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다시 한번 나를
나단 윈체스터가 죽었다. 슬프지만 익숙한 일이었다. 나단 윈체스터의 사랑은 자신의 죽음을 먹이로 삼고 있었으니까. 지난 생보다는 편안히 죽은 나단을 루우네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처음 나단의 죽음을 보았을 때의 루우네는 자신의 몸에 번지는 떨림이 슬픔이란 감정에서 온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당연했다. 그때의 루우네는 나단 윈체스터를 사랑하는지도 몰랐고 그의 사랑이 자신의 힘이 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모르는 것이 가득이었던 루우네의 앞에서 나단의 몸은 사라졌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루우네는 동료들에게 집요하게 매달린 끝에 자신에게 진실을 알려줄 사람을 찾았고 마침내, 나단의 몸이 사라진 이유를 알았다.
“죽을 때마다 환생하는 저주네요. 일반인이 이런 저주를 받는 이유는 대개 두 가지인데 이 사람은 주변에 원한이 깊은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네요. 그 사람은 누굴까. 알고 싶네요. 그렇지 않아요?”
“놀리는 거예요?”
죄를 알고 낙원에서 쫓겨난 인간의 이름을 사용하는 마법사―이브는 입술을 끌어올려 웃었다. 얄미운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입에 내는 순간, 진실이 멀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어디 있어요? 루우네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던 이브가 손을 내밀었다. 이브는 지금 루우네가 던진 질문을 소원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돈? 마법이 담긴 악세사리? 아니면 마법서? 짜증은 났지만 무엇을 요구하든 주겠다고 결심한 루우네를 보던 이브가 갑자기 내밀었던 손을 거둬들였다.
“됐어요. 괜찮아요.”
“당신, 마법사잖아요. 대가가…”
“당신이 깨닫는 순간이 대가에요.”
어서 깨닫길 바란다고 덧붙이며 이브는 손가락을 튕겼다. 딱. 소리가 사라지고 자신의 손에 떨어진 메모를 들고 루우네는 이브의 가게를 나왔다. 깨닫는 순간이라니. 동료가 해준 경험담보다 더 기분 나쁜 여자였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담아 루우네는 가게의 문을 세게 닫았다.
모래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가득한 놀이터에는 나단도, 나단을 닮은 아이도 없었다. 입술을 깨문 루우네의 눈에 부른 배를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매만지는 여자를 보았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청년이 저 여자의 뱃속에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새로운 삶을 나단의 이름은 나단이 아닐지도 모른다. 외모도, 성격도 자신이 알던 그대로가 아니라는 사실은 두렵지 않았다. 맹약자라고 불리는 자들이라면 각오해야 할 인생이었다. 하지만 딱 하나는 두려웠다. 나단 윈체스터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그 푸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 밀려오는 공포 속에서 루우네는 이브가 말한 대가를 깨달았다.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도 몰랐던 그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순간이 대가였다. 울 수도, 비명을 지를 수도 없는 루우네는 모든 것을 삼키고 몸을 돌렸다.
환생하는 저주를 받았음에도 나단은 루우네를 사랑했다. 사랑을 깨달은 루우네가 포기하지 못 하고 나단의 근처를 맴돈 결과였다. 사실을 알면 소름이 끼칠 텐데도 나단은 루우네를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두 팔로 루우네를 끌어안고 사랑이 녹아있는 달콤한 목소리로 루우네를 불렀다. 루우네. 당신을 그렇게 만든 것은 나라는 말을 전했던 때도 있었다. 울었지만 나단은 결국 루우네를 잡았다. 떠나지 못 했다. 루우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은 좀 길겠네요.”
최소 50년? 100년? 기다릴 수 있겠어요?
평소보다 더욱 얄밉게 말하는 이브는 루우네의 대답을 이미 알고 있으리라. 루우네는 뭘 원해요? 라고 물었다. 이브는 환히 웃으며 청소 도구를 손으로 가리켰다. 사람을 부려먹는 것은 짜증이 났지만 50년. 혹은 100년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기다릴 수는 있었으나 그 오랜 기다림은 자신을 죽이고 갈증에 허덕이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나단 윈체스터를 만났을 때의 루우네 메라클은 사랑에 미쳐있겠지. 사랑에 미친 제 손이 나단을 망가뜨리는 것은 싫었다. 순순히 청소도구를 손에 든 루우네는 바닥을 보았다. 먼지 하나 없는 바닥을 보고 나오려는 한숨을 삼킨 루우네가 바쁘게 움직였다.
시간을 뛰어넘게 해주는 것은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사만이 가능한 기적이나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대가를 받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그 기적을 이브는 청소를 대가로 받고 현실로 만들었다. 먼 미래. 지금과는 다른 도시의 모습과 공기가 루우네의 코를 자극했다. 본래라면 과거에 있는 자신은 이 미래의 시간에 받아들여질 수 없다. 능력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투덜거리며 거리를 걷던 루우네는 자신을 향해 짖는 동물의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췄다.
“아, 죄송해요.”
채도가 낮은 금발과 호수를 닮은 푸른 눈을 가진 청년이 경계의 태세를 갖춘 반려견을 진정시켰다. 괜찮아. 괜찮아. 그 목소리가 자신을 걱정해서임은 안다. 하지만 지금 막 만난 청년―나단 윈체스터에게 루우네 메라클은 연인이나 소중한 사람이 아닌 타인이었다. 그래도 이 모습을 보기 위해 50년. 혹은 100년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겠지.
“노엘이 너무 짖어서 놀라셨죠? 괜찮으시면…”
“커피라면 내가 살게요.”
크림을 듬뿍 올린 카페 모카, 좋아해요?
나단은 푸른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어째서 루우네가 자신의 취향을 아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좋아해요. 다정한 목소리로 좋아한다고 긍정한 나단을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루우네는 나단의 옆에 섰다. 나단과 나란히 산책로를 걸어 카페에 도착한 루우네는 자신이 있던 세계와 달라진 카페의 주문을 척척 해내는 나단을 보았다. 한 동작, 한 동작 눈이 아프도록 담다가 이번에는 나단의 사진을 많이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요.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당신도요. 그런데요.”
“네?”
“이름을 모르고 당신이라고 부르니 좀 그렇네요. 이름, 알려줄래요?”
당신이 괜찮다면요.
루우네가 최대한 조심스럽게 나단의 이름을 물었다. 사실은 알고 있지만 나단이 말해주기 전까지는 나단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나단은 루우네를 알지 못 하니까.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이름을 밝힌다. 나단. 나단 윈체스터에요. 그 목소리가 너무 부드럽고 사랑스러워서 숨이 막혔다. 하마터면 커피조차 집어던지고 그를 끌어안고 싶은 자신을 진정시키며 루우네는 나단을 보았다.
“루우네.”
“루우네 씨라고 부르면 될까요?”
“루우네라고 불러요.”
“그래요, 루우네.”
죽어가면서 자신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나단이 웃었다. 이 웃음을 지키는 쉬운 방법은 자신이 이대로 사라지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미 늦었다. 루우네 메라클은 나단 윈체스터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모를 정도로 사랑해서 시간까지 넘었다. 그러니까,
“잘 부탁해요.”
루우네가 벌써 몇 번이나 나단의 죽음을 경험한 제 손을 나단에게 내밀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나단은 그 손을 잡았다. 시간을 넘어온 청년은 자신의 손을 잡은 손을 조심스럽게 놓았다.
나단 윈체스터가 다시 한 번 자신을 사랑하길 바라며.
*
루네나단 1주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폭죽)
이런 어둑한 이야기로 괜찮은가. 란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꼭 써주고 싶었어. 전에 랑이가 꼭 보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대가(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대가지만.)를 주고 나단을 만나러 간 루네의 이야기가 왔습니다.
좀 병든 느낌이긴 한데 즐겁게 읽어줬으면 좋겠다! 1년이나 제멋대로 루우네를 사랑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오늘도 랑이사랑나단사랑!ㅇ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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