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arture Track
영원히 지켜지는 비밀이란 없는 법이었다. 심한 고열을 앓고 난 후부터 이상한 행동을 하는 백작의 외동딸에 대한 비밀도 지켜지지 않았다. 커져가는 소문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침묵하던 백작은 비밀을 새어나가게 한 메이드들을 자르고 새 메이드를 고용했다. 백작이 고용한 새메이드는 장신의 신장이 눈에 띄는 갈색 피부의 아름다운 여성, 테리어드 W. 매저즈였다.
테리어드는 무척 아름다운 여성이었지만 차가운 인상과 딱딱한 말투 때문에 접근하는 사람은 없었다. 백작의 저택에서는 백작의 외동딸 이상으로 주목을 받는 메이드는 아가씨의 방에 도착했다.
똑똑.
두 번의 노크를 한 테리어드는 돌아오지 않는 아가씨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고열을 앓은 날부터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은 아가씨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은 커튼을 열 정도로 회복하지 못 해서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다는 설정을 가진 아가씨는 바다색 눈으로 들어온 테리어드의 푸른 눈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왔습니까.”
“일이니까요.”
“성실하네요. 아주 믿음직스러워요.”
아가씨―해린은 백작이 어렸을 때부터 병치레를 일삼았던 외동딸의 대체품으로 쓰기 위해 다락방에 숨겨두고 키우던 거리의 아이였다. 자신이 맡게 될 역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해린은 백작이 하려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알려준 메이드 덕분에 현실을 깨달았으나, 저택을 빠져나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해린이 저택을 빠져나가려는 시도를 한 첫 날, 병치레를 하던 딸이 죽었다. 백작은 저택을 빠져나가려던 해린을 잡아 방에 가뒀다. 세간에 알려진 아가씨의 이상한 행동은 전부 저택을 빠져나가려는 해린의 시도였다.
해린의 시도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 했다. 하지만 가장 성공에 근접했던 마지막 시도로 해린은 테리어드를 고용할 수 있었다. 비가 퍼붓던 그 거리에서 해린은 테리어드를 고용했다. 탈출. 저택. 보수. 다급하게 말하느라 제대로 전해지지도 않았던 단어들의 나열을 알아들은 테리어드는 백작이 고용한 메이드가 되어 집으로 들어왔다. 백작도 처음에는 수상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해린의 탈출 시도를 몇 번 막자 테리어드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그 신뢰가 불러들일 결과를 모르는 백작을 비웃어주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아직 저택이었으니까. 해린이 화장대 앞에 앉자 테리어드는 빗을 손에 쥐고 해린의 머리를 빗었다. 나이프를 다루던 그 여성과 동일인물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부드러운 손길로 빗어진 머리를 어느 영애들처럼 묶어준 테리어드는 의자에서 일어나 드레스 옆으로 다가가는 해린에게 물었다.
“혼자 입을 수 있겠어요, 아가씨?”
“도와달라고 말하면 도와줄 건가요?”
“도와드려야죠. 아가씨의 메이드니까요.”
아가씨의 메이드. 진짜 메이드도 아니면서. 라는 반문을 삼킨 해린은 잠옷을 벗고 드레스를 입었다. 이전 메이드들처럼 코르셋을 꽉 조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이번에 고용한 성실한 메이드, 테리어드의 장점 중 하나였다. 물론 백작을 속이기 위해서였어도 그녀에게 잡혔을 때는 눈앞이 깜깜했으나, 연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하게 자신을 잡아온 테리어드는 보수의 이야기로 자신들의 계약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렸다.
내일. 바로 내일이 해린이 이 저택과 이별하는 날이었다. 오늘 밤, 해린은 테리어드에게 보수를 건네고 저택을 탈출할 예정이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자신을 대체품 정도로 여기고 자신의 이름도, 성격도 죽은 딸로 바꾸려고 하는 백작과 식사를 하고 가족처럼 하루를 보내려는 이유도 내일이 그 날이기 때문이었다. 연기는 자신이 없었지만 해내야 했다. 긴장한 해린의 어깨에 테리어드가 두 손을 얹었다.
“거울 앞으로 갈까요.”
“거울로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의심스러웠지만 순순히 테리어드를 따라 화장대 앞으로 가서 머리를 빗을 때처럼 앉은 해린은 여전히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은 테리어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우선은 말투부터 바꾸죠. 백작님의 ‘아가씨’는 반말을 쓰십니다.”
“나는.”
“자신이 없나요?”
도발하는 듯한 테리어드의 목소리가 건드린 화를 삼킨 해린은 고개를 흔들었다. 자유를 찾고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거쳐야 하는 일이었다. 할 수 있어. 결심이 담긴 해린의 목소리를 듣고 테리어드가 말했다.
“배움이 빠르시네요, 아가씨.”
테리어드가 처음으로 해주는 칭찬이 마음을 간질거리게 했다. 그 간질거리는 마음이 무엇인지 해린은 몰랐다.
*
어떻게든 견뎌야 했던 하루의 연기가 끝나고 저택을 탈출해서 얻은 자유는 달콤했다. 백작도, 저택도, 아가씨와도 상관이 없는 작은 마을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해린은 요즘 자주 밥을 주던 고양이의 평소보다 요란한 울음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갔다가 자신의 과거를 아는 유일한 사람을 발견했다.
테리어드 W. 매저즈. 더 이상 메이드복을 입지 않는 여성을 부축해서 집으로 데려온 해린은 테리어드의 의식이 회복할 때까지 테리어드를 간호했다. 의식을 회복한 날, 테리어드는 해린을 보았다. 화려하고 아름다웠지만 갑갑하고 저택이 아닌 해린의 아담한 집에서 푸른 장미 같은 눈과 바다를 닮은 눈이 서로를 담았다.
“당신이 챙겨온 돈이라면 더 좋은 집에서 살 수도 있었을 텐데요.”
“여기가 제일 좋아서요. 기억하네요?”
픽 웃으면서 일어나려는 테리어드를 저지한 해린은 테리어드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처음으로 해주는 칭찬에 마음이 간질거렸던 그때가 떠올랐다. 그 감정을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물어볼 사람이 없었던 해린은 테리어드를 다시 만나는 오늘까지 그 감정을 조용히 덮어두었다. 조용히 덮어두면 백작에게 느꼈던 감정이나 자신을 도와주지 않던 다른 사람들에게 느꼈던 감정처럼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테리어드를 향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당신은 내 삶을 바꿔준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쉬었다 가요.”
용기를 낸 제안에 별 수 없네요. 라고 대답한 테리어드가 다시 침대에 누웠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감정이 자라나는 소리를 들으며 해린은 부엌으로 향했다. 그녀와 함께 할 시간이 저택에서 보낸 시간 이상으로 길어지길 바라며 해린은 식재료들을 꺼냈다.
*
오래 쉬었어요. 라고 말하며 돌아갈 채비를 마친 테리어드에게 해린이 건넨 것은 장미 한 송이였다. 다음에 만나면 또 주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장미를 받아든 테리어드는 말없이 집을 나갔다. 다치지 말아요. 라는 말이라도 했어야 했을까. 뒤늦은 후회를 하던 해린은 테리어드가 사용하는 나이프 한 자루를 발견했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 나이프를 전해줄 사람은 자신 밖에 없음을 깨닫고 해린은 나이프를 매만졌다. 어딘지 테리어드를 닮은 예리한 나이프가 해린의 손 안에서 은은하게 빛났다.
“일부러 놔두고 온 나이프에요. 당신이 써요.”
내민 나이프를 본 나이프 주인의 답변에 말문이 막혔던 해린은 복잡해진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했다. 생각이 정리되자 심호흡을 한 해린이 입술을 움직였다.
“당신에게 소중한 물건일 텐데요? 그리고 난 쓰는 방법을 몰라요.”
“배우면 되겠군요.”
“당신에게요?”
“자신 있나요?”
“자신은 없지만, 사심은 있어요.”
그 사심이 날 포기하지 않게 만들 거라고 생각해요.
해린의 곁으로 다가온 테리어드는 저택에서 그랬던 것처럼 부드럽게 해린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혹시 몰라서 다른 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에 닿는 테리어드의 손에는 많은 것이 묻어있었다. 그 많은 것을 알고 싶은 욕망을 숨기지 않고 웃은 해린은,
“사심 많은 제자를 가르쳐줄 수 있나요, 스승님?”
이제 스승이 될 사랑하는 사람을 보며 물었다.
*
티아해린 6주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번 6주년에 뭘 쓸까 고민하다가 오피셜의 두 사람이 아니라 에유의 두 사람으로 틀고 소재 고민하다가 전에 이야기 했던 아가씨 해린이, 메이드(!) 티아양이 떠오르더라고요. 약간 제 취향을 부었는데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ㅁ^
6년이란 긴 시간을 함께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유님이랑 티아양 제가 많이 좋아해요. 사랑해요! 항상 건강하시고 오늘만이 아니라 언제나 행복한 일 가득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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