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숲
리딜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우는 12년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다른 여우들보다 오래 살았다. 독립한 후, 오랫동안 혼자 살아온 탓에 자신이 오래 산다는 사실을 모르던 리딜은 처음으로 사귄 친구의 죽음으로 자신이 다른 여우들보다 오래 살아온 여우임을 깨달았다. 10년이면 오래 산거라고 말하며 눈을 감고 다시는 움직이지 못 하게 된 제 친구를 묻어준 리딜은 보름달이 유독 커다랗던 그 밤, 자신이 살던 숲을 떠났다. 여우는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이렇게 오래 살고 있는 이유를 찾으려고 했으나 매번 실패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을 기다리며 즐겁게 사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일임을 깨달은 리딜은 조용히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숲을 찾아 헤매다 그 사람을 만났다. 리딜이 다른 여우들보다 많이 보았던 추운 겨울의 아름다운 풍경을 생각나게 하는 아름다운 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그의 이름은 하이네 벨라크루즈였다. 와인색 눈동자가 리딜을 담았다. 새로 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은 벨라는 긴 손가락으로 리딜을 쓰다듬었다.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낸 리딜은 벨라가 있는 이 숲을 자신이 살아갈 마지막 장소로 선택하고, 길을 아는 사람도 한 눈을 팔면 미아가 될 복잡한 길을 거쳐야 올 수 있는 바위틈에 자신의 은신처를 마련했다.
은신처를 마련한 리딜은 아침이 오면 매번 벨라를 만났다. 그가 이 숲을 지키는 수호자이며 그의 집이 숲에 위치한 작은 오두막임을 안 리딜은 은신처에서 나오면 빠르게 벨라가 사는 작은 오두막으로 달려갔다. 반가운 얼굴로 자신을 맞으며 어서 오라고 말해주는 목소리가 달았다. 뜻이 통하지 않는 울음소리로 밖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야하는 현실에 슬픔을 느꼈을 때, 리딜은 자신이 인간인 벨라를 좋아하고 있음을 알았다. 마음을 전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그는 인간이고, 자신은 여우였다. 여우가 인간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자신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리딜은 평소보다 오래 벨라의 옆에 붙어있었다. 차라리 지금 죽음이 찾아와서 당신의 품에서 숨을 거뒀으면 좋겠다. 그럼, 사랑은 아니더라도 나는 당신에게 다른 여우들보다 조금 더 기억될 수 있을 텐데.
벨라가 모르는 욕망을 안고 리딜은 자신의 은신처로 돌아왔다. 바위틈 깊숙한 곳에 웅크린 리딜은 눈을 감았다. 오늘 밤도 어젯밤처럼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괜찮아요?”
낯익은 목소리가 꿈을 헤매던 리딜을 깨웠다. 눈꺼풀을 연 리딜은 제 은신처인 바위틈 깊숙한 곳에서 자는 날에는 받을 수 없는 환한 빛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인간들이 말하는 몽유병이라도 걸린 것일까. 다른 여우들은 몰라도 오래 살아온 여우인 자신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납득하던 리딜은 한 번 더 자신에게 괜찮냐고 묻는 목소리를 들었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움직인 리딜의 눈에는 곧 벨라의 모습이 담겼다. 그런데 벨라가 여우인 자신에게 말을 높였던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리딜은 울음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을 말로 자신이 괜찮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 입술을 움직였다.
“괜찮아요.”
여우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놀란 리딜은 벌떡 일어나 자신의 몸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털이 없다. 꼬리도 없다. 그리고 그는 지금 네 다리가 아닌 두 발로 서서 벨라를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리딜에게 벨라가 말했다.
“길을 잃어버린 거라면 말씀하세요. 마을로 가는 길을 알려드릴게요.”
리딜은 부정의 뜻을 담아 고개를 저은 뒤, 벨라의 옷자락을 잡았다. 손을 잡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겨우 잡은 옷자락에 가슴 어딘가에 자리한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빠르게 뛰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알지 못 하는 혼란스러운 리딜이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벨라를 보았다. 바위틈에서 벨라를 생각하며 인간이 되기를 바라던 때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생각했던 것들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행동 하나, 말 하나도 하지 못 하고 멀뚱히 벨라만 보고 있었다. 이렇게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줄 바에야 인간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고 생각하던 리딜은, 이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 순간이 지금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마지막 용기를 쥐어짰다.
“나는 당신을 만나러 오던 여우에요.”
왜 인간이 됐는지는 모르겠어요. 당신이 믿지 않아도 어쩔 수 없고요. 하지만 정말이에요.
인간들이 사용하는 횡설수설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를 위해 준비된 것이리라. 그 말을 만들어준 인간에게 감사하면서도 리딜은 벨라의 옷자락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강하게 잡은 것은 아니었으나 리딜의 손이 자신의 옷자락을 잡게 놔둔 벨라가 하늘을 보았다. 리딜도 벨라를 따라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한 바탕 쏟아질 것처럼 어두웠다.
“따라와요.”
납득했는지 납득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리딜은 벨라의 집에 있었다. 그 날도, 다음 날도. 벨라는 리딜이 오두막의 생활에 적응하는 동안, 서재의 다양한 책을 보았다. 내가 도와줄 일은 없어요? 다가와서 묻는 리딜에게 벨라는 말로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저은 뒤, 책장에서 뽑아든 책에 집중했다. 인간의 몸으로 움직이는 것에 적응하게 되었을 때, 벨라는 리딜에게 자신이 보던 책을 내밀었다.
“당신은 여우에요. 보통 여우는 아닙니다만.”
“나는 어떤 여우인데요?”
“수인족이라고 추정하고 있어요. 인간도 될 수 있고, 동물도 될 수 있는데… 인간이 되어본 건 정말로 최근이 처음인가요?”
“정말로요. 손등에 키스하면서 맹세할까요? 아니면 도장이라도 찍을까요? 나 도장 찍는 법은 모르니까 벨이 알려줘요.”
그만 다가오라는 것처럼 벨라는 손을 들어 자신과 리딜의 사이에 놓았다. 벨라의 재스쳐를 이해한 리딜은 걸음을 멈췄다. 지금은 여기까지가 적정거리인 모양이다. 그 책을 읽어보면 당신에 대해 더 알 수 있을 겁니다. 자신과 같은 감정은 아니겠지만 배려를 해줄 호의 정도는 벨라에게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리딜은 벨라가 건넨 책을 보았다. 책을 통해 리딜은 자신이 보통의 수인족이 아니라 후천적인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언제 죽을지, 언제까지 살지 알 수 없는 수인족. 그런 수인족은 인간이 되면 그때부터 동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까지 자세하게 쓰여 있었다. 고마워요. 감사의 인사를 한 리딜은 책을 책꽂이에 조심스럽게 꽂았다.
“처음보다 익숙해졌네요.”
“그러게요. 더 익숙해지고 싶은 일이 많아요. 도와줄래요?”
책을 통해서는 부족한 게 많잖아요.
리딜을 바라보던 벨라는 잠시만이에요. 라고 말하고 몸을 돌렸다. 숲의 수호자. 숲을 지키고 숲을 관리하는 마법사라고 리딜이 여우였던 시절, 벨라는 말했다. 당신의 일을 도와줄 수 있으면 좋다는 바람을 품고 매번 오두막으로 왔다. 제대로 된 도움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만 괜찮다면 여전히 당신을… 리딜은 생각을 멈췄다. 더 생각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리딜이 인간으로 변해 체험한 인간은 그런 존재였다.
벨라의 오두막에서 벨라와 한 달을 살면서 리딜은 많은 것을 배웠다. 여우였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흡수력이 빠른 덕분에 리딜은 인간에 가까워졌으나 아직도 가끔은 여우처럼 굴었다. 웃을 때라거나. 벨라에게 치댈 때라거나. 벨라가 손바닥을 펴서 올리는 것을 보면 떨어지기는 했다. 오늘 역시 그랬다.
“나중에는 당신 혼자 살아야 하는데 아이처럼 굴면 어떡합니까?”
그때는 아직 멀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벨라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말이 금방 나오지 않았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기 전, 리딜은 겨우 웃었다. 기억하고 있어요. 걱정 말라는 말도 해주고 싶었지만 그 말까지 할 정도로 기분을 추스르지 못한 리딜은 공부를 핑계로 벨라에게서 멀어졌다.
한 글자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책과 씨름하는 사이, 세계가 어두워졌다. 오두막의 불을 켜며 리딜은 벨라를 찾았다. 벨? 불러도 돌아오지 않았다. 밖에 나간 모양이다. 평소라면 벨라가 허락하지 않는 한은 따라가지 않지만 오늘은 느낌이 이상했다. 겉옷을 입은 리딜은 오두막 밖으로 나왔다.
귀도, 눈도 보통 인간보다는 뛰어난 수인족이어서 어두운 숲을 헤매는 일에 큰 불편은 없었다. 숲을 한참 제 집처럼 뛰어다닌 리딜은 주저앉아서 발목을 매만지는 벨라를 발견했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발이 삔 모양이었다. 업혀요. 벨라가 업힐 수 있게 등을 내어준 리딜은 주저하던 벨라가 자신의 등에 업히자 조심조심 일어나 어두운 숲을 걸었다. 별이 조용히 반짝이는 숲은 마법사라고는 해도 인간이 혼자 다니기에는 위험한 곳이었다. 다음부터는 자신을 데리고 나오라는 말을 해줄지 고민하는 리딜의 귀를 벨라의 목소리가 두드렸다.
“당신은 왜 인간이 되고 싶었죠?”
“당신이 좋아서요.”
“…….”
“나는 단순한 이유로 인간이 됐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이 됐지만 그래도 만족해요. 같은 마음으로 보지 않아도 좋고, 당신이 불편하면 그 오두막을 나가 혼자 살 테니 걱정은 말고요. 이제 나도 인간에 대해 많이 공부했다고요.”
“어제도 계산을 틀렸잖습니까.”
“너무 정확한 지적에 뼈가 아프네요.”
…좀 더 있어요. 계산도 틀리잖아요.
벨라가 내어주는 최선의 대답을 듣고 리딜은 웃었다. 그 ‘좀 더’가 얼마인지 묻지 않은 여우는 자신을 길들이고 있는 숲의 수호자를 업고 자신과 그의 보금자리가 될 오두막으로 향했다. 여우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어느 때보다.
*
리딜벨라 200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하합니다~!
숫자 보고 귀여워귀여워 연발했었던 거 같은데(지금도 숫자 너무 귀엽지만) 벌써 200일을 맞이한 리딜벨라 200일 기념 연성은 예전에 썰로 한번 이야기 한 적이 있는 여우리딜벨라의 이야기.
벨라는 뭐가 좋을까. 하고 한참 고민하다가 마법사로 했어. 마법사 벨라 쓰기 넘 재미있었다. 나중에 한 번 더 써봐야지.(소재 킵킵함)^3^
오늘만 지나면 금요일이고 주말이 다가오는구나. 목요일 잘 보내고, 금요일도, 주말도 행복하게 보내길 바랄게! 200일이란 긴 시간을 나랑 리딜이랑 함께 해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쥐랑 벨라 내가 많이 좋아해. 사랑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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