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마녀와 도련님

<span class="sv_member">에메트</span>
에메트 @acidcatsle
2026-02-07 17:41

01.

테미르디케 아일라 루드베키아의 걸음을 붙잡은 거리의 점술사는 테미르디케가 믿음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목소리로 다 맞출 수 있어정말로라고 묻자 의미심장한 말을 입에 올렸다너는 내일 나를 마녀라고 부르게 될 거야한 귀로 흘린 말은 진실이 되었고 테미르디케는 자신을 또 다시 이 거리에 오게 한 이름을 모르는 점술사를 바라보았다테미르디케를 굴복시킨 마녀가 갈색 눈을 초승달처럼 휘며 웃었다.

 

내 말이 맞았지?”

귀하의 말이 맞았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겠어하지만 한 번이라면 우연으로도 가능해그러니까 한 번 더 증명해.”

억지는 다른 곳에 가서 부려줘나는 바빠도련님.”

 

웃음과 단호함으로 테미르디케의 억지를 자른 뒤손님을 맞았다테미르디케는 점술사의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았다무사히 손님의 돈을 받았지만 테미르디케가 옆에 있는 바람에 원하는 만큼의 돈을 받지 못한 점술사가 불만의 빛을 담은 눈으로 테미르디케를 보았다.

 

억지는 다른 곳에 가서 부려달라고 했잖아도련님.”

여는 도련님이 아니라 테미르디케 아일라 루드베키아이 영지의 다음 주인이고―

 

귀하에게 흥미가 생긴 단골손님이야.

두 번 밖에 오지 않았음에도 자신을 단골손님이라고 주장하는 테미르디케를 보던 점술사는 아랫부분이 똬리를 튼 뱀의 무리를 닮은 수정구를 매만지며 말했다오늘 영업은 방금 끝났고 난 더 이상 점술사가 아니야점술사는 거리의 점술사로 살면서 온갖 부류의 손님을 겪은 모양이었다이렇게나 자연스럽게 철벽을 치고 거리를 벌리다니오늘은 물러나야한다고 판단한 테미르디케가 말했다.

 

오늘은 여가 졌어하지만 내일은 다를 거야.”

 

또 방문하겠다고 말을 남긴 테미르디케는 몸을 돌리고 성을 향해 걷다가 점술사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정착과는 먼 생활을 하는 거리의 점술사인 그녀가 또 그 장소에 있으리란 보장도 없었다그래도 내일 다시 그 곳으로 가겠다고 결심한 테미르디케의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02.

점술사의 이름은 나스카였다거리의 점술사인 그녀에게는 테미르디케나 영지에 사는 사람들처럼 성은 없었다정착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정착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착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고운 눈으로 보지 않았다나스카는 그런 시선과 반응이 익숙한 모양이었다네 번째 만남에서야 나스카라는 이름을 말해준 그녀는 테미르디케가 데려간 꽃밭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낮잠 자기에 최고의 장소네.”

여의 비밀장소를 그렇게 평한 사람은 귀하가 처음이야.”

나 말고 아무도 안 데려왔잖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임에도 나스카에게는 금방 간파당하고 말았다나스카는 역시 단순한’ 점술사는 아닌 모양이었다문득 말도 안 되는 생각이 테미르디케의 머릿속을 스쳤다나스카가 처음에 한 의미심장한 말처럼 마녀라는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동화책이나 옛날이야기에 나온 몇 줄로만 마녀를 아는 테미르디케는 낮잠 자기에 최고의 장소라면서 잘 생각이 없어 보이는 나스카를 보라색 눈에 담았다.

 

여가 처음에 정말로 다 맞출 수 있냐고 물었지그건 정말 무례한 질문이었어미안해나스.”

신경 쓰지 마.”

신경이 쓰여.”

너도 알겠지만 난 이 영지를 떠날 사람이야.”

 

남는 사람은 떠날 사람을 신경 써서는 안 돼.

그것이 자신들의 정해진 운명이란 것처럼 말하고 일어난 나스카가 옷 여기저기에 붙은 꽃과 풀을 털었다테미르디케는 조용히 자신의 옷에 묻은 꽃과 풀을 턴 뒤먼저 앞장서는 나스카를 따라서 걸었다그녀가 이 영지에 정착할 일이 없다는 사실은 미리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울적한 기분을 알아준 것처럼 점점 흐려지는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비를 피할 곳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던 두 사람이 선택한 장소는 동굴이었다비가 점점 더 거세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테미르디케는 비가 오고 천둥이 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나스카의 옆에 앉았다.

 

비가 그칠 때까지는 못 나가겠군.”

쉽게 그칠 비도 아닌 것 같아디케.”

그럼 비가 그칠 때까지는 여랑 여기에…

긴장했어?”

 

웃으면서 옆구리를 쿡 찌르는 나스카를 흘끗 본 테미르디케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나스카보다 자신이 어리다는 사실은 처음 만난 그 날부터 어렴풋이 느꼈지만이렇게 당혹스러운 상황에서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면 나스카가 얄밉게 느껴지기도 했다자신이 정말로 연하라고 해도 동생 같은 취급은 받고 싶지 않은데언제부턴가 마음에 품게 된 생각의 이유를 나스카의 귀엽네디케라는 말을 듣고 깨달은 테미르디케가 고개를 돌려 나스카를 담았다.

 

귀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긴장하지 않았어.”

디케.”

옆에 있는 사람이 귀하― 나스카라서 긴장하고 있는 거야귀하가 떠날 사람이라는 것도 알지만 이런 마음은 여가 멈추려고 해도…

 

뺨에 닿은 온기에 말을 멈춘 테미르디케는 키스를 선물한 나스카를 끌어안았다쿵쿵 뛰는 심장의 소리가 그녀에게 전해질 테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안고 싶었다가지 말라는 말도 하고 싶었다그 전부를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알 수 없는 테미르디케의 등을 두드리며 테미르디케를 진정시킨 나스카는 두 팔을 풀어 자신을 자유롭게 해준 테미르디케의 손목에 뱀 모양의 팔찌를 채워준 뒤말했다.

 

기다릴 수 있어?”

귀하라면 몇 년이 걸리더라도 기다리겠지그리고 여는 귀하를 붙잡을 자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랄 거야.”

농담에 이렇게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디케.”

귀하니까 진지한 거야나스그러니까 여에게 기회를 줘한 번이라도 좋아.”

 

나스카는 대답하지 않고 테미르디케의 얼굴을 감쌌다테미르디케는 지독한 첫 사랑의 열병을 앓을 것을 예감하며 눈을 감았다이 점술사를 자신의 곁에 묶어둘 수백수천수만 개의 방법을 머릿속으로 수없이 계산하면서.

 

03.

낯설었던 팔찌의 무게와 감각에 익숙해졌을 즈음에 영지를 잠시 떠나갔던 떠돌이 점술사가 왔다는 소문이 테미르디케의 귀에 들어왔다소문을 들은 테미르디케는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거리로 나가떠돌이 점술사의 가게로 향했다가게에는 어제 만난 사람처럼 여상하게 인사하는 나스카가 있었다.

 

어서 와디케점심이 코앞인 지금까지 손님을 못 받아서 뱃가죽이 등이랑 붙어버릴 것 같은데 괜찮다면 첫 손님 해줄래?”

여를 귀하의 첫 손님으로 만들고 싶다면 대가가 필요하지시간을 줘나스.”

욕심쟁이 도련님은 보지 못한 사이에 더 욕심쟁이가 되어버렸네.”

어쩔 수 없어.”

 

여는 귀하를 좋아하거든.

갑작스러운 고백의 말을 듣고 배고픔도 잊어버린 나스카를 바라보던 테미르디케는 얄밉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많이 좋아해나스.”

 

자신의 마음을 나스카가 잊지 못할 정도로 몇 번이나 거듭하여 말하는 것으로 자신이 사는 이 영지를 나스카가 돌아올 장소로 만들겠다는 나쁜 계획을 세우면서 점술사를 기다린 청년은 뻗어진 제 손을 잡은 나스카의 손에 손가락을 얽었다그 모양새는뒤엉킨 뱀을 닮아있었다.

 

 

*

디케나스 200일 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축하합니다~!

시간이 호로록 흘러 디케나스 200일이 되었네요! 200일은 에유로 가져와봤습니다제목에서 티가 날지 모르겠지만 로판풍(!)이 목표였어요그런데 디케가 어린 티가 많이 나네요나스한테 잘 해라디케야.ㅠㅠ

200일이란 긴 시간을 저랑 디케랑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쏘님이랑 나스 제가 좋아하고 사랑해요.

건강 잘 챙기시고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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