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보석
여행자의 별이라고 불리는 지구의 고요한 밤이 일을 끝내고 자유의 몸이 된 라세인을 맞았다. 저녁과 새벽 사이에 존재하는 심야라고 불리는 시간에 돌아온 그의 복장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였다면 제법 시선을 받았을 복장이었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이 눈에 띄는 일이 없도록 나름의 조치는 취해둔 상태였지만, 이 별에는 그 조치가 통하지 않는 상대가 살았다. 예외의 발생을 막기 위해 조심할 필요가 있었던 맹약자가 지구로 이동하기 위해 선택한 장소는 바다였다. 파도 소리만이 들리는 저녁의 바다라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으리란 판단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사람의 방문이 적은 바다의 새하얀 모래의 감촉이 구두에 닿았다. 선명히 새겨진 제 발자국을 보며 돌아온 것을 실감하던 라세인은 자신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지구로 이동하기 위해 선택한 ‘사람이 없는 장소’에 사람이 다가오다니. 스마트폰의 조치를 믿으며 자신이 할 일을 찾던 라세인의 푸른 눈에 발소리의 주인이 담겼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뱀파이어, 아인하르트였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여행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라세인은 자신을 보고 걸음을 멈춘 아인하르트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이 바다에서 그대와 만날 줄은 몰랐어, 아인하르트.”
“라세인이군요. 옷이 평소랑 다른 것 같습니다.”
“이런 옷을 입어야 하는 장소에 있었던 덕분이지.”
화려한 지팡이까지 들고 있었다면 아인하르트에게 자연스럽게 인사할 여유조차 없었을 라세인의 푸른 눈이 아인하르트의 붉은 눈과 마주쳤다. 어두운 곳에서도 아인하르트의 눈은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났다. 자신과 그녀의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싫어하는 티를 숨기지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브가 이해가 될 정도였다. 이해하지만 이브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라세인은 귀를 두드리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바다보다는 연회장이 어울릴 의상이었지만 갈아입고 올 시간도 없었고. 그대는 여행 중인가?”
“네, 라세인을 만날지는 몰랐습니다.”
“내가 그대를 붙잡은 거라면 사과하지.”
“괜찮습니다. 라세인이야말로 돌아가야 하지 않습니까?”
“바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의 여유는 있지.”
그대만 괜찮다면 바다 구경에 동행하고 싶은데. 허락해주겠나?
숙녀님을 에스코트 하는 신사의 복장으로 라세인이 내민 손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인하르트가 라세인이 내민 손 위에 손을 올렸다. 아인하르트의 복장은 드레스가 아니었지만 드레스를 입은 숙녀님을 에스코트 할 때보다 더욱 신경을 쓴 라세인이 아인하르트와 함께 도착한 곳은 파도가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모래사장이었다.
“좋은 위치군요.”
“다행이군.”
“감사합니다, 라세인.”
“나야말로.”
짤막하게 대답한 라세인은 입을 다물고 낮과는 다른 밤의 바다를 보았다. 낮의 푸름을 전부 집어삼키고 검게 물들어버린 밤의 바다는 새벽이 오고 낮이 오면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여행 중에 이 바다를 보러 온 아인하르트가 보고 싶었던 것은 아침의 바다일까. 아니면 이 밤의 바다일까. 아침이든 밤이든 그 풍경이 아인하르트의 마음에 새기는 것이 어둠이 아니라 작아도 따스한 빛이길 자신을 사랑하는 신들에게 바라던 라세인은 소금 냄새를 품은 바다의 차가운 바람에 흔들리는 아인하르트의 머리끈을 보았다.
흔들려도, 흔들려도 지탱되는 것들이 있다. 그녀의 머리끈도 그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안 라세인의 얼굴에 번진 미소를 본 아인하르트의 눈이 라세인을 올려다보았다.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아인하르트의 귀를 두드리는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소리를 내지 않고 입술을 움직여 대답을 내어준 라세인은 푸른 눈을 바다로 돌렸다.
짤막한 휴식이 끝나기 전에 보는 이 바다는 앞으로도 영원히 맹약자로 살아갈 라세인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추억이라는 이름의 반짝이는 보석이 되리라. 옆에 서서 같이 바다를 보는 그녀의 기억에도 보석 같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 라세인은 얼굴에 번지는 쓴 웃음을 가리기 위해 아인하르트를 에스코트 했던 손으로 입가를 감쌌다.
라세인 데 루베르니겔 역시 아인하르트와 자신의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싫어하는 이브의 행동을 지적할 입장은 아닌 모양이었다. 파도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파도소리도 함께 바다를 보는 아인하르트의 옷자락이 내는 소리를 지울 수 없었다.
추억이 만들어진, 고요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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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님이 주신 아름다운 연성의 답례입니다.
수정할 부분 있으시면 언제든 이야기 해주세요! 늘 감사합니다!8ㅅ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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