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Micat sidus

<span class="sv_member">에메트</span>
에메트 @acidcatsle
2026-02-07 17:44


01.

노래를 상당히 잘 부르는 편에 속했지만 한 번도 자신이 노래를 잘 부른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길잡이별―라세인 데 루베르니겔의 손에는 상자 하나가 들려있었다. 선물이야? 기척 대신 발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 누구보다 오래 알아온 전우, 에르위니아가 물었다. 고개를 돌려 대답을 기다리는 에르위니아를 본 라세인은 고개를 끄덕인 뒤, 그래. 라고 긍정했다. 라세인은 이 상자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고 잘 전해줘. 라고 말하며 몸을 돌리는 에르위니아를 보며 말했다.

“그래.”

그의 짧은 대답을 들었다는 뜻으로 손을 흔든 에르위니아의 모습이 바람을 맞아 흩어지는 눈처럼 사라졌다.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간 거리를 눈에 담던 라세인은 올해의 첫 눈이 겨울이 시작되는 12월이 아닌 11월에 왔음을 기억했다. 이 상자 속에 든 선물을 받을 주인도 보았을까. 아마,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라세인은 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바람이 인간의 길을 벗어나버린 지금도 인간처럼 사는 길잡이별을 스쳐지나갔다.


02.

가끔 이 세계에서는 눈이 온다는 이야기가 없어도 오늘처럼 눈이 내렸다. 그리고 다음 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적은 양의 눈만이 내리는 밤의 거리에는 가끔, 불청객이 나타난다. 그리고 오늘의 불청객은 라세인이 세계의 멸망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생명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대립할 자였다.

“스쳐지나갈 생각은 없군요. 저도 그랬지만요.”

숲을 불사르고 칭호를 박탈당한 마녀의 손에 지팡이가 들렸다. 라세인도 말없이 에세리아를 들었다. 은색의 에고웨폰이 들리자마자 퍼부어진 공격이 이 공원이 전장이 됐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03.

“사랑하는 사람이 불러서요. 오늘은 이 정도로 해요, 길잡이별.”

결판을 낼 수 있었던 싸움을 무승부로 돌려버린 마녀의 선언이 끝나고 마녀가 사라지자 라세인은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물건들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마법이 걸려있는 옷이었지만 세상에는 만약이 있었다. 많은 만약. 그 만약 중에 이 선물을 받을 주인을 만나지 못 한다는 만약은 생각하지 않는 라세인은 걸음을 옮겼다. 공원 벤치에서 잠깐 앉아서 숨을 돌릴 생각이었다. 약속을 잡고 이 상자의 선물을 전하려던 그의 계획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존재가 앉아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았더라면 라세인의 생각은 현실로 이뤄졌으리라.

벤치에 앉아있던 은발의 여성이 고개를 들었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여성―아인하르트와 라세인의 눈이 서로를 담았다.

“괜찮다면 그대의 옆에 앉아도 될까?”
“라세인이 그렇게 하고 싶다면요.”

자신의 몸에 싸움의 흔적이 남지 않았기를 바라며 아인하르트의 옆에 앉은 라세인은 주머니 속의 상자를 손에 쥐었다. 오늘의 만남은 생각지도 못한 만남이었으니 이 선물을 아인하르트에게 전할 필요는 없다. 대화를 나누고 헤어지기 전에 다시 만날 약속을 잡아 이전의 책갈피처럼 조금은 근사하게 줄 수 있음을 알면서도 라세인은 그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상자를 아인하르트의 앞으로 내밀었다.

“조금 당황스럽겠지만 그대가 생각나서 산 물건이야. 원래는 약속을 잡아서 주고 싶었는데 그대를 만나니 지금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받아주겠나? 부담스럽다면 거절해도 괜찮아.
자신이 내뱉은 말이 정리가 안 되는 날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을 때, 아인하르트의 손이 라세인이 내민 상자에 닿았다. 라세인은 감사의 인사와 함께 상자를 받은 아인하르트를 보다 웃었다.

잘 웃지 않는 별이 오늘 처음으로 얼굴에 지은 웃음이었다.


*
랏땅이랑 르네님네 아인 아가씨랑.
조금 일찍 드리는 생일선물이 됐지만 기쁘게 받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생일 축하드려요!^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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