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변화의 소리

<span class="sv_member">에메트</span>
에메트 @acidcatsle
2026-02-07 17:33

어렸을 때부터 글씨를 못 쓴다는 평을 들어본 적 없는 그리젤다였지만시간이 흐를수록 글씨를 쓸 일보다는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할 일이 많아지자 글씨를 쓸 일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컴퓨터와 휴대폰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에 익숙했던 그리젤다는 노트와 볼펜에서 나는 소리가 사각사각에 가깝다는 사실을 자신을 성장시켜준 연인클레어를 통해 깨달았다사각사각그리젤다가 볼펜을 사용하는 클레어를 계속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자 클레어가 볼펜을 멈췄다클레어가 제 이름을 부르고 이유를 묻기 전먼저 이유를 말해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그리젤다가 입술을 움직였다.

 

볼펜이 내는 소리는 사각사각에 가까운 소리네요지금까지 볼펜의 소리는 신경 쓰지 않고 살았는데신기해.”

리제는 노트보다는 컴퓨터를 자주 썼나 봐요?”

노트는 어렸을 때 잠깐그래도 글씨를 못 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어요.”

확실히 리제의 글씨는 리제가 생각나긴 해요.”

클레어가 칭찬해주니 기분 좋네더 칭찬해줘요.”

 

그리젤다가 환히 웃으며 칭찬을 요구하자 클레어는 볼펜을 손에 든 채로 고민에 빠졌다고민을 끝낸 클레어가 볼펜을 내려놓고 그리젤다의 머리로 손을 뻗었다한 살 연상의 연인이 선택한 서툴고 다정한 칭찬이 머리에 닿았다능숙하지 않으나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손길을 받고 웃던 그리젤다는자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얼굴을 붉게 물들인 클레어의 손을 잡았다갑작스런 상황에 멈칫한 클레어의 손등에 그리젤다가 입을 맞췄다기사처럼 근사하지는 않았지만비슷하기는 할 손등키스를 받은 클레어가 입술을 달싹였다.

 

리제.”

칭찬에는 답례해야한다고 배웠거든싫었어요?”

 

클레어가 내어놓은 대답은 알고 있었으나 알고 있는 대답과 클레어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 대답은 달랐다그리젤다는 클레어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 대답이 좋았다클레어에게 매번 요구하고 싶을 정도로.

 

싫지않았어요.”

조금 더 정확히 들려줘요클레어.”

 

궁금해.

솔직한 대답을 요구하는 그리젤다의 손을 움켜쥔 클레어의 검은 눈이그리젤다의 갈색 눈을 보았다그리젤다는 말이 아니라 눈으로 대화가 가능하다던 책을 떠올리며 클레어의 곁으로 다가갔다지금이그런 순간이라고 생각하며 클레어를 바라보던 그리젤다는 자신의 손을 조금 더 힘주어 잡는 클레어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한동안볼펜의 소리는 나지 않았다.

 

*

 

샀어요어때예뻐요?”

 

그리젤다가 충동적으로 구매한 볼펜과 노트를 자랑하며 묻자 클레어는 예뻐요라고 대답하며 웃었다볼펜과 노트를 들고 클레어의 건너편에 앉은 그리젤다는 노트의 첫 페이지를 펼친 뒤노트를 클레어에게 내밀었다.

 

오랜만에 쓰는 노트니까 응원의 메시지를 받고 싶어서클레어가 써주면 좋겠어써줄래?”

리제가 바란다면요그런데 부탁이 있어요.”

부탁클레어의 부탁이라면 웬만한 건 다 들어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말해요.”

…눈을 감아줄래요?”

 

들어줄 수는 있지만 당사자인 그리젤다가 보는 상황에서 응원의 메시지를 쓸 정도의 용기는 없었던 클레어의 제안을 들은 그리젤다는 흔쾌히 눈을 감았다사각사각클레어 덕분에 굉장히 좋아하게 된 볼펜과 종이가 만나서 내는 아름다운 소리는 금방 끝났다이제 눈을 떠도 된다는 클레어의 말을 기다리던 그리젤다는 뺨에 가볍게 닿는 온기에 천천히 눈을 떴다.

 

어렸을 적에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눈을 뜬 그 순간가장 먼저 보이는 사람이 왕자여서 왕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은 아닐까라는 상상을 한 적이 있었다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동화책에는 적히지 않았지만 디즈니가 만든 애니매이션에 나오는 것처럼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이전부터 왕자를 사랑하고 있었으리라그래서 눈을 뜬 그 순간누구보다 행복할 수 있었겠지붉어진 얼굴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클레어를 붙잡은 그리젤다는 붙잡힌 클레어를 제 무릎에 앉혔다.

 

리제.”

이런 방법으로 깨워줄 줄은 몰랐거든다음에 나도 이렇게 깨워줘도 되요?”

심장에 안 좋을지도 몰라요.”

내 심장에는요?”

 

클레어가 얼마나 커다란 용기를 내서 이런 일을 했는지 알면서도 물은 그리젤다는 짓궂어요리제라고 대답하는 클레어의 뺨에 입을 맞췄다응원의 메시지는 모든 일이 끝난 뒤에 확인하기로 한 그리젤다가 클레어의 뺨에 아직 머무르고 있는 입술을 내렸다파르르 떨며 키스를 받기만 하던 감질나는 입맞춤을 견디지 못 하고 클레어는 결국 몸을 돌렸다목을 끌어안고 매달리는 클레어의 귀에 입 맞추며 그리젤다가 속삭였다.

 

클레어.”

 

어떻게 하고 싶어요말해봐.

설탕을 듬뿍 넣은 케이크 같은 달콤한 목소리로 묻는 그리젤다를 올려다보던 클레어가 말 대신 선택한 것은 입맞춤이었다확실한 대답을 받은 그리젤다는 클레어를 품에 안고 생각했다이뤄지지 않겠지만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
리제클레어 900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하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900일이 되었네요. 일상의 리제클레어+글씨 쓰는 리제클레어를 보고 싶어서 연성해봤답니다! 월요일의 시작에 어울리는 연성이었으면 좋겠어요.
900일이란 긴 시간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쏘님이랑 클레어 제가 좋아해요. 사랑해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