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련(思戀)
01.
여름이 끝나고 있음을 알리는 소리는 벌레들의 울음소리였다. 카일리움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아이리아스는 밤이 깊어지자 시작된 조용한 울음소리를 반려, 가의와 함께 듣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집에 세워진 정자는 정원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위치에 있어 언제나 사계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었다. 정자로 스미는 보름달을 바라보던 가의가 정자로 가져온 금(琴)을 가볍게 건드렸다.
물과 초목을 수호하는 자인 가의의 연주는 많은 이들을 매혹시켰다. 그녀와 가족들의 적이자, 도연에게 앞뒤 꽉 막힌 사고방식의 노인네라는 평을 듣는 장로측에 붙어서 항상 적의를 드러내는 상아 역시 가의의 연주는 높게 평가했다. 당사자인 가의는 오라버니인 이경을 배신하고 죽이려고 한 것도 모자라 언니인 가혜를 위험하게 만든 상아가 하는 평가를 무척 싫어하겠지만. 야망을 품지 않았다면 가의와 가족이 되었을 상아가 선택한 사람은 오라버니의 친구인 비현이었다.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가의를 밀어내고 그녀에게 상처를 준 예전의 자신만큼이나. 아이리아스가 과거를 더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가의의 손이 금위에서 움직였다. 여름밤과 어울리는 연주가 정자에서 퍼져나갔다. 연주를 끝낸 가의에게 박수를 친 아이리아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가의의 손을 조심스럽게 쥐었다.
“가의의 연주는 언제 들어도 멋져요.”
“아이르를 생각하면서 연주했어요.”
“영광이에요. 라는 말로는 내 마음을 전할 수가 없네요.”
“말로 전할 수 없다면 행동으로. 라고 쓰였던데요.”
아이르가 보던 책에요.
나란히 앉아서 책을 보았던 주말에 보았던 책이었다. 그 책을 가의가 보았을 줄이야. 사실 아이리아스 역시 가의가 무슨 책을 보는지 궁금해서 눈을 흘끗하고 움직여서 그녀가 보는 책의 내용을 보기는 했다. 가의에게 묻지도 않았고 천족처럼 감정공유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나 알 수 있었다. 그 날, 자신과 가의는 같은 마음으로 서로가 보는 책을 눈에 담았다는 것을. 아이리아스는 제 마음을 행동으로 어떻게 전할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아이리아스의 손에 쥐어진 가의의 손은 곧 아이리아스의 입술 앞에 도착했다. 따스한 온기를 손등에 내린 아이리아스는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는 가의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어리석은 선택을 한 사람을 생각하다가 과거의 자신을 생각했기 때문일까. 오늘 따라 그녀를 놓아주고 싶지가 않았다. 아침이 뜰 때까지 이 품에서 그녀를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이 마음을 전하려면 지금은 행동이 아닌 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아이리아스가 입술을 움직였다.
“오늘 밤은, 가의를 놓아주고 싶지 않아요.”
“같은 마음이네요.”
말을 마치고 자신의 몸을 끌어안는 가의의 이마에 닿은 아이리아스의 입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입술과 입술이 닿았다. 여름밤처럼 긴 입맞춤이 이어졌다. 서로를 원하는 마음이 녹아든 입맞춤이었다.
02.
정령들은 호기심이 많았다. 막 태어나서 세계를 접하는 존재와 어울리는 특성이었지만 머리카락에까지 대롱대롱 매달려서 떨어지기 싫다고 아이처럼 울어대는 정령에게는 무녀도 속수무책이었다. 정령을 머리카락에서 떼어내지 못 하고 나타난 어린 무녀의 간절한 눈빛을 거절할 수 없었던 가혜는 결국 어린 무녀를 위해 정령에게 제 머리를 내어주었다. 밤까지만 제 머리카락에 대롱대롱 매달렸다가 돌아가겠다고 약조하긴 했지만, 가혜의 붉은빛 도는 금발에 대롱대롱 매달린 정령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렇게 좋을까.”
“넓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매일 듣는 반가운 목소리가 가혜의 귀를 두드렸다. 목소리가 들려온 정면을 본 가혜의 은색 눈에 붉은 기가 약간 도는 머리카락을 가진 반려의 모습이 담겼다. 막 태어나서 아직 말을 하는 법을 모르는 정령은 가혜의 머리카락에서 벗어나 누구야? 라고 묻는 것처럼 도연의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확실히 도연의 말이 맞았다. 넓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자신 역시 넓은 세상을 사랑해서 도연과 결혼한 지금도 여행을 포기하지 못 하고 있지 않은가.
“그대의 말이 맞아. 넓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 나 또한 그렇지.”
“자유를 버리고 누굴 도왔소, 가혜?”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작고 귀여운 무녀. 이야기가 길어질지도 모르는데 앉는 게 어때?”
“거절하겠소. 앉아서 길게 이야기 하려고 온 것이 아니니까.”
그럼? 이라고 묻기도 전에 도연은 손을 내밀었다. 데려다줘야 해. 가혜의 깔끔한 거절에 도연이 턱짓으로 이쪽으로 다가오는 누군가를 가리켰다. 도연의 움직임에 단백석으로 만들어진 귀걸이가 흔들렸다. 최근, 같은 원석으로 제작한 그 귀걸이는 가혜의 귀에도 달려있었다. 귀걸이에 눈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가혜의 앞에 도연이 턱짓으로 가리킨 사람이 도착했다. 무령이 신뢰하는 무녀였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도연의 곁을 빙빙 도는 정령을 데려온 무녀는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출처는 모르겠지만 이 상황을 들었군.”
“우연히 들었소.”
내 손이 비어있는데 안 잡아줄 생각이오?
도연은 항상 자신이 자유롭지 못 하면 자유롭게 될 상황을 만든다. 마치 자유를 참는 마음을 참지 말라고 말하는 것처럼. 도연의 손에 제 손을 얹은 가혜는 도연을 올려다보다 두 팔로 도연을 끌어안았다. 항상 생각하지만 넓은 품이다. 따뜻한 것도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며 가혜는 입술을 움직였다.
“손을 잡아줬으니까,”
그대의 품을 내어줘, 도연.
요구에 돌아온 것은 대답이 아닌 머리카락에 닿는 입술의 온기였다. 그는 이런 행동이 자신에게 욕심을 심는다는 사실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며 가혜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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