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āvis
저택의 주인이 된 청년, 리카르도 스칼리에티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열쇠를 바라보았다. 자아를 잃어가던 로베르토가 끝까지 빼앗기지 않으려고 했던 열쇠였다. 열쇠가 자신을 데려와 피를 갈취한 이유로 도달할 수 있는 길이라고 짐작한 리카르도는 로베르토의 죽음을 앞당기기로 했다. 2달만에 죽어버린 로베르토의 재산은 모두 리카르도의 것이 되었다. 계획에 차질이 생겨 조금 더 고통스럽게 죽여주지 못 했다는 사실은 아쉬웠으나, 드디어 리카르도는 도달했다. 로베르토 스칼리에티가 ‘제물’로 선택한 자신의 피를 사용해 부활시키려던 뱀파이어에게.
자신이 제물로 쓰였다는 것도, 뱀파이어의 부활 여부도 리카르도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리카르도에게 중요한 것은,
-얼른 만나러 와, 리카르도.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꿈에 나타났던 그 목소리의 주인이 뱀파이어가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로베르토의 학대를 견디지 못 하고 죽었을 청년은 손에 비릿한 쇠의 냄새를 남긴 열쇠로 비밀 문을 열었다. 소리와 함께 열린 문 뒤에는 방이 하나 있었다. 침대 하나가 전부인 어두운 방이었다. 이곳도 아닌가. 허탕이라는 사실에 얼굴을 굳힌 리카르도가 문을 닫으려던 그 순간이었다.
“늦었잖아, 리카르도.”
발소리도 내지 않고 다가온 남자가 리카르도를 보며 웃었다.
웃음기가 섞였지만 리카르도는 알 수 있었다. 이 남자의 목소리는 꿈에서 듣던 그 목소리였다.
“뱀파이어?"
“그래, 뱀파이어. 너희들은 그렇게 불렀어. 로베르토는 다르게 불렀지만.”
“그 남자는 죽었어. 내 손으로 죽였지.”
“로베르토가 죽었구나. 망집이 가득한 사내이긴 했지. 나도 죽일 거야?”
“그대가 나를 죽이는 게 더 빠를 텐데.”
“그럼 나도 죽어버리거든. 로베르토는 그래서 너를 교육하려고 했겠지~”
어마어마한 약점을 아무렇지 않게 알려준 뱀파이어는 이제 리카르도의 방이 된 스칼리에티 가주의 침대에 앉았다. 뱀파이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외형을 가진 청년이 리카르도의 눈앞에서 살아 움직였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꿈에 나타났던 목소리의 주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 뒤에는 무엇을 할지 생각해두지 않았던 리카르도는 자신이 아직 뱀파이어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입술을 움직였다.
“그대의 이름을 아직 듣지 못 했어.”
“파비앙. 파비앙 모로야.”
“이탈리아의 이름이 아니군.”
“그래. 어디 같아? 맞추면 상품을 줄게.”
“상품은 필요 없어. 가지고 싶은 물건은 전부 가질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해졌으니까.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는 리카르도 스칼리에티. 그대의 목소리 덕분에 살아남아서 이 자리까지 왔어. 고마워.”
“고맙다면 답례를 해줘.”
뱀파이어라서 뻔뻔한 건지 오래 살아서 뻔뻔한 건지. 얼굴을 찡그렸던 리카르도는 웃는 파비앙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파비앙의 옆에 앉았다. 상대가 어떤 답례를 원하는지 알 수 있는 능력은 리카르도에게 없었다. 뱀파이어라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게 답례를 원한다면 무엇을 원하는지 똑바로 말하도록 해.”
“내가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줄 것 같은 말투네.”
“뱀파이어가 되라는 무리한 요구는 많은 고민을 한 후에야 결정을 내릴 수 있겠지.”
“될 생각은 있어?”
“없지는 않아.”
인간이지만 마음은 이미 인간을 벗어나버렸구나, 리카르도.
다정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파비앙의 손이 리카르도의 뺨을 매만졌다. 답례를 받아갈게. 라고 말한 파비앙은 뺨을 매만지던 손을 멈춘 뒤, 리카르도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리카르도는 당황하지 않았다. 마치 오래 전부터 예감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입맞춤을 받아들인 리카르도는, 파비앙을 두 팔로 끌어안은 채, 침대에 쓰러졌다.
두 팔로 끌어안은 파비앙의 체온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따뜻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체온이 리카르도에게 파비앙이 살아서 이곳에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 증명을 통해 리카르도는 깨달았다. 자신이 로베르토를 계획보다 빠르게 죽이면서 바랐던 것. 이 증명을 손에 넣고 싶었다. 뱀파이어가 될지는 아직 생각해두지 않았지만 이 증명이 필요했다. 아무 것도 없는 자신의 삶에 단 하나의 궤적을 그려놓은 존재가 살아있다는 선명한 증명이.
“그대를 원해. 곁에 있어줘.”
“어차피 난 네 곁을 떠나지 못해.”
“나를 제물로 그대를 살렸기 때문인가?”
“그 이유라면 벌써 떠났을 거야.”
파비앙이 리카르도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리카르도는 품에 얼굴을 묻은 파비앙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아 자신을 보게 했다. 파비앙의 말대로 마음은 이미 인간을 벗어나버렸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조금이라도 인간의 마음이 남아있었다면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아무렇지 않게 만지면서 두려움조차 느끼지 못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이유를 말해봐.”
“싫어.”
단호한 거절로 자신에게 쉽게 굽혀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낸 파비앙이 자신의 얼굴을 잡은 리카르도의 손목을 잡았다. 리카르도는 순순히 자신의 손목을 파비앙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게 했다. 손목이 멈춘 곳은 파비앙의 입술 앞이었다. 파비앙이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은 리카르도는 웃었다.
“피를 마실 생각이군.”
“조금, 아플 거야.”
날카로운 이가 피부를 찢고 파고들었다. 소매를 걷어서 피를 뽑을 때와는 달랐으나 이쪽이 더 좋다고 생각하며 리카르도는 자신의 피를 마시는 파비앙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토록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다는 실감이 들었지만 아직 멀었다.
리카르도 스칼리에티는 파비앙 모로라는 존재를 완전히 소유하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으니까. 그 욕망을 담은 리카르도의 입술이 흡혈을 끝마치고 떨어진 파비앙의 입술에 겹쳐졌다.
*
리칼파뱡 2600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하합니다~!
고민하다가 인간 리카르도가 뱀파 파뱡한테 흡혈당하는게 너무... 보고 싶어서... 알바는 아니고 에유로 이케이케...
그것 말고도 리카르도의 이런저런 부분들을 잔뜩 넣었는데 ㅋㅋㅋㅋㅋㅋ 즐겁게 봐줬으면 좋겠쟝.
2600일이란 긴 시간을 나하고 리카르도랑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랑이사랑 앤캐들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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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āvis : 열쇠(라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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