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마지막까지 결정을 망설였던 모양이지만 콘스탄틴 부부에게는 리딜 외의 자식이 없었다. 친척들과는 교류를 끊은 채로 살아온 부부는 후계자인 리딜에게 상단을 맡기고 은퇴했다. 일에서 벗어나 행복한 노후를 보내야 할 부부는 운 나쁘게도 사고에 휘말렸다. 그 사고에 자신이 연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리딜은 몇 년을 바쁘게 살았다. 겨우 숨을 돌릴 여유를 얻게 된 지금 처음으로 자신에게 주는 ‘휴식시간’의 목적지를 북부로 정한 것은 북부가 조용하기 때문이었다.
일하고는 거리가 멀게 지낼 생각이었다. 들렸다는 티도 내지 않고 돌아갈 예정이었던 서부에서 가장 큰 상단의 주인은 자신의 ‘휴식시간’을 방해하고 자신을 성으로 초대한 북부의 새로운 지도자를 바라보았다. 정확한 길이는 알 수 없으나 등까지는 오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은색 머리를 묶은 하얀 피부의 남자―하이네 벨라크루즈가 북부의 지도자였다. 거칠고, 험한 곳이지. 돌아가신 아버지가 들려줬던 북부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리딜은 벨라를 보았다.
“이야기의 진행을 빠르게 해보는 게 어때요, 각하?”
“그 정도로 시간이 없는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요즘은 시간이 많아요. 이야기에 따라 각하는 바쁘지 않은 저를 독점하실 수도 있겠죠.”
거칠고 험한 북부와 어울리지 않는 첫 인상을 소유한 대공은 가능성을 열어 보이는 리딜을 보며 말했다. 당신의 능력을 빌리고 싶은 일이 있어요. 리딜은 능력을 빌려준다면 수도에 진출할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겠다는 벨라의 제안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수도로의 진출은 리딜의 오랜 꿈이었다. 상단의 후계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던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꿈. 그 꿈이 부모의 사고에 연루된 것이 아니냐는 소문으로 좌절되려고 했던 시기, 리딜은 평소처럼 살기 위해 노력했다.
거래를 제안하는 벨라에게서 리딜은 그 때의 자신을 보았다. 의지할 사람 하나 없어서 평소처럼 굴었던 그 때의 자신. 좋아요. 여우처럼 얄밉게 웃으며 리딜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리딜이 왜 제안을 받아들였는지 모르는 벨라는 리딜이 내민 손을 잡았다. 벨라의 손을 칭찬하려다 리딜은 입을 다물었다. 이제 막 성사된 거래를 자신의 말로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으므로.
하지만, 그 손은 칭찬하지 못 한다는 사실이 아쉬울 정도로 예뻤다.
예전보다 안정된 상태였지만 여전히 북부를 노리는 자들은 많았다. 거칠고 험하다는 말을 들었던 예전의 북부를 가장 크게 위협하던 세력이 밖에 있었다면, 하이네 벨라크루즈가 지배하는 지금의 북부는 밖의 세력이 아닌 안의 세력에게 위협을 받고 있었다. 밖의 세력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안의 세력을 견제하다니. 예전의 자신 이상으로 머리가 아플 대공에게 휴식을 선물한다는 핑계로 리딜은 전보다 친해진 벨라에게 산책을 제안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표정이 조금 풀어진 요즘은 함께 산책하는 일이 늘었다.
오늘의 산책을 받아들인 벨라가 걸음을 멈췄다. 벨라와 함께 걷던 리딜은 걸음을 멈추고 벨라를 가만히 바라보다 얼굴에 닿은 차가움을 통해 눈이 오고 있음을 알았다. 북부에 와서 두 번째로 보는 눈이었다.
“리딜이 살던 서부는 눈이 내리지 않는 곳이었죠.”
“태양이 눈부신 곳이죠. 바다와 가까운 동네에서 살면 파도소리도 매일 들을 수 있지만 추천은 하지 않아요.”
파도소리도 매일 들으면 지겹거든요.
어깨를 으쓱하는 리딜을 보며 벨라가 웃었다. 요즘 자주 웃네요. 라는 가벼운 말을 내뱉지 못할 정도로 벨라의 웃음에서 눈을 떼어내지 못 하던 리딜은 얼굴에 내려앉은 차가운 눈을 한 번 더 맞고 겨우 시선을 수습했다.
눈이 많이 내릴 거라는 말을 한 벨라가 리딜에게 손을 내밀었다. 처음 벨라의 손을 잡은 그 날을 떠올리며 리딜은 내밀어진 손을 잡았다. 벨라의 손을 여전히. 아니 그 날보다 더 아름답다고 느끼는 자신을 통해 리딜은 깨달았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리딜 콘스탄틴은, 하이네 벨라크루즈를 사랑하고 있었다.
*
사랑을 깨달은 리딜은 벨라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이 마음을 묻어버리는 것이 그를 위해서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론을 내렸음에도 리딜은 벨라에게서 멀어지지 않고 평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갑자기 멀어지는 것은 싫었다. 마음을 묻기로 해놓고. 웃기는 일이라고 자신을 비웃던 날이 다섯 번 이상이 되었을 때, 벨라가 보고를 마치고 나가는 리딜을 불렀다. 리딜.
“산책할래요? 날씨가 좋아요.”
마음을 묻어버리기로 했음에도 리딜은 벨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평소처럼 행동하기 위해서. 라는 변명을 걸었지만 사실은 핑계였다. 리딜은 벨라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만약 서부에 있었더라도 벨라가 불렀더라면 달려왔을 정도로 벨라를 사랑하게 된 상단주는 눈이 쌓이지 않은 성의 정원을 벨라와 함께 걸었다.
“확실히 날씨가 좋네요.”
“당신도 같은 생각이라 기쁘네요.”
“기쁘다면 답례해주실래요?”
“어떻게 답례할까요?”
농담이에요. 라는 말을 내뱉으려던 리딜은 벨라의 물음에 입을 다물었다. 다양한 답변이 머릿속에서 맴돌았으나 리딜은 그 답변 중 하나도 꺼내지 못 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다 벨라의 곁으로 다가갔다. 벨라는 갑작스럽게 자신을 끌어안는 리딜은 제지하지 않았다.
“무례한 짓이라고 화내지 않네요. 사실 더 무례한 짓을 하고 있긴 해요. 나는 당신을…”
“알아요.”
당신은 모른다고 부정하려던 리딜은 자신을 끌어안고 압니다. 라고 말하는 벨라의 온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이 사람을 사랑하고 이 마음을 접지 못 한다. 그래서―
“안다면 곁에 있게 해줘요, 벨.”
길들여지길 바라는 여우처럼 사랑을 말하며 인정했다. 자신의 패배를.
*
리딜벨라 1주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순식간에 1년이 지나서 리딜벨라 1주년이라니. 1주년 연성 뭘로 할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트위터에서 한번 풀었던 서부상단주 리딜x북부대공 벨라로 가져왔습미다. 내 취향 듬뿍, 많이 들어있는데 쥐도 재미있게 읽어줬으면 좋겠다.^ㅇ^
1년이란 긴 시간을 함께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쥐랑 벨라 내가 많이 좋아해. 사랑해~
오늘도 건강하고 쪼은 하루 보내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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