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의 꽃
01.
하야모토 스즈키가 알비에게 관심을 품은 날은 새로 신은 구두에 뒤꿈치가 까진 날이었다. 뒤꿈치에 느껴지는 통증을 참지 못 하고 의자에 앉아 신발을 벗고 상태를 살피는데 약과 밴드를 손에 든 낯선 사람이 다가왔다. 일반인과 다른 은색의 머리카락 때문에 조직에 들어온 날부터 많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던 알비였다. 알비의 커다란 손이 상처가 난 스즈키의 뒤꿈치에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할 일을 다 마치자 떨어지는 알비를 스즈키가 다급한 목소리로 불렀다.
“저기.”
누구를 칭하는지 알 수 없는 모호한 호칭임에도 알비는 자신을 부르는 것임을 알아듣고 스즈키를 보았다. 알비의 눈도 은색이었다. 그의 머리와 눈이 간직한 색이 밤을 아름답게 만드는 달을 닮았다고 생각하며 스즈키는 웃었다.
“고마워요.”
“별 일 아닙니다.”
딱딱한 목소리와 함께 멀어지는 알비의 뒷모습을 보며 스즈키는 그의 손이 닿은 뒤꿈치를 보았다. 아직도 쓰린 그 뒤꿈치에 그의 온기가 남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02.
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는데도 알비가 자꾸 생각나는 이 현상이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기 전에 스즈키는 알비의 가족이 운영한다는 꽃집에 찾아갔다. 아무런 꽃도 사지 않고 나올 수 없어서 스즈키가 구매한 꽃은 장미꽃이었다. 붉은 장미. 하얀 장미. 분홍 장미. 꽃집에 갈 때마다 바뀌는 꽃병의 꽃을 본 아버지, 렌은 무언가를 눈치 챈 모양이지만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스즈키를 자유롭게 풀어두었다. 꽃집에 가지 말라는 말을 예상하고 있었던 스즈키는 내심 안도하며 꽃병의 꽃과 오늘도 구매한 꽃다발을 번갈아 보았다. 꽃이 시들 때마다 가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빨리 방문했다. 덕분에 꽃병의 꽃이 시들지도 않았는데 꽃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아깝다는 생각을 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방의 청소를 하러 온 하녀라고 생각하고 내어놓은 대답을 듣고 문을 연 사람은 알비였다. 바닥과 신발이 부딪히며 나는 발소리가 컸다. 아니. 그가 내는 발소리가 큰 것이 아니라 그를 의식하는 자신이 문제였다. 제대로 된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꽃병의 꽃을 바라보던 스즈키에게 알비는 무언가를 내밀었다. 용기를 내서 알비의 손을 바라본 스즈키는 그의 손에 있는 물건이 자신이 오늘 한 머리 장식임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꽃집에 떨어뜨리고 온 모양이다. 꽃집에 간 이유를 들키지 않았을 텐데 그 이유까지 들킨 기분이 들었다. 귀까지 사과처럼 붉게 물들인 스즈키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알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가씨의 물건이 맞죠?”
“맞아요.”
“꽃집에 자주 찾아오신다고 들었습니다.”
“꽃에 관심이 생겨서요.”
“장미에요?”
“장미에요.”
평소라면 장미를 좋아하는 이유도 덧붙였겠지만 오늘은 좋다고 칭찬 들었던 말솜씨가 조금도 발휘되지 않았다. 한숨을 삼킨 스즈키는 자신의 머리 장식을 돌려주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고 방을 나가려는 알비를 불렀다. 시로즈키 씨. 걸음을 멈추고 이어질 말을 기다리는 그에게 스즈키는 오늘 구매한 꽃다발을 내밀었다.
“답례하고 싶어요. 머리 장식을 주워줬잖아요.”
은색 눈의 남자는 자신의 가족이 운영하는 꽃집에서 구매한 꽃이라는 반박을 하지 않고 꽃다발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아가씨가 아니라 스즈키라고 불러달라고 조르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스즈키는 멀어지는 그를 보았다. 방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 스즈키가 말했다.
“꽃집에 찾아갔을 때, 만나게 되면 아는 척 해줘야 해요.”
그러겠습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아가씨이기에 하는 말이리라.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을 닦기 위해 스즈키는 티슈를 뽑았다.
03.
어린 시절부터 혼담이 오가던 집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집안을 위해 그런 혼담쯤은 받아들이겠다는 마음도 먹었는데 막상 들으니 기분이 우울해졌다. 친구네 집에서 자겠다는 핑계를 대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던 스즈키는 카페에서 나오다가 마주친 알비를 보고 얼굴을 굳혔으나, 그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모른 척 지나가주려는 듯한 그의 옷소매를 스즈키의 손이 잡았다.
“아가씨…?”
“밖이잖아요.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용기가 만들어준 말을 들은 알비는 스즈키. 하고 속삭이듯 말하며 옷소매를 놓아주지 않는 스즈키의 손을 잡았다. 옷소매가 아닌 제 손을 잡아준 그의 뒤를 따라 걸어서 도착한 곳은 공원이었다. 스즈키는 먼저 벤치에 앉는 알비를 따라 벤치에 앉았다. 잡은 손을 여전히 놓지 않은 스즈키는 자신을 꽃집이나 집이 아닌 공원으로 데려온 알비를 보았다. 알비가 물었다.
“우울할 때는 단 음식이 좋다더군요. 사줄까요?”
“커피를 실컷 마셔서 됐어요. 그리고 말 편하게 해도 되는데요. 내가 저기. 그… 어리잖아요.”
“그래, 그럼 편하게 하자. 그리고 너도 이름으로 불러.”
꿈에서도, 혼자 하는 망상 속에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말을 들은 스즈키가 깜짝 놀라 네? 라고 되물었다. 알비가 못 하겠어? 라고 질문하자 스즈키는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있다. 아니. 할 수 없어도 해내야 했다.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용기를 쥐어짠 스즈키가 알비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알비.”
“잘 부르네. 이상하게 부르지 말고 그렇게 불러. 오늘은 꽃집에 안 갔어?”
“가면 울 것 같았어요.”
“왜?”
“당신 생각이 나서요.”
“그런 말은…”
“당신을 좋아해요. 나도 알아요. 자신이 속한 조직의 아가씨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얼마나 어이가 없는 투정으로 들릴지. 게다가 나랑 당신은…”
두 번 밖에 대화해본 적이 없다는 말을 입에 올리려고 하자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두 눈에 맺힌 눈물이 머리 장식을 받은 그 날처럼 후두둑 떨어질 거라고 예상한 스즈키가 손수건을 꺼내려고 했을 때였다. 알비의 두 팔이 스즈키를 끌어안았다. 알비의 품에 안긴 채로 말없이 그의 어깨를 적셔가던 스즈키가 입술을 움직였다.
“이러면 같은 마음이라고 기대해버리는데요.”
“같은 마음은 아니야.”
“나빴어.”
“하지만 이제까지와 다르게 보게 될 너랑 같이 나아가고 싶다고 하면…”
곤란해?
품에 안긴 탓에 고개를 휘저을 수 없는 스즈키가 두 팔을 뻗어 알비를 끌어안았다. 자신이 지금 내뱉는 대답으로 오늘보다 더 울고 더 상처 입으리란 사실을 예감하면서도 스즈키는 말했다. 곤란하지 않아요.
“알비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까지 끈질기게 붙어있을 거니까 도망치면 안 돼요.”
뒤꿈치에 생긴 상처에 닿던 그 온기를, 오늘의 말을 생각하면 울음도, 상처도 넘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스즈키는 눈을 감았다. 가족만큼은 아니더라도 꽃을 자주 접하는 알비에게서는 꽃의 향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꽃의 향기가 나지 않아도,
그는 스즈키의 안에 피어난 사랑이라는 이름의 꽃이었으니까.
*
언니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행복한 생일 보내길 바라요!^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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