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다음 고백

<span class="sv_member">에메트</span>
에메트 @acidcatsle
2026-02-07 17:18

예술품을 보는 눈은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지만 그림 실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들어본 적이 없는 아쉐리카의 예상대로 가주는 그림 실력이 후계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던 언니카밀라였다의외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른들은 브론테라는 가문과 이 영지를 물려받을 가주가 화가로서도 성공하길 원했다어른들의 그림에 대한 집착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가주의 직위를 받아들인 카밀라는 중요한 모임이 아니면 수도까지 오지 않는 아쉐리카를 불렀다데미자신을 부르는 카밀라의 목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춘 아쉐리카의 호박색 눈이 카밀라를 바라보았다아쉐리카처럼 끝을 다른 색으로 물들이지 않은 금발 아래에 있는 아름다운 얼굴이 찡그려졌다.

 

어떻게 할 거니데미?”

집으로 돌아갈 거야일이 끝났으니 내가 여기에 더 머무를 필요는 없잖아.”

너에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 널 가만히 놔둘 거라고 생각해흔들고 조종하려고 들 거야물론 나도 네가―

불안하다면 계약서랑 마법사 준비해철저한 준비는 할아버지도 칭찬하신 카밀라 해리엇 브론테의 특기잖아.”

 

신뢰한다고 말하면서 확실한 증명을 원하는 카밀라의 요구에 가장 알맞은 방법을 제시한 아쉐리카는 머리를 짚는 카밀라에게 다음에 봐라고 확실한 안녕을 말한 뒤저택을 나왔다준비된 마차를 타고 집이 아니라 집에서 멀지 않은 광장에서 내린 아쉐리카는 광장 서쪽으로 30분쯤 걸으면 나오는 공원의 구석공원에서 가장 큰 분홍색 꽃나무가 자리를 잡은 그곳에 아쉐리카의 얼굴에 웃음을 번지게 만드는 흑발의 청년―운하가 있었다강아지를 닮은 검은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어서 와요쉐리 씨.”

기다렸어?”

라고 대답하면 어떻게 해줄 거예요?”

키스해주겠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신의 얼굴을 감싸는 아쉐리카의 두 손을 받아들인 운하는온기와 타액을 나누며 서로를 원하는 그 순간이 끝나고 떨어지는 아쉐리카를 바라보다 내려놓은 도구들을 들었다다양한 그림이 그려진 작은 종이 묶음과 연필이 운하의 도구였다예술품을 보는 눈이 뛰어난 아쉐리카는 처음 운하의 그림을 보았을 때후원이라는 제안을 건넸지만 운하는 그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다.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요.

-어떤 일?

-친해지면 말할게요.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것도 모자라 친해지면이라는 조건을 단 이 남자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진 아쉐리카는 다음 날부터 시간이 나면 운하와 만난 공원으로 향했다공원에서의 만남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고종이 위에서 움직이는 연필의 사각사각 소리를 좋아하게 된 아쉐리카는 운하에게 두 번째 제안을 건넸다.

 

-당신만 괜찮다면 시간을 정해서 만날래?

 

웃으며 아쉐리카의 두 번째 제안을 첫 번째 제안과 다르게 수락한 운하는 자신이 오는 날과 오는 시간을 아쉐리카에게 알려주었다그 날과 그 시간이 본가에 가는 날과 겹쳐버릴 줄이야최대한 빨리 움직이기는 했지만 지각한 아쉐리카의 옆에서 운하는 오늘도 그림을 그렸다어떤 때는 풍경이어떤 때는 사람이 그려졌다운하가 가지고 다니는 종이 묶음은 가주를 목표로 다양한 미술 도구를 사용하며 그린 그림에 비하면 소박했지만 지금도 정말로 후원 받을 생각이 없어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아쉐리카의 마음을 흔드는 그림이었다.

 

연필만을 사용하는 그림이라 풍경을 그려도사람을 그려도 검은색이 전부인데 지금까지 만난 화가들이나 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양한 색을 쓰라는 날카로운 조언은 하고 싶지 않았다그저 보고만 싶었다옆에 앉아서 시작부터 완성까지를 전부그 감정이 소유욕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아쉐리카가 그림에 집중하고 있는 운하를 올려다보았다.

 

친해지면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준다고 했었는데기억해?”

기억해요그리고 우리는 굉장히 깊은 관계가 됐죠.”

키스할 정도로 깊은 관계지.”

쉐리 씨가 고백한 날에는 정말 놀랐어요.”

여운하를 놀라게 했다니다음 고백도 힘내야겠네.”

 

다음 고백이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를 알아챈 운하가 연필을 내려놓고 아쉐리카의 왼손을 잡았다왼손 네 번째 손가락을 가만히 바라보던 운하에게 손가락 사이즈를 말해줄지 고민하던 아쉐리카는 그대로 있어줄래요라고 말한 운하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꺼낸 케이스 안에서 꺼내진 반지가 제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반지는 놀랄 정도로 손가락과 딱 맞았다.

 

다음 고백은 당신에게 양보하라는 뜻이네.”

첫 고백도 쉐리 씨가 했잖아요다음 고백까지 쉐리 씨가 하게 만들 수는 없었어요급하게 느껴졌다면 미안해요.”

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어운하가 하지 않았다면 분명 내가 했을 테니까.”

긍정의 답인가요?”

그래대신 여운하에 대해 많이 알려줘야 해.”

나도 쉐리 씨에 대해 많이 알고 싶어요.”

그럼 오늘은 서로에 대해 아는 날로 하자.”

 

운하가 종이 묶음과 연필을 가방에 넣은 뒤손을 내밀었다오늘 막 착용해서 아직 낯선 반지가 반짝이는 손을 운하가 내민 손에 얹은 아쉐리카는 운하와 함께 공원을 나왔다무엇을 좋아하는지무엇을 사랑하는지무슨 일을 하는지알아가야 할 것들이 많았다그를 알아가는 것은 분명 오늘만으로는 부족할 거라고 생각하며 아쉐리카는 운하와 함께 거리를 걸었다.

 

노을에 물든 거리가 보인다지금까지와 같은 거리였으나 지금까지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분명 제 옆에서 걷는 이 사람 때문이겠지여운하노을에 붉게 물든 운하가 웃었다사랑스러운 체릿빛 입술에 공원에서 했던 것처럼 입 맞추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아쉐리카는 입술을 움직였다.

 

다음에는 말이야.”

 

날 그려줄래?

운하가 웃었다예상했던 대답이 아쉐리카의 귀를 두드렸다.

 

 

*

운하쉐리 3100일 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축하합니다~><

운하오빠가 태어난 봄은 아직 2달 남았지만 AU에서라도 다음 고백이라는 걸 써보고 싶어서 그대로 나아갔습미다주말에 온 운하쉐리 기념일 좋다좋다.(행복)

3100일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세하랑 운하오빠 내가 많이 좋아하고 사랑합니다~!ㅇ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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