토스트를 빠르게 먹었다. 완벽한 토스트는 사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단 윈체스터는 좋은 사람이었다. 세계가 멸망하기 전이었다면 루우네 메라클과 엮이지 않을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이 좋은 사람은, 루우네가 늦게 돌아오는 날이나 다쳐서 돌아오는 날이면 잠을 자지 못 했다. 눈 밑이 시커멓게 변했는데도 어서 와요. 라고 인사해주는 나단에게 익숙해져버린 루우네는 나단의 그런 점을 지적하지 못 했다. 너무나도 이상해서 그 점을 털어놓자 세진은 다른 사람이었다면 지적했을 거야. 왜 다른지 생각해봐~ 라고 말하며 루우네의 팔에 과산화수소를 콸콸 부었다. 비명을 지르기도 힘든 거친 치료를 받고 돌아온 루우네는 의자에 앉아 졸다가 자신이 오자 눈을 뜬 나단을 보았다.
“루우네.”
이름을 부르고 웃는 얼굴이 자신이 왜 다른 사람과 다르게 그의 행동을 지적하지 않는지를 알려주었다. 입 밖으로 튀어나가려는 비속어를 삼키며 루우네는 나단을 끌어안았다. 같은 마음이 아닐 수도 있음에도 나단을 품에 끌어안아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한 루우네가 떨어지려고 했을 때였다. 나단이 두 팔을 루우네의 등에 둘렀다. 가늘게 떨면서 두 팔을 등에 두른 청년은 루우네의 뺨에 입을 맞췄다.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알아요. 하지만 더 이상은 숨길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난 루우네를…”
사랑한다는 고백이 귀를 두드렸다. 자신과 나단 윈체스터의 관계를 더 이상 예전으로 돌릴 수 없는 말을 들은 루우네는 나단을 끌어안은 채로 걸음을 옮겼다. 좋다고 할 수 없는 침대에 눕혀진 나단의 푸른 눈이 루우네를 올려다보았다. 그 때, 예전의 자신처럼 바지자락을 잡는 것으로 스스로의 목숨을 구하고 루우네의 인생에도 들어온 나단이 웃었다.
“다 말하지 못 했어요.”
“내가 먼저 말할래요. 사랑해요.”
그래서 당신은 많이 울고, 많이 후회할 거예요.
이제부터 다가올 미래를 말해주는 루우네를 보며 나단은 말했다. 괜찮아요. 정말 다정한 사람이다. 결국 죽음을 맞을 이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의 다정함을 사랑해버린 루우네 메라클은 제 인생에 찾아온 기적 같은 청년의 입술에 입술을 겹쳤다. 곧 입술과 입술만이 아니라 온 몸을 겹치게 될 두 사람의 손이 서로를 탐했다.
멸망해가는 세계에서 서로를 만나 사랑에 빠진 서투른 연인을 축복하듯 이제 너무나도 많이 보이는 별들이 하늘 위에서 반짝였다.
*
루네나단 400일도, 루네나단 401일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에유로 가져온 루네나단 400일 기념로그는 아포칼립스가 맞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 ㅋㅋㅋㅋㅋ 답없는 루네가 된거 같지만 나단이 사랑해줘서... 루네... 루네, 잘 해라.를 쓰면서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르겠네.
400일이란 긴 시간 함께 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부비부빗~! 오늘도 랑이사랑나단사랑!^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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