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에서 그대를
https://www.youtube.com/watch?v=AHzMMYXQy6o
힐라스 아우슈라 폰 크라테스가 다스리는 제국의 가장 척박한 땅은 북쪽이었다.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눈이 녹지 않는 그곳을 제국의 사람들은 세계의 끝이라고 불렀다. 다른 나라와 맞닿은 국경지대였지만 제국의 사람들에게 그곳은 항상 세계의 끝이었다. 이번에 세계의 끝을 다스리는 북부대공으로 뽑힌 사람은 금발의 청년이었다. 세계의 끝을 지키는 것도 좋지만 연인과 함께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것을 보기를 원한 이전의 북부대공에게 작위를 넘겨받은 금발의 청년은 조용히 제국의 북쪽을 지켰다.
어떤 싸움이 벌어져도 승리만을 거머쥐는 북부대공을 사람들은 군신의 축복을 받은 자라고 불렀다. 군신을 믿었지만 축복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전부인 북부대공, 라세인 데 루베르니겔은 새하얀 눈을 밟으며 아무 것도 없는 북쪽의 땅을 걷고 있었다. 북쪽 지역에는 생명이 없는 저주 받은 땅이 있다. 마법사의 저주를 받았다고 말했음에도 이 저주 받은 땅에 가장 자주 오던 사람은 라세인에게 북부대공의 자리를 넘겨주고 북부를 떠나버린 한 명의 여성이었다. 라세인이 마음에 품은 감정을 모르고 떠난 그녀의 곁에는 라세인이 좋아하는 친한 동생이 있었다. 두 사람이 북쪽을 떠난 그 날부터 라세인은 북부에 남아 북쪽을 지켰다. 언젠가 두 사람이 돌아올 북부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아줄 땅이 될 수 있도록.
북쪽을 부탁한다는 의미로 선물 받은 귀걸이를 착용하지 않고 늘 가지고만 다니는 라세인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자신의 욕심이었다. 여행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황제의 명령을 받고 세계의 오염을 정화하러 간 두 사람이 돌아올 가능성이 지우지 않으려는 욕심. 죽는 그 날까지 지켜야 할 욕심을 위해 항상 승리하는 북부대공의 걸음은 저주 받은 땅에서 머리에 묻은 눈을 터는 한 명의 여성을 보고 멈췄다. 그녀가 아니었다. 눈보다 더욱 빛나는 머리카락에 앉은 눈을 털어낸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안경 속에 숨겨진 눈이 무슨 색인지 거리가 멀어서 알 수 없었던 라세인은 자신과의 거리를 좁히고 고개를 꾸벅 숙인 그녀의 눈이 인간에게 있을 수 없는 색이라는 것을 알고 검집에 담긴 검의 위치를 기억했다.
“안녕하세요.”
적녹안. 인간에게 있을 수 없는 두 가지 색을 눈동자에 가진 여성이 인사를 건넸다. 북쪽은 춥네요. 라고 말을 걸어오는 여성에게 악의는 없어보였다. 경계를 완전히 풀지는 않고 춥지. 라고 대답한 라세인을 보던 그녀는 마을은 어디로 가야하나요? 라고 물었다. 북쪽의 사람들은 라세인을 받아들이는데도 꽤 시간을 썼다. 그런데 그녀를 쉽게 받아들일까? 분란의 씨앗이 될 존재를 마을 사람들과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았던 라세인은 그녀와 눈을 맞췄다. 푸른 눈과 적녹의 눈이 조용히 얽혔다.
북부대공의 성에 머물 방을 얻고, 라세인이 북부대공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여성, 아인하르트는 놀라지 않았다. 힐라스 황제의 스승인 레오가 보면 금갈색 눈을 반짝이며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을 인간이 아닌 여성은 하인들이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었다. 완전히 북부의 사람인 듯한 그녀를 보고 하인들은 북부대공이 드디어 첫 사랑을 잊었다는 듯의 소리를 했다. 이상한 소리가 손님인 아인하르트의 귀에 들리지 않도록 입단속을 시키라는 말을 충직한 시종에게 부탁한 라세인은 서류를 끝내고 방을 나왔다.
새벽이었다. 라세인이 가장 사랑하는 조용한 시간을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흔들고 있었다.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걸어간 북부대공은 노랫소리의 주인공이 자신이 성으로 데려온 손님이라는 것을 알았다. 에르위니아. 그리고 티니아와 함께 했던 여행에서 들었던 세이렌의 노랫소리보다 아름다운 노래였다. 마력이 담겼더라면 정말로 홀렸을 노래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처음 만난 그 순간처럼 아인하르트가 돌아보았다. 꾸미는 말과는 거리가 먼 라세인은 제 솔직한 심정을 담기로 했다.
“멋진 노래였어.”
한 번 더 들려주지 않겠어?
입에서 내뱉지 않아야 할 질문이 흘러나왔다. 홀린 걸지도 모른다. 그녀의 노래에. 혹은 그녀라는 존재에. 라세인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입술을 움직이는 아인하르트의 옆에서 생각했다. 인간이 아니었지만 그녀가 조금만 더 오래 이 성에 머물러줬으면 좋겠다고. 욕심이었다.
욕심이 끝나는 날은 밤이었다. 고마웠어요. 라고 말하고 방을 나온 아인하르트를 마주한 사람은 라세인 뿐이었다. 떠나는 날도 만나는 날보다 갑작스럽다는 말을 해주려다 라세인은 자신의 것이었지만 한 번도 착용해보지 않은 귀걸이를 품에서 꺼냈다.
“그대가 언제 이곳에 다시 돌아올지 모르지만 그 귀걸이가 있으면 북쪽의 모든 사람들은 그대를 반겨줄 거야.”
그러니 다음에 또 만나지, 아인하르트.
북부대공은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자신의 친구들처럼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작별 인사와 함께 넘겨받은 귀걸이를 착용한 아인하르트는 고마워요, 라세인. 이라는 말과 함께 성을 나갔다. 귀걸이보다 반짝이는 여성이 달의 빛을 받고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라세인은 기억 속에 남은 그녀의 노랫소리를 흥얼거리며 생각했다.
자신은 한동안, 그녀를 그리워 할 것이라고. 열병에 걸린 것처럼.
*
라세인으로는 에유를 잘 안 쓰는데 새벽에 넘 멋진 연성을 받아서 달렸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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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발에 적녹안 뱀파이어(아인)랑 북부대공 라세인이 눈오는 날 만나면 어울릴 거 같아요. 라는 르네님의 멘션을 보고 적었습니다. 북부대공 자캐 연성을 받아버린 김에멭... 눈물.. 펑펑...(르네님 계신 곳으로 여러번 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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