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Rain Drop

<span class="sv_member">에메트</span>
에메트 @acidcatsle
2026-02-07 17:23
01.

차분한 영화였다. 작은 돌을 던진 잔잔함조차 큰 파문으로 다가올 것처럼 느껴지는 무척이나 차분한 영화. 하지만 그 차분한 영화가 마음에 들었던 리딜은 일어나서 영화관을 나가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앉아있었다. 까만 화면과 하얀 글씨로 이뤄진 엔딩 크레딧을 혼자 감상한 리딜은 영화관 밖으로 나왔다.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카페로 향한 리딜은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려놓고 수첩을 꺼냈다. 리딜이 수첩에 만년필로 적은 것은 영화의 삽입곡을 부른 가수의 이름이었다. 하이네 벨라크루즈. 노래랑 닮은 이름이라고 중얼거리며 리딜은 수첩을 덮었다.

02.

하이네 벨라크루즈는 유명한 가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몇 년 전에 개봉한 영화의 삽입곡에 딱 한 번 참여한 것이 전부인 가수의 노래를 리딜은 플레이리스트에서 빼지 않았다. 테이프였다면 늘어졌을 정도로 반복해서 들은 노래를 부른 사람을 만난 곳은 공연장이 아닌 카페였다. 리딜이 최근 자주 방문하게 된 카페의 주인이 이름을 알려달라는 말에 알려준 입에 올린 이름이 하이네 벨라크루즈였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팬이에요. 하고 호들갑을 떨 수도 있었지만 리딜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버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딜은 무척 조심스럽게 고른 말을 입술을 담으며 벨라가 건네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았다.

“노래, 굉장히 잘 부를 것 같아요.”
“칭찬 감사합니다.”

공연장이었다면 칠 수 있었을 많은 농담들을 리딜은 아메리카노와 함께 삼키며 깨달았다. 자신은 하이네 벨라크루즈의 노래를 생각보다 훨씬 좋아했다는 사실을.

03.

일기예보와 다르게 비가 길게 왔다. 이대로라면 새벽까지 멈추지 않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며 주차장으로 향하던 리딜은 건물 입구에서 비가 오는 거리를 바라보는 벨라를 발견했다. 주차장으로 향하던 걸음을 돌려 벨라의 곁으로 다가가자 와인색 눈동자가 리딜을 담았다.

“우산 안 가져왔어요?”
“네, 괜찮습니다. 지금 사러갈 생각이었거든요. 편의점도 멀지 않고요.”
“괜찮다면 내 신세 질래요?”
“네?”
“우산도 있고 차도 있거든요.”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준 사람을 여기 방치하고 떠나는 건 나쁜 사람이나 하는 짓이기도 하고.
벨라는 처음으로 엷게 웃으며 리딜을 보았다. 착한 사람인가요? 리딜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여우를 닮은 청년은 빙그레 웃으며 목소리로 자신을 매혹시킨 가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신에게 점수 따고 싶은 사람이요.”

04.

오늘의 주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닌 카페라떼였다. 오늘은 다른 주문이네요. 라고 말하는 벨라에게 대답하려던 순간, 리딜의 휴대폰이 울었다. 벨소리를 들은 벨라는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멈췄다가 금방 회복했다. 이런 식으로 노래를 불렀던 때의 벨라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는데.

“좋아하는 노래에요.”

짤막하게 말하고 벨라가 건넨 커피를 받아든 리딜은 평소보다 빨리 카페를 나갔다. 벨라가 갑자기 자신을 피할 일은 없을 것 같았지만 좁혀진 거리가 멀어지는 것은 아닌지 조금 불안했다. 만약 피한다면. 리딜은 한숨을 삼키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05.

“오늘은 반대 상황이네요.”

우산을 사러갈지 말지 고민하던 리딜 앞에 나타난 벨라는 우산을 든 채로 리딜을 보았다. 건물 입구와 건물 밖. 친해질 계기를 준 그 날과 정 반대의 위치에서 리딜은 벨라를 보았다. 벨라가 그 날의 리딜처럼 손을 내밀었다. 리딜은 내밀어진 손을 바라보다 웃었다.

“잡아도 되겠어요?”
“잡지 말라고 해도 잡는 사람이 당신이잖아요.”
“하지만 들었잖아요, 내 벨소리.”
“처음부터 알았던 간 아니잖습니까.”
“그건 맞아요. 그리고…”

나는 정말로 벨의 노래를 좋아해요. 지금은 당신이 아직도 무대에 있었다면 질투했을 정도로 당신을 좋아하고요.
말을 마친 리딜은 고백을 받은 벨라의 손을 잡았다. 와인색 눈으로 리딜을 바라보던 벨라는 버스 정류장까지 리딜과 함께 걸었다. 말없이 걸은 두 사람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그치지 않을 것 같은 비가 그쳤다.

“그쳤네요.”
“다행이네요.”
“내가 걱정됐어요?”

갑작스런 질문을 받은 벨라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버스가 오는 것이 빠를까. 당신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이 빠를까. 전자일 거라고 생각한 그 순간, 벨라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래요. 그러니까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행동해요.”

버스가 도착했다. 벨라가 탈 버스였는지 벨라는 내일 보자는 말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리딜은 떠나가는 벨라에게 손을 흔들어준 뒤, 벨라의 손을 잡은 제 손을 보았다. 내일은 그 손을 금방 놓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리딜벨라 400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하합니다~>ㅁ<
어느새 400일... 노래하는 벨라가 보고 싶어서 그 욕망을 조금 담은(!) 글을 써왔어. 즐겁게 읽어주길 바라.u.u
400일이란 긴 시간 함께 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쥐도, 벨라도 내가 좋아해. 사랑해~!
언제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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