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예감
수많은 사람이 들떴던 도시의 밤은 고요했다. 무언가에 잡아먹힌 것처럼. 혹은― 이어지는 생각을 끊은 것은 낯익은 체향이었다. 눈을 감고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체향의 주인공이 발소리를 내며 리카르도 쪽으로 걸어왔다. 리카르도의 눈이 움직여 자신 쪽으로 걸어오는 청년을 보았다. 겨울을 닮은 눈에 손을 들어 반가움을 표시하는 청년이 담겼다. 파비앙 모로. 리카르도의 연인이며 낮의 베네치아에서 가장 빛났던 청년은 리카르도의 곁으로 다가와 리카르도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늦어서 미안. 오래 기다렸어?”
“그렇게 오래는 아니었지. 그대와 나의 시간은 기니까.”
“우리의 시간은 길지만 하루는 짧잖아. 곧 새벽이 될 거야.”
“태양이 뜰 때까지는 시간이 있어, 파비앙.”
파비앙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 리카르도는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밤의 어둠에 몸을 숨긴 두 뱀파이어의 걸음은 물냄새가 더욱 짙어진 수로에서 멈췄다. 사람을 시켜 미리 가져다 둔 곤돌라와 노를 꺼낸 뒤, 달빛에 젖은 곤돌라에 오른 리카르도와 파비앙은 밤하늘을 비춰내느라 밤하늘과 똑같은 색이 된 수로를 출발했다.
“처음 아니었어? 굉장히 능숙하네.”
“연습했지.”
“우리가 사는 집에 노는 없잖아. 그리고 네가 노랑 비슷한 물건을 들고 연습하는 모습 역시 본 적이 없다고~”
“농담이야. 그대를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있어서 능숙하게 보이는 거겠지. 실제 곤돌리에에 비하면 형편없어.”
“나한테는 리카르도가 최고의 곤돌리에야.”
“영광이군, 기사님.”
“별 말씀을, 아가씨.”
리카르도에게 장난스럽게 대꾸하며 웃은 파비앙은 수로를 누비던 곤돌라가 멈추자 달이 구름 뒤로 숨어버렸을 때를 대비해서 가져온 램프를 들고 먼저 곤돌라에서 내렸다. 먼저 땅에 도착한 파비앙이 리카르도에게 손을 내밀었다. 곤돌라에 탄 리카르도의 손이 파비앙의 손을 잡고 땅으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노를 젓고 있어서 조금 뜨거워진 리카르도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던 파비앙이 입술을 움직였다.
“너를 아가씨라고 불러서인지 춤을 추고 싶어졌어, 리카르도. 그 날처럼 말이야.”
“기사님의 춤 실력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있겠군.”
“기대해.”
기대하라고 말한 파비앙의 손이 리카르도의 손과 허리를 잡았다. 음악도 없었고, 서로를 아가씨와 기사님이라고 불렀던 날처럼 축제도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밤이었다. 달조차 구름 뒤로 숨는 바람에 어두웠지만, 두 뱀파이어는 그 날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다. 빛이라고는 없는 어둠에 둘만의 세계를 만들며.
물냄새를 두른 두 뱀파이어의 춤은 잠시 숨었던 달이 모습을 드러난 순간에 끝났다. 춤은 끝났으나 리카르도와 파비앙의 몸과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호흡을 고르는 파비앙의 얼굴과 제 얼굴을 더욱 가까이 하며 리카르도가 말했다.
“그대에게는 언제나 기대하고 있어.”
“얼마나?”
“눈을 감으면,”
입맞춤으로 증명하지, 파비앙.
여름을 간직한 눈이 눈꺼풀 뒤로 사라진 직후, 리카르도와 파비앙의 입술이 만났다. 증명이 입술로만 끝나지 않음을, 서로를 삼켜버릴 열기가 예고하고 있었다.
*
태양이 높이 뜰 때까지 잠의 늪에서 허우적거린 탓일까. 평소보다 목소리가 낮았다. 아직 잠든 파비앙의 이름을 부르며 그 사실을 깨달은 리카르도는 파비앙의 뺨을 쓸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리카르도는 여름이라 이제 시원하게 느껴지는 바닥을 밟으며 욕실로 향했다. 씻고 나온 리카르도가 향한 곳은 주방이었다. 재료들을 꺼내 다듬고 조리한 리카르도의 손에서 제법 근사한 점심이 탄생했다. 검은 접시에 예쁘게 장식된 점심의 주인이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의 주인인 파비앙은 리카르도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좋은 오후, 리카르도.”
“좋은 오후야, 파비앙. 식사는?”
“네가 지금 만든 음식으로. 그런데 안 일어나면 어쩔 생각이었어?”
“깨우러 갈 생각이었지. 그래도 안 일어난다면 다시 만들었을 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음식 준비를 하는 사이, 평소의 톤으로 돌아온 목소리로 리카르도가 대답하자 파비앙은 웃었다. 같이 먹자. 파비앙은 식사가 담긴 접시를 손에 든 리카르도를 데리고 테이블로 향했다. 테이블에 놓인 접시의 음식을 나눠먹은 두 뱀파이어는 후식이 되어줄 과일을 꺼냈다. 예쁘게 자르고 다듬은 다른 과일들과 다르게 잘리지 않은 새빨간 껍질의 잘 익은 사과가 파비앙의 손에 들렸다. 그 사과보다 빠르게 파비앙의 입술에 입을 맞춘 리카르도는 사과를 떨어뜨리고 자신을 선택한 파비앙의 붉어진 뺨을 손으로 문지르며 물었다.
“사과가 떨어졌군. 주워줄까?”
“일부러 그러는 거지?”
“그래. 일부러 그랬어.”
“사과는 됐어. 키스해줘, 리카르도.”
자신을 재촉하는 파비앙의 요구대로 한 번 더 키스한 리카르도는 파비앙의 옷 속으로 손을 넣으며 깨달았다. 이번의 입맞춤 역시,
입맞춤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임을.
*
리칼파뱡 7주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하합니다!
연성 먼저 올리고 뒤늦게 쓰는 코멘트라서 좀 낯설긴 한데... 트위터에서 썼듯이 이 연성은 랑이가 전에 넣어준 고정틀 커미션 보고 아, 곤돌라 타는 리칼파뱡이 보고 싶다! 하고 시작해버린 연성이 맞습니다.
이번엔... 못 쓸거 같아서 걱정 많이 했는데 다행히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ㅇT
7년이란 긴 시간을 함께 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랑이사랑 앤캐들사랑~!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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