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별
“보렴. 이 아름다운 별을.”
에류시오네의 사계절을 관장하는 여신, 세레나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별이 아카르의 검붉은 눈에 담겼다. 녹색도 간간히 보이지만 푸른색이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그 별은, 아카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물건인 어머니, 세레나타와 아버지, 카사티온이 가진 보석에 비하면 아름답다는 말이 아까운 모양새였다. 하지만 인간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동그란 유리구슬과 비슷하게 생긴 저 별을 알카엔디아의 많은 불멸자들이 사랑했다. 세레나타 역시 사랑했다. 신전을 가진 신이 아니었다면 세레나타는 지구라는 이름을 가진 저 별을 자신의 두 번째 고향으로 삼았으리라.
“아카르도 저 별을 사랑하게 될 거야.”
얼굴을 부비는 세레나타가 하는 말을 들으며 아카르는 다시금 테이블 중앙에 놓인 오르골이 만든 영상을 보았다. 마력을 주입하면 마력이 사라질 때까지 기록한 영상을 보여주는 오르골은 카사티온이 세레나타에게 준 선물이었다. 세레나타가 사랑하는 별을 오르골에 기록한 영상으로라도 볼 수 있도록. 그 선물이 세레나타에게 그리움만 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선물을 망설였다던 카사티온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아카르는 세레나타가 사랑하는 별을 보았다. 시간이 흐르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아카르는 지구라는 이름을 가진 저 별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장이라는 의상은 마음에 들었지만 여전히 지구라는 이름의 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못 했던 아카르가 지구로 갈 계기를 만든 사람은 상관인 펠리시티였다. 레오가 선물이라는 말로 떠넘긴 지구의 홍차를 반 정도 비웠을 때, 펠리시티는 아카르를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세계를 움직이는 부품 중 한 명인 칼리드 아에쉬마가 지구로 간 이유를 조사할 것을 명령했다. 거절하고 싶다면 거절해도 된다는 것이 직속부하인 아카르에게 펠리시티가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었다. 거절할 자유를 주면서도 펠리시티가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아카르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칼리드의 조사에는 그가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말이 필요했다. 칼리드는 대체품이 있는 말은 거침없이 부수는 곤란한 부품이었으니까.
명령을 받아들인 아카르는 지구로 향했다. 빠르게 끝낸 조사를 펠리시티에게 보고한 아카르는 조금 더 지구에 머물기로 했다. 변덕으로 이뤄진 머무름을 통해 아카르는 어린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 했던 지구라는 별의 매력을 깨닫게 했다. 숨겨진 비일상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일상과 공존하는 세계라니. 비일상이 당연한 세계에서 살아온 아카르는 일상과 비일상이 벌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매료되어 결국 지구에 집을 마련했다. 세계의 이동은 은의 대공이라 불리는 직위를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아카르에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므로.
아카르가 자신을 매료한 세계에서 ‘당분간’이 아니라 ‘오래도록’ 머물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네로였다. 사막에서 만난 녹색 눈의 악마. 세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아카르의 작고 소중한 연인은 아카르의 옆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요새 유행하는 판타지 소설이었다. 집중해서 책을 읽던 네로의 눈이 아카르를 보았다. 아카르가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것처럼 다정하게 웃으며 머리를 매만져주자 네로가 입술을 움직였다.
“아카르의 고향에 사는 사람들도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무기를 당연하게 가지고 다녀?”
“테르아노엔… 방금 사용한 단어는 내가 사는 세계에서 이 별을 부르는 이름이에요. 네로는 아직 익숙하지 않을 테니 지구라고 할게요. 맞아요. 무기를 당연히 가지고 다니죠. 궁금한 게 있다면 계속 물어봐요, 그대.”
“아카르가 사는 동네의 계절이 궁금해.”
“내가 사는 곳은 계절의 변화가 가장 미약한 세계였어요.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사계절을 아예 몰랐을 거예요.”
“아카르가 사는 곳에는 가족이 있겠네.”
“네, 하지만 언제든 만날 수 있고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대와 함께 있고 싶으니까요.”
두 세계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한다면 나는 네로가 있는 세계를 선택할 생각이에요, 그대.
아카르의 말을 들은 네로는 책에서 떼어낸 손으로 아카르의 얼굴을 감쌌다. 키스해달라는 말을 하지 않고 먼저 입술을 맞댄 네로와 깊은 입맞춤을 나눈 아카르는 책이 아니라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다는 뜻을 책을 덮는 것으로 드러낸 네로를 무릎에 앉혔다.
“책은 재미있게 읽었나요, 네로?”
“응, 하지만 아카르랑 노는 게 더 재미있어.”
“네로의 예쁜 입이 예쁜 말을 하네요.”
“예쁜 입이야?”
“네, 예쁜 입이에요.”
아카르의 손가락이 살짝 열린 네로의 입술을 매만졌다. 가벼운 터치에 아카르의 무릎에 앉은 네로의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아카르는 무릎에 앉은 네로를 자신의 두 팔에 가둔 채로 입술을 겹쳤다. 두 번째 키스 역시 첫 번째 키스처럼 깊었다. 한참 뒤에야 떨어진 아카르는 호흡을 고르는 네로를 보다 네로의 뺨에 입술을 눌렀다.
“가끔 이 세계가 더 아름다운 이유는 네로가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카르.”
이름을 부른 네로가 손을 뻗어 아카르의 긴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마족임에도 빛 아래에서 더욱 아름답게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쥐고 입술 앞으로 끌어가 입 맞추는 네로의 모습을 아카르는 검붉은 눈에 담았다. 이 별에는 마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이 모습을 기록할 수 있는 카메라라는 도구가 있다. 그 카메라라는 도구를 이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쉽게 생각하면서도 네로의 행동을 눈과 머리에 새긴 아카르는 세 번째 키스를 하려는 것처럼 네로의 얼굴과 자신의 얼굴을 가깝게 했다.
호흡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리에서 검붉은 눈과 녹색 눈이 서로를 담았다. 지구라는 별에서 태어나 지구라는 별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작은 연인이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작은 연인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카르는 잘 알았다.
“이름을 불러줘요, 그대.”
하지만 바라는 것을 그 손에 금방 주지는 않기로 했다. 이 사랑스러운 작은 연인을 애태우며 사랑하고 전부 집어삼키는 것은 아카르가 무척 좋아하는 일이었으므로. 눈을 감은 네로의 입술이 움직였다.
“아카르.”
입술에서 흘러나온 달콤한 목소리에 화답하듯 아카르는 고개를 숙였다. 서로를 원하고 탐하는 시간으로 이어질 세 번째 키스를 나누며 아카르의 손이 네로의 손을 잡았다.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못 하도록.
*
아카네로 600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하합니다~!
왔다. 아카네로 600일!^3^ 어린 아카르가 나옵니다. 랑이에게 아카르에 대해 좀 더 알려주고 싶어서 써봤는데 잘 알려줬는지 모르겠다.
날이 많이 추워졌지요. 건강 조심하고 오늘만이 아니라 항상 행복한 하루가 되길 바라.uㅅu
600일이란 긴 시간을 나랑 아카르랑 같이 보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랑이사랑네로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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