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마녀의 성
최후의 마녀라고 불리는 리즈벳이 잠든 성은 얼음으로 만들어졌는데도 녹지 않았다. 지구의 모든 것이 사라져도 영원히 존재할 불멸의 성이라는 농담이 돌 정도였다. 이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전쟁이 치열하던 초가을부터였다.
거리에 쌓인 많은 시체들을 밟고 오늘 역시 누군가가 찾아왔다. 마녀의 잠을 방해하는 자들이었다. 영원한 젊음에 대한 기대를 품은 그들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성에 걸린 방어 결계와 함정은 완벽했지만 오늘은 그 방어 결계와 함정까지 뚫을 정도로 집요한 사람이 있었다. 한숨을 쉬며 그의 앞에 나타난 사리엘은 숨을 헐떡거리는 남자를 보다 손을 뻗었다.
시끄러운 비명까지 먹은 불꽃에 의해 매캐한 탄 내음을 남기며 생명 하나가 재로 변했다. 방어 결계와 함정에 순순히 격퇴되었더라면 벌어지지 않을 일이었다. 고통조차 잊게 만드는 탐욕이 문제인지. 쯧. 하고 혀를 차며 사리엘은 걸음을 옮겼다. 한 때는 인간이었지만 이 성에 머물며 마녀를 지키기 위해 뱀파이어가 되는 길을 선택한 그의 걸음은 마녀가 잠든 방 앞에서 멈췄다. 똑똑. 두 번의 노크는 이 성이 얼음이 아니라 아름다운 성이었던 시절부터 사리엘이 해왔던 일이었다.
어서 오라는 대답도, 자신의 애칭을 부르는 목소리도 없었다. 들어갈게, 리지.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 방으로 들어간 사리엘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리즈벳을 보았다. 플래티나 블론드의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그녀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최후의 마녀였다. 공주인 그녀가 마녀라는 사실을 안 자들은 그녀를 이용하기 위해 무기를 들고 성으로 침입했다. 그 날, 리즈벳이 사랑하던 모든 것이 죽었다. 살아남은 것은 리즈벳이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 하는 힘으로 끝까지 지켜낸 그녀의 연인, 사리엘 뿐이었다.
-기다려줘, 시엘.
기다릴게. 라는 말을 듣지도 못 하고 리즈벳은 잠이 들었다. 지켜주겠다고 약속해놓고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녀에게 지킴만 받은 사리엘은 리즈벳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밤의 주인인 뱀파이어가 되었다. 빛을 버려야 했지만 태양이 닿지 않는다면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그녀를 기다릴 수 있었으니까. 사리엘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모두가 사랑하고 탐하는 마녀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리지. 흥분을 가라앉히며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의 잠이 쉽게 끝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은 사리엘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사리엘을 지키기 위해 리즈벳이 사용한 마녀로서의 힘은 수명을 위협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인 리즈벳을 인간이 아니게 만드는 힘이었다. 고통 속에서 뱀파이어로서의 삶을 받아들이는 뱀파이어와 다르게 마녀들은 긴 잠을 자며 인간을 벗어났다. 힘까지 쓴 리즈벳이 잔 시간은 100년이 넘었다. 이 잠이 1000년이 될 수도 있고 10000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들었으니 포기하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지만 사리엘은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만나고 싶었다. 뱀파이어가 되어 스스로의 심장을 얼어붙게 할 정도로 사랑하는 리즈벳을. 떨리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려 사리엘을 보았다.
“오늘은 시끄럽네.”
깰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리즈벳의 작은 손을 사리엘은 두 손으로 잡았다. 리즈벳이 잠들고 뱀파이어가 된 오래 전에 말랐다고 생각한 눈물이 뺨을 타고 계속 흘렀다. 잡히지 않은 손을 뻗어서 사리엘의 눈물을 닦아준 리즈벳이 웃었다. 이제 보지 못 하는 눈부신 태양과 하늘이 그곳에 있었다.
“오래 기다렸어?”
“천년이라도, 만년이라도 기다릴 수 있었어.”
너는 약속을 어긴 적이 없잖아.
시엘도 그래. 라고 대답하며 리즈벳은 몸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잠든 통에 약해진 몸은 사리엘의 도움을 받은 후에야 침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얼음으로 만들어진 성을 걷고 주변을 둘러보던 리즈벳은 자신이 할 일이 대충 끝났다고 판단한 리즈벳은 몸을 돌려 사리엘에게로 다가갔다. 길어진 머리카락을 제하면 사리엘이 마지막으로 본 그 날과 똑같은 리즈벳이 사리엘에게 손을 내밀었다.
“춤을 춘지 오래 되어서 서투를지도 몰라.”
“나도 마찬가지야, 시엘. 하지만 추고 싶어.”
그때와 다르게 차가운 손으로 리즈벳의 손을 잡고 허리를 감싼 사리엘은 기억을 더듬으며 스텝을 밟았다. 따뜻한 리즈벳이 얼굴을 사리엘의 품에 기댔다. 마녀가 된 그녀는 손을 잡기 전부터 알았을지도 모른다. 사리엘의 몸이 더 이상 예전처럼 따뜻하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리즈벳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음악도, 아름다운 샹들리에도 없는 방에서 추는 춤이 끝난 후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약속을 지킨 연인은 서로를 끌어안은 팔을 풀지 않은 채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다시 잠들 거야?”
“가끔은 그럴 것 같지만 시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않을 거야.”
나는, 시엘의 심장이니까.
그것은 멈춰버린 사리엘의 심장이 되어주겠다는 리즈벳의 강한 맹세였다. 온기를 가진 자신의 심장을 가만히 바라보던 사리엘은 웃다가 눈을 감은 그녀를 보다 고개를 숙였다. 차가운 입술과 뜨거운 입술이 만났다. 사리엘은 자신의 멈춰버린 심장보다 뜨거운 리즈벳의 입술을 오랫동안 탐한 후에야 그녀에게 자유를 주었다. 자유를 되찾은 리즈벳이 입술을 움직였다.
“조금만 더 자고 만나러 올게. 기다려줄래?”
리즈벳의 눈에는 저번만큼 길지 않겠지만 긴 시간을 자신을 기다린 사리엘에 대한 걱정이 녹아있었다. 사리엘은 그런 그녀를 안고 토닥여주었다.
“천년이라도 만년이라도 기다릴 테니 푹 자, 리지.”
나의 공주님. 이라고 속삭인 사리엘은 리즈벳의 뺨에 입을 맞췄다. 두 번째 약속을 나눈 연인은 재회를 기다리며 각자의 나라로 향했다. 꿈과 밤. 재회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서로의 손을 놓지 못 하는 연인을 성 주위에 나타난 작은 별들이 춤을 추며 위로했다.
*
시엘리지 2400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하합니다~(폭죽)
공주님이자 마녀인 리지를 써보고 싶어서 마녀를 썼답니다. 소재만큼이나 글도 금방 나와서 즐겁고 행복하게 썼어요. 시엘리지가 벌써 2400일이네요. 날이 좋은데도 나가기 힘든 시기가 왔지만 이 시기가 얼른얼른 지나서 바깥에서 시엘리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2400일이란 긴 시간을 저랑 시엘이랑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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