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Belong To Me
먼지 냄새가 나지 않는 깨끗하고 넓은 방이었다. 카멜리아 테슬라는 호박색 눈을 깜박이며 생각했다. 어젯밤, 본 책의 영향을 받아서 꾸는 꿈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 멋진 방을 조금 더 탐험하고 싶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자신에게는 깨끗하고 넓은 방이라는 현실이 주어지기 힘들 테니까.
이 꿈이 그 사람이나 오빠인 길버트에게 방해받지 않기를 바라며 침대에 누운 몸을 일으키려던 카멜리아의 손에 누군가의 손이 닿았다. 낯선 체온에 놀라서 굳어진 카멜리아의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 손의 주인―다니엘은 이불 속으로 숨기 위해 이불을 두 손으로 붙잡은 카멜리아를 회색 눈으로 바라보다 입술을 움직였다.
“꿈인가.”
“꿈에서도 꿈을 꿀 수 있어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니.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모호한 말이었다. 신기하게도 모호하게 대답하는데도 다니엘의 표정은 모호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왜일까? 하지만 다니엘에게 그 이유를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꿈인데도 용기가 나지 않다니. 그 사람이 없는 꿈에서도 자유롭지 않는다는 사실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카멜리아가 입술을 움직였다.
“커튼을 열면 꿈이 끝날까요?”
“열어보면 알 수 있겠지.”
“무서우니까 열지 않을래요. …당신은 왜 내 꿈에 나왔어요?”
“너는 왜 지금을 꿈이라고 생각하지?”
“내가 사는 곳은 이렇게 깨끗하지도 않고 넓지도 않은걸요. 그러니까 이건 꿈이고 그 사람이나 오빠가 나를 부르면 꿈에서 깨어나야 할 거에요.”
꿈이 깨어나면 접하게 될 현실을 떠올린 카멜리아의 얼굴이 어두워진 순간이었다. 손으로 붙잡고 있던 이불에 둘둘 말려서 번쩍 들리게 된 카멜리아는 자신을 들어 올린 다니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이런 일을 하는데도 도망치고 싶지 않다니. 이상한 사람이었다. 정말로, 이상한 사람이라―
“혹시 꿈의 요정이에요?”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
깨끗하고 넓은 방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니. 앞으로도 입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예쁜 옷으로 갈아입은 카멜리아는, 요정이냐는 엉뚱한 말을 들었는데도 자신을 혼내지 않고 옷과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준 다니엘을 무슨 일이 있으면 자신을 숨겨줄 의자 뒤에서 얼굴만 살짝 내민 채로 바라보았다. 역시 이상한 사람이다. 왕자님처럼 근사하게 생겼지만 왕자님이랑은 거리가 먼 것도, 주인님이라고 불리는 높은 사람인데도 길버트의 말대로 가족에게조차 버려진 자신을 대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처럼 대하는 것도.
꿈이라면 다니엘의 친절함과 다정함을 경계하지 않았겠지만 현실이었다. 다니엘은 가구 뒤에 숨어서 자신을 경계하는 카멜리아와의 거리를 억지로 좁히지 않았다. 이상하게 느낀 카멜리아가 숨어있어도 되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그래, 카멜리아. 였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온 어린 뱀파이어는 자신의 머리카락에 닿던 모니카의 능숙한 손길과 놀란 얼굴을 했지만 다정한 오빠처럼 자신을 챙겨주던 제럴드의 곁에서도 다니엘을 생각하다, 저택 안에 있다면 무슨 일을 해도 괜찮다는 다니엘의 말이 정말 사실인지 확인하기로 마음먹었다.
“숨바꼭질에는 취미가 없는데.”
“숨바꼭질을 하려면 몸이 보이지 않게 숨어야 해요. 나는 몸이 보이지 않게 숨지 않았어요, 주인님.”
“주인님?”
“그 언니도, 그 오빠도 당신을 주인님이라고 불렀으니까… 저도 주인님이라고 불러야 해요?”
다니엘의 대답을 기다리던 카멜리아는 어느 샌가 제 곁으로 다가온 다니엘이 눈을 맞추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모습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카멜리아가 무척 좋아하는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님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기사님 같은 자세였다. 소년처럼 웃는 얼굴도, 복장도 기사님과는 거리가 먼 것 같지만.
“내가 네 주인님이니까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 카멜리아.”
“주인님은 굉장한 사람 아니에요?”
“굉장한 사람이라는 건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거지?”
“돈이 많고, 멋진 사람. 왕자님은 아니에요. 왕자님은 마지막에 나타나는 걸.”
“마지막에 나타나도 공주님을 행복하게 해주는 건 왕자님이었지.”
“공주님은 왕자님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어요.”
“신사님은?”
물어보며 다니엘이 손을 내밀었다. 다니엘이 말하는 공주님이 자신을 뜻하는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라고 생각하며 카멜리아는 다니엘의 손을 잡았다. 장갑에 감싸인 손은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커다랗고 단단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지켜줄 것 같은 손에 감싸인 자신의 손을 보던 카멜리아는 얼굴을 들어 다니엘과 눈을 맞춘 뒤, 말했다.
“신사님도…”
공주님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지만 제일 중요한 건 공주님과 신사님의 마음이에요. 서로를 원해야 행복해질 수 있어요.
*
행복한 며칠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을 예고하는 듯한 무서운 꿈을 꿨다. 그 사람의 꿈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소리를 죽여서 울던 카멜리아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복도를 걷다 다니엘의 방 앞에 섰다. 처음보다 많이 친해져서 더 이상 가구 뒤에 숨어서 다니엘을 경계하지 않게 된 카멜리아는 다니엘을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 저택에서 가장 친절하지만 자신에게만 친절한 신사는 오늘도 카멜리아에게 원래의 집에서 살았다면 경험할 수 없었을 것들을 선물했다. 행복했다. 그리고 행복하면 할수록 무서웠다. 이래도 되는 걸까?
노크하려던 손을 내려놓으려는데 문이 열렸다.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나온 다니엘은 말없이 카멜리아를 안아들고 물었다. 나갈까?
“나가서 어디로 가요?”
“네가 원하는 곳으로.”
“하지만 어디를 가도 그 사람이 올 거예요. 그 사람은 늘 그랬어요.”
“오지 않아.”
등을 토닥이며 오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다니엘의 목을 끌어안은 카멜리아는 다니엘의 잠옷이 젖어들 정도로 울다가 처음 이 집에 오던 날에 그랬던 것처럼 다니엘의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재워달라고 투정을 부린 결과였다. 투정을 들어준 다니엘의 손이 카멜리아의 부드러운 뺨을 매만졌다. 눈만큼이나 서늘한 손이었지만 그 손이 좋았다. 손에서 나는 동족 특유의 체향도 좋았다.
“전에 공주님 이야기를 했잖아요. 다니엘한테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있어.”
처음 대화했을 때처럼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모른다고 모호하게 답할 거라고 생각한 다니엘의 명확한 대답에 카멜리아는 다니엘의 손을 저도 모르게 힘을 주어서 잡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 텐데도 더 듣고 싶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 조금 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가는 욕망에 휘둘려 입을 달싹이는 카멜리아를 다니엘이 손으로 토닥이며 속삭였다.
“그 사람의 꿈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중이야.”
“그 사람은 지금 꿈을 꾸고 있어요?”
“그래, 하지만 금방 깨어날 거야.”
이마에 키스를 선물한 다니엘의 품에서 카멜리아는 방금 전까지 자신을 휘둘렀던 욕망을 잊고 잠들었다. 그 사람의 꿈을 꾸지 않았다. 대신, 그리운 사람의 꿈을 꾸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그리운 사람의 꿈.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 카멜리아는 입술을 달싹여 그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
며칠간의 기억이 없을 정도로 심하게 아팠다니. 다니엘에게 사정을 듣고 걱정시켜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카멜리아를 다니엘은 오랫동안 카멜리아를 끌어안고 있었다. 심하게 아팠다는 핑계로 그 품을 더 독점하고 싶은 욕심을 누르고 다니엘을 배웅한 카멜리아는 제법 근사하게 끓여진 차를 보았다. 오늘 다니엘은 이 차를 얼마나 마셔줄까. 저번보다는 많이 마셔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유리온실에서 가져온 꽃으로 찻잔과 차받침 주변을 장식하는 카멜리아의 입술이 미소를 그렸다.
티타임을 끝내고 응접실의 소파에 나란히 앉은 두 뱀파이어는 말없이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카멜리아의 손등 위에 다니엘의 입술이 닿았다. 입술이 전하는 간지러움에 웃어버리고 만 카멜리아가 다니엘을 두 눈에 담았다.
“자는 동안 심심하지 않았어요?”
“주인님이 있는데 심심할 리가 없지요.”
“주인님? 다니한테 주인님이 있어요?”
“그래. 바로 옆에 있어.”
“다니. 놀리지 말아요.”
분명 오늘 처음 들었는데도 다니엘의 목소리로 듣는 주인님이라는 호칭은 낯설지 않았다. 왜일까. 이유를 찾으려는 카멜리아를 품에 끌어안은 다니엘의 입술이 목덜미에 닿았다. 이유를 찾기를 포기한 카멜리아는 두 팔로 다니엘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내가 다니의 주인님이라면 다니 역시 내 주인님인걸요. 서로가 서로의 주인님인 걸로 해요.”
나의 다니.
사랑하는 신사의 뺨에 사랑을 가득히 담아 입을 맞췄다. 목덜미에서 떨어진 입술이 입맞춤의 답례를 위해 다가왔다. 자신을 전부 집어삼킬 길고 깊은 입맞춤을 예감하며 카멜리아는 눈을 감았다.
*
티아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티아가 리퀘해준 어려진 카멜이 왔습니다.
티아랑 그날 썰로 풀었던 것도 조물조물 넣어봤는데 마음에 들어해줬으면 좋겠다. 생일 축하하고 행복하고 즐겁고 건강한 생일 보내길 바라.^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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