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연인의 선물은 연인의 손으로

<span class="sv_member">에메트</span>
에메트 @acidcatsle
2026-02-07 17:14

길은 많이 있었지만 그리젤다가 선택한 길은 어머니의 상단을 물려받아 서부상단주가 되는 것이었다서부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어머니의 상단을 물려받은 그리젤다에게 가장 먼저 축하의 인사를 보낸 사람은 북부대공인 그리젤다의 사촌이었다어렸을 때부터 통하는 면이 많아 그와 잘 지냈던 기억을 떠올린 그리젤다는 축하의 인사를 보낸 그의 영지에 찾아가기로 마음 먹었다북부대공은 사촌이기도 했지만 좋은 거래 상대였다겨울마다 북부는 상단의 도움을 필요로 할 정도로 척박한 땅으로 변했으니까.

 

채비를 마치고 도착한 북부는 서부보다 추웠다. 1월이 되면 봄이 오기를 신전에서 기도할 정도로 추운 곳이 북부였다대공의 성은 황성과 서부처럼 화려하진 않았으나 견고해보였다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견고함이 여전하다니이 견고함의 유지를 위해 북부대공이 들였을 노력을 생각하며 그리젤다는 성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환영해주는 대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마물이 나타나 토벌을 갔다고 말하는 집사에게 웃으며 응접실에서 차를 마신 그리젤다는 정원으로 나왔다.

숨바꼭질로 사용했던 정원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확인하며 추억을 더듬다가 쉬기 위해 벤치에 앉은 그는 여기 있으셨군요라는 낯선 목소리를 들었다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낯선 목소리의 주인의 오해가 직접 풀릴 때까지 오해를 풀어주지 않기로 한 그리젤다의 앞에서 호흡을 고른 북부대공이 고용한 가정교사클레어가 말했다.

 

아가씨오늘의 공부는 끝나지 않았어요대공님이 오시기 전에 마저 끝내셔야죠.”

그쪽착각한 거 같은데요난 아가씨가 아니야.”

죄송합니다.”

 

긴 검은 머리카락을 움직임에 방해되지 않도록 틀어 올려서 묶은 클레어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그리젤다는 사과하는 클레어에게 괜찮다고 말한 뒤비어있는 제 옆자리를 가리켰다옆에 앉아요갑작스런 운동에는 휴식이 최고지휴식을 권하는 그리젤다를 본 클레어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방금 전자신이 했던 행동을 그리젤다가 전부 보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탓이었을까.

 

아뇨괜찮아요…편히 쉬세요.”

 

그리젤다의 제안을 거절한 클레어는 몸을 돌려 사라진 아가씨를 찾아 떠났다한 달 전에 귀여운 자식을 위해 가정교사를 들였다는 이야기는 편지로 들었다가정교사를 오자마자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사용인을 시키지 않고 아가씨를 찾아서 직접 북부대공의 성을 돌아다닐 정도로 행동력 있는 사람과 자신의 제안을 차분하게 거절한 사람이 동일인물이라니흥미가 동한 그리젤다는 조금 더 이 성에 머물기로 결정한 뒤응접실로 돌아갔다.

 

클레어 리우에요.”

그리젤다 페러그린이에요.”

 

북부대공 대신 그리젤다에게 성을 안내―그리젤다의 부탁이 있었지만.―하게 된 클레어는 이미 했던 통성명을 한 번 더 하고 안내를 시작했다서부상단주라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긴장한 그녀의 뒤를 따르던 그리젤다는 성의 주요 시설들을 열심히 안내하는 클레어를 불렀다레이디 리우이름을 들은 클레어가 검은 눈으로 그리젤다를 보았다북부대공은 그녀를 참 성실한 사람이라고 평했다확실히 사용인에게 맡기지 않고 이 성을 직접 걸어서 자신의 학생을 찾는 사람은 성실한 사람일 것이다.

 

우리가 만난 정원에 가고 싶은데요.”

오늘은 새벽부터 눈이 내려서 눈이 많이 쌓였을 거예요정원에 나가기에는…

그런 날에 밖에 나가야죠안내해주세요그리고 리제그렇게 불러줄래?”

 

얼굴을 가깝게 하고 그리젤다가 건넨 제안에 얼굴을 붉힌 클레어의 눈이 동그래졌다제가 어떻게… 예상했던 대답을 돌려주는 클레어를 보며 그리젤다는 웃었다성실함과 행동력을 동시에 갖춘 클레어 리우는 앞으로도 자신에게 벽을 세울 것이다그 벽을 천천히 무너뜨리고 그녀와 친해지기로 마음먹은 그리젤다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대공께 당신과 내가 비슷한 나이라고 들었거든나는 당신과 친해지고 싶으니까 편히 대해요.”

다시 안내할게요…정원이었죠?”

 

리제.

어설프게 이름을 부른 클레어가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그리젤다도 조금 빠른 걸음으로 클레어의 뒤를 따랐다새하얀 눈이 가득히 쌓인 정원이 두 사람을 맞았다발자국 하나 없는 새하얀 눈을 나란히 걸은 클레어와 그리젤다는 정원의 구경을 마친 뒤성 안으로 돌아왔다돌아오자마자 클레어가 작은 기침을 했다그녀도 북부의 겨울에 아직 익숙해지지 못 했으면서 자신을 안내하겠다고 겉옷도 없이 나간 모양이다그리젤다는 자신이 감기에 걸리면 사용하려던 그것을 클레어에게 건넸다.

 

열매네요?”

먹어요.”

?”

감기에 걸리지 않게 해줄 거에요불의 정령왕의 축복을 받은 열매거든.”

그런 비싼 물건은…

나 때문에 나갔으니까 먹어요얼른.”

고마워요리제.”

 

아까 전보다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르며 열매를 먹는 클레어를 보며 그리젤다는 웃었다비싼 물건이었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

 

눈이 녹고 봄이 왔다계절이 여름으로 바뀔 때까지 북부대공의 영지에 들러서 만나거나 편지로 클레어와 연락하던 그리젤다는함께 여름의 별장에 갈 생각이 있는지를 묻는 문장을 적었다가 그 문장을 전부 지우고 새로운 편지지를 꺼냈다봄부터였을 것이다이렇게 문장을 지우고 편지를 다시 쓰기 시작한 것은클레어와 친해지고 싶다고만 생각했다뒤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뒤가 친해진 지금 슬슬 감이 잡혔다자신은 클레어와 더 깊은 관계를 원한다그 관계를 한 단어로 정의하기 위해서는 이 마음을 클레어에게 전해야 했다가야겠네라고 중얼거리며 그리젤다는 마차를 준비했다그리고 클레어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서 구입한 귀걸이도 챙겼다고민을 거듭해서 고른 선물이었다보고 많이 기뻐해줬으면 좋겠다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서 와요리제대공님께서는 저녁에나 오실 거예요.”

마물이군요.”

덕분에 아가씨는 우느라 오늘 수업은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지만요.”

성실하게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지클레어는 이제부터 휴식이겠네요?”

방으로 돌아가려고 생각 중이었어요.”

아직 시간이 있으면 봐줬으면 하는 물건이 있는데요.”

 

어떤 물건이냐고 묻지 않고 자신을 보는 클레어에게 그리젤다는 가져온 그 물건을 내밀었다포장된 상자였다클레어에게 주려고 가져온 선물이야고개를 든 클레어와 그리젤다의 눈이 만났다상자로 쉬이 손을 뻗지 못 하는 클레어의 손을 그리젤다는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온기와 온기를 느끼며 말없이 서로의 손만을 보던 그리젤다와 클레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동시에 눈을 마주친 두 사람 중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클레어였다.

 

리제이 선물이 정말 내게 주는 물건이에요?”

클레어를 위해 열심히 골랐어요좋아해클레어.”

 

말을 마친 그리젤다는 천천히 손을 떼어냈다그리젤다의 온기가 남아있던 제 손을 바라보던 클레어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상자의 포장을 풀었다은은하게 빛나는 머리 장식을 바라보던 클레어는 그 머리 장식을 그리젤다에게 내밀었다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어서 긴장한 그리젤다에게 클레어가 말했다.

 

리제가해줄래요?”

 

연인의 선물은 연인이… 해주는 거라고 들었거든요.

사랑스러운 연인에게서 건네받은 머리 장식을 연인에게 해준 그리젤다는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는 말을 속삭인 뒤클레어를 품에 안았다고개를 숙인 어린 연인의 입술이 닿았다마음을 확인한 서로를 탐하고 취하기 위해.

 

 

*

쏘님의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축하 연성으로 가져온 건 저번에 함께 풀었던 서부상단주리제랑 가정교사 클레어에요약간 바뀐 부분도 있답니다.

행복한 생일 보내시길 바라구 생일 축하드릴 수 있어서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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