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초대

<span class="sv_member">에메트</span>
에메트 @acidcatsle
2026-02-07 17:38

배우였던 사리엘의 아버지는 극장에서 죽었다이제 막 빛을 보기 시작한 배우였던 그의 존재는 금방 지워졌고 어린 사리엘은 아버지의 친구였던 각본가 부부에게 맡겨졌다각본가 부부는 좋은 보호자였지만 아버지의 기억이 선명한 사리엘은 각본가 부부의 자식은 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사리엘도 아버지처럼 극장의 무대에 섰다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리엘의 연기에 주목했다작은 극장에서 큰 극장으로단역에서 주역으로.

 

노력과 재능으로 순식간에 정상의 자리에 오른 사리엘의 후원자는 다른 귀족 가문과 교류하지 않는 폐쇄적인 후작 가문의 주인리즈벳이었다이름 말고는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고 티켓을 보내도 극장에 오지 않던 정체불명의 후견인의 초대는 갑작스럽게 이뤄졌다시간이 늦은 저녁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후견인의 초대였다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사리엘은 평소보다 많은 준비를 한 뒤마차에 올랐다.

 

어서 와요사리엘.”

 

후견인리즈벳은 아름다운 여성이었다저택에 만개한 붉은 장미보다 더 붉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춘 사리엘은 입 맞추기 위해 잡은 그녀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갑다는 사실에 당황했으나당황을 빠르게 감추고 응접실의 소파에 앉았다.

 

늦은 시간에 부르실 줄은 몰랐습니다.”

사정이 있어서요이번 연극에서도 주연을 맡았다고 들었어요축하해요.”

곧 티켓을 보낼 예정이었습니다꼭 관람하러 오시면 좋겠네요.”

노력해볼게요그런데 사리엘은뱀파이어를 믿나요?”

 

이상한 질문이었다뱀파이어라는 가상의 존재를 믿냐니하지만 상대는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하는 후견인이었다진지하게 대답하지는 못 해도 신중하게 대답해야한다고 판단한 사리엘이 입술을 움직였다.

 

그들이 있다는 가능성을 아예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눈은 다른 말을 하고 있는데요.”

실례겠지만 그대로 돌려드리죠리즈벳님께서는 뱀파이어를 믿습니까?”

실례라는 걸 알면서 질문하다니역시 당신은 다르네요’.”

 

리즈벳의 가문이 다른 배우를 후원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사리엘이 미간을 좁히자 곁으로 다가온 리즈벳은 그 얼음장 같은 손으로 사리엘의 손을 잡았다손등에 키스하듯이 입술을 댄 리즈벳을 보던 사리엘은 깨달았다그녀의 가지런한 이가 날카로워졌다는 사실을말도 안 되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리엘이 리즈벳에게 물었다.

 

뱀파이어는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려고 날 여기까지 부르신 건 아니겠죠.”

똑똑하네요오늘은 내가 누구인지 말해두고 싶어서 당신을 불렀어요지금까지의 인간들처럼 도망가지 않는 당신에게 흥미가 생겼으니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뱀파이어의 흥미라니자신이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흥미겠지만 그 흥미가 계속된다면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아도 되리란 생각을 한 사리엘은 자신에게서 떨어지려는 리즈벳을 끌어안았다얼음을 끌어안은 기분이 들었다이렇게 차가운 체온이라니그 차가운 체온을 애써 무시하는 사리엘을 리즈벳의 아름다운 눈이 바라보았다영원을 걸어온 뱀파이어가 순간을 살아가는 인간을 본다수많은 순간을 보았음에도 자신에게서 금방 눈을 떼어내지 않는 리즈벳을 보고 무언가를 느낀 사리엘이 말했다.

 

친해져볼까요?”

재밌는 제안이네요.”

나는 이 자리에 오랫동안 차지하고 싶고당신은 내게 흥미가 있으니까.”

 

서로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거래를 권해보는 거죠리즈벳거절하셔도 됩니다.

겁이 없는 인간을 바라보던 뱀파이어가 입술은 움직였다키스해줘시험이었다통과하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 사리엘은 눈을 감고 키스를 기다리는 리즈벳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입술만이 겹쳐진 첫 입맞춤을 끝내자 리즈벳은 두 팔로 사리엘의 목을 감았다단단히 휘감은 두 팔이 말하고 있었다이제는 실수라고 말해도 이 뱀파이어의 손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키스는,”

 

배워야겠네시엘.

혀와 타액이 문란하게 뒤섞이는 두 번째 입맞춤을 나누며 사리엘은 생각했다이제벗어날 수 없다자신의 몸에 비해 작은 몸을 응접실의 소파로 넘어뜨리는 소리에도 리즈벳의 고용인들은 오지 않았다예감했던 것일까혹은.

 

생각에 잠기려는 사리엘의 얼굴을 리즈벳의 두 손이 감쌌다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에 더 이상 흠칫거리지 않게 된 인간은 영원을 살아왔을 리즈벳의 손이 오랫동안 자신의 가면 역할을 한 안경을 벗기는 것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숙였다세 번째 입맞춤은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싸움 같았다두 번의 입맞춤보다 더욱 격렬하고 더욱 많은 감정이 스민 입맞춤이 끝나고 흐트러진 호흡이 응접실을 채웠다.

 

여전히 내가 키스를 배워야한다고 생각합니까?”

아직 잘 모르겠어.”

한 번 더 해보면 알 수 있겠죠.”

욕심이 많은 인간이네.”

그 인간에게서 도망치지 않는 당신도 욕심이 많은 뱀파이어죠.”

알아.”

 

알아라고 말한 리즈벳의 손이 사리엘의 얼굴을 자신의 목으로 이끌었다이 밤이 키스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감하며 사리엘은 리즈벳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달콤한 목소리에 취한 채사리엘은 생각했다.

 

미쳤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까부터눈앞의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욕심이 난다.



*
시엘리지 2700일과 16일 뒤인 크림님의 생일을 (좀 빠르지만 미리!) 축하드립니다!
뭘 쓸지 고민하다가 갑자기 리지의 후원을 받는 배우 시엘이 생각나더라고요. 후원 받으니 리지는 뱀파. 시엘은 인간인게 어떨까. 하고 역할 체인지도 해보았습니다. 리지한테 경어 쓰는 시엘 낯선데 좋네요.<<
2700일이란 긴 시간을 저랑 시엘이랑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 빠르지만 생일도 축하드립니다!
기쁘고 행복한 일들 가득가득한 7월이 되시길 바라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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