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곁으로
세계의 끝은 글을 모르는 아이도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장소였다. 아쉐리카도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그녀는 세계의 끝이라는 장소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언니인 카밀라가 들으면 불처럼 화를 낼 이 감정-호기심은 아쉐리카 D 브론테가 마법사이기 때문에 자라났다. 마법사는 세계를 죽는 그 날까지 탐구하는 자들이었으므로. 하지만 아쉐리카를 세계의 끝에 오게 한 계기는 마음 안에 자란 호기심이 아니라 그녀의 적이었다.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절벽에서 던져지며 아쉐리카는 생각했다. 죽는 걸까. 하고 싶은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주마등. 지금 자신이 겪는 현상을 부르는 이름을 겨우 기억한 아쉐리카는 점점 희미해지는 의식을 놓으며 눈을 감았다.
눈을 뜬 아쉐리카의 호박색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별이 보이지 않는 밤하늘과 별처럼 밝은 세계였다. 새로운 세계. 세계의 끝이 다른 세계와 연결되었다고 주장했던 마법사의 책이 떠올랐다. 그 책을 조금 더 자세히 읽지 않은 자신을 원망하던 아쉐리카는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마력은 반응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들여다보는 아쉐리카의 귀를 낯선 목소리가 두드렸다.
“이 세계는 당신의 마법을 인정하지 않아요.”
“내 마법을? 그런 세계라면 내가 사는 세계의 언어도 사용할 수 없을 거야.
“정답이에요.”
“정답이라면서 내가 사는 세계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당신은 누구지?”
낯선 목소리의 주인―흑발의 남자는 손가락을 입술로 가져갔다. 듣는 귀가 많아질 수 있으니 장소를 옮기도록 해요, 마법사님. 아쉐리카를 아가씨라고 부르지 않고 마법사라고 부르는 남자가 몸을 돌렸다. 아쉐리카는 고민하다가 어린 시절에 즐겁게 본 동화에 나온 소녀처럼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남자는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경험한 절망과 앞으로 경험할 절망을 조금은, 날려줄 수 있으리라.
*
남자의 이름은 운하였다. 발음이 힘들다는 말을 했음에도 자연스럽게 발음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쉐리카를 보며 웃던 운하는, 아쉐리카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할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설명을 시작했다.
아쉐리카가 세계의 끝을 지나서 도착한 세계는 마법이 당연하지 않고, 지금까지 쓰던 언어도 통하지 않는 지구라는 이름의 세계였다. 운하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마법사였다. 마법이 당연하지 않은 세계라는 것은 마법을 포기하고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선택지도 있다는 소리였으나 운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이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아쉐리카가 감탄의 뜻을 담아 휘파람을 분 뒤, 어려운 길을 선택했네. 라고 말하자 운하는 찻잔을 들여다보았다. 머리카락과 같은 색을 간직한 눈이 웃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당신이 기다리는 사람과 꼭 만나길 바라지.”
“쉐리 씨는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고민 중이야. 내 모든 능력이 0이 되는 세계는 처음이라 전부 내던지고 싶은 나태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나는 그런 삶을 살아본 적이 없거든.”
“그런 쉐리 씨에게는 나를 도우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해 더 알아가는 방법을 추천할게요.”
“익숙해지라는 거군. 좋아. 당신이 추천한 방법을 쓰겠어, 운하.”
잘 부탁한다고 말하며 아쉐리카가 내민 손을 잡은 운하는 아쉐리카에게 집을 안내했다. 운하의 집은 넓었다. 다른 사람들의 집을 구경한 적은 없지만, 이 세계가 마법이 당연하지 않은 세계라는 사실에서 아쉐리카는 운하가 마법사라는 모습을 숨기고 만들어놓은 평범한 모습 역시 꽤 높은 지위라는 사실을 직감하며 운하가 안내하는 집을 눈에 새겼다.
돌아갈 방법을 찾지 못 하면 이 세계에서 살아가야 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평범’한 삶을 마법사로 살아온 자신이 견뎌낼 수 있을까. 아직은 절망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절망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아쉐리카는 따뜻한 물로 씻은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눕혔다. 잠은 금방 오지 않았다.
*
가장 먼저 익숙해지기로 한 것은 언어였다. 가르쳐줄 선생으로 선택된 운하는 자신이 가르쳐준 언어를 무서운 속도로 습득하고 있는 아쉐리카를 서재로 안내했다. 자아가 있는 마법서 몇 개가 말을 거는 것을 무시하며 책을 고른 아쉐리카는 서재의 책을 순식간에 읽어나갔다. 책만 읽으면 손님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오후가 되자, 아쉐리카는 도울 것이 없냐고 물으며 운하를 보았다. 생각에 잠겼던 운하는 아쉐리카에게 필사를 부탁했다.
“마법서네.”
“네, 마법서예요. 쉐리 씨가 사용하는 펜도 평범한 펜은 아니고요.”
“이런 중요한 일을 내게 시켜도 돼?”
“쉐리 씨니까 부탁한 거예요.”
“나를 믿네.”
“쉐리 씨는 나를 안 믿나요?”
말문이 막힌 아쉐리카는 자신을 절벽에 던진 적보다 더욱 강한 공격을 행한 마법사를 보았다. 내 행동에 답이 있겠지. 믿는다는 대답은 하기가 싫었던 아쉐리카가 선택한 대답에 소리를 내서 웃은 운하가 필사의 방법을 설명했다. 쉽지 않았지만 무사히 절반을 필사한 아쉐리카가 한 글자라도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하는 마법서의 필사를 맡긴 남자가 내려놓은 찻잔을 보았다.
아직도 김이 올라오고 있다. 마법을 사용한 모양이다. 이렇게나 다정한 당신은,
“누구를 기다리는 건지 궁금하네.”
조금 더 친해지면 물어보기로 한 아쉐리카는 펜을 내려놓고 찻잔을 들었다. 차는 지금까지 마셨던 어떤 차보다 맛있었다.
*
세 번째 마법서의 필사를 끝내고 서재에 갔을 때, 아쉐리카는 운하의 마법서들을 통해 자신의 마법이 돌아온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법서들이 하는 이야기를 농담으로 넘길 수 없어서 가볍게 발동시킨 마법은 아쉐리카가 원하는 대로 책을 공중에 동동 띄웠다. 축하해요. 미리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한 운하의 목소리가 아쉐리카를 축하했다.
“마법서들은 말하지 않았지만 당신의 도움도 있었겠지. 고마워.”
“당신의 마법을 갑자기 돌아오게 할 정도로 만능은 아니에요.”
“난…”
“돌아가요.”
“당신이 기다리는 사람이 올 때까지는 있어주고 싶어.”
운하는 아쉐리카의 곁으로 다가가 아쉐리카를 끌어안았다. 괜찮아요. 만났거든요. 갑작스러운 말이었고 자세한 상황도 듣지 못 했지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세한 설명을 하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아쉐리카는 두 팔로 운하를 끌어안았다. 내가 만약 이곳으로 돌아온다면―
“어떻게 할래?”
“기적 같은 일인데요. 마당에서 내내 피어나지 않는 벚꽃이 피어나는 것보다 더 기쁘겠죠.”
“그럼, 기다려줘.”
운하는 고개를 숙여 아쉐리카의 이마에 입술을 누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쉐리카는 떨어지는 운하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뒤, 그의 이름을 불렀다. 운하. 이름을 불린 운하가 몸을 멈췄다. 입술과 입술이 접하고 숨결이 뒤섞였다.
이것은 약속이었다. 반드시 당신의 곁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 곧 올게. 라고 말하며 아쉐리카는 웃었다. 태양처럼 환한 웃음이었다.
*
한참을 헤맨 끝에 도착했으나 운하는 점심을 먹기 위해 방금 막 나간 상황이었다. 기다리실래요? 라고 묻는 직원에게 고개를 저은 아쉐리카는 밖으로 나왔다. 마법을 쓰면 더 찾기 편하겠지만 마법을 쓰지 않고 걸었다. 열심히 걸은 끝에 운명처럼 발견한 운하의 곁으로 다가간 아쉐리카는 자신을 보는 운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돌아왔어. 그러니까―”
가기 전에 참았던 말을 해줄게. 당신의 곁에 있게 해줄래?
*
운하쉐리 9주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하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9주년이라니. 오늘 포함 벌써 9번이나 겪었던 일이지만 항상 7월 30일만 되면 설레게 되는데 세하랑 운하오빠가 9년이나 함께해줬기 때문인 거 같아.
나하고 쉐리랑 9년이란 긴 시간을 함께해줘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이번 이야기는 태어난 세계가 다른 운하쉐리인데 나라가 아니라 세계가 다른데도 결국에는 사랑하는 이야기를 써서 재미있었어. 세하도 재미있게 읽어줬으면 좋겠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길 바라고 세하랑 운하오빠 내가 많이 좋아해. 사랑해~! 건강 잘 챙기고 더위 조심해욥!u.u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