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ur
평범한 길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리딜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할게요. 라고 대답하고 누군가의 인생을 파괴할 약을 배달한 리딜은 자신의 목을 조르던 빚에서 벗어났으나 발을 들여놓은 곳에서는 리딜을 놓아주지 않았다. 한 번이 두 번, 두 번이 세 번으로 늘어났다. 새로운 길이 있을 거라고 부정하던 리딜이 이 길이 자신의 현실이라고 인정한 순간은 나이프로 누군가의 삶을 끝냈을 때였다. 화장실에서 몇 번이나 손을 씻어도 비릿한 피냄새가 지워지지 않던 그 날, 리딜은 더 이상의 부정을 포기하고 현실을 인정했다.
현실을 인정하자 모든 일이 쉬워졌다. 목숨을 거는 일조차 쉬워진 리딜은 병원에 갈 수 없는 몸을 이끌고 이 의사, 저 의사를 만나다가 그를 만났다. 하이네 벨라크루즈. 이 일과는 어울리지 않는 의사는 리딜을 말없이 진료했다. 리딜은 차분한 분위기만큼이나 차분한 성격으로 보이는 벨라를 바라보다 말을 걸었다. 호기심이었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 들어본 적 있어요?”
“당신이 백 번째입니다.”
“와, 특별한 숫자네요. 특별한 숫자니까 통성명이나 해요. 난 리딜 콘스탄틴이에요.”
“하이네 벨라크루즈입니다.”
“본명이에요? 아니면 가명?”
“원하는 대로 생각하시죠.”
말을 마친 벨라가 입에 올린 가격은 지금까지 만난 의사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쌌다. 그렇게 싸게 받아도 괜찮아요? 또 다시 던져진 질문에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 거리가 벨라가 그어놓은 안전선이었다. 이런 세계에서 살아가려면 자신을 지키고 방어하기 위한 안전선 하나쯤은 필요한 법이니까. 그 사실을 알았음에도 리딜은 그 안전선을 지켜주고 싶지 않았다. 그 시도가 자신과 벨라를 두 번 다시 못 만나게 하더라도.
“오늘은 다친 곳이 없잖아요.”
“마음이 다쳤어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그만하시고 돌아가세요.”
대화로 리딜을 밀어낸 벨라는 문을 닫으려다 그 문을 잡은 리딜의 손을 보고 움직임을 멈췄다. 리딜은 한숨을 삼켰다. 문 그냥 닫아서 생채기 내고 쫓아내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렵다고. 다른 사람한테도 그렇게 틈을 보이냐는 물음을 삼킨 리딜은 자신과 키가 비슷한 벨라와 눈을 맞췄다. 자신을 담는 보라색 눈에서 언젠가 스마트폰을 뒤적이다 본 라벤더 밭을 떠올리던 리딜이 입술을 움직였다.
“당신이 저번에 준 립스틱으로 키스마크 내주면 얌전히 돌아갈게요.”
이 말을 들은 벨라의 반응을 안 봐도 뻔했다. 문을 잡은 자신의 손을 떼어내고 거절한 뒤에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하겠지. 지금까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그러나 계속 밀어내던 벨라는 지금까지와 다른 행동을 했다. 잠시 사라졌던 벨라가 문을 잡은 리딜의 손가락을 떼어내더니 문을 열었다. 이대로 쾅 소리를 내고 문이 닫힐 거라고 생각한 리딜의 예상을 깨고 목덜미에 온기가 닿았다.
“됐나요?”
리딜은 대답 대신 자신을 바라보는 벨라를 두 팔로 끌어안았다. 아까랑 말이 다르다는 말을 하지 않고 벨라는 얌전히 리딜의 품에 안겨있었다. 평소보다 빨라진 제 심장 소리가 벨라에게 전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리딜이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안고 있게 해줘요.”
안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테니까.
*
모두가 죽을 거라고 말하던 임무였다. 잘 나신 윗분들도 리딜의 생환을 기대하지 않고 보냈겠지만 리딜은 살았다. 포기한 순간, 당신이 생각난 덕분일까. 리딜은 생각보다 빨리 회복된 몸으로 벨라의 진료실 앞에 섰다. 태양이 거리를 비추는 오후였다. 늦은 시간에 진료를 받는 이 세계의 의사는 이 시간에 진료를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리딜은 이 문 앞에 서있었다. 문을 두드리지도 못 하고 보던 리딜의 귀를 다쳤습니까? 란 목소리가 두드렸다. 목소리를 돌리자 장을 봐온 것으로 보이는 벨라가 보였다. 그제야 리딜은 자신이 이 문 앞에 선 이유를 깨달았다. 보고 싶었다.
그 날처럼 끌어안고 싶었지만 다치지는 않았어도 피냄새와 이런저런 냄새가 뒤얽힌 몸으로는 벨라를 끌어안고 싶지 않았다. 리딜은 웃으며 벨라의 곁으로 다가간 뒤, 네. 라고 대답하고 벨라의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 앞으로 끌어왔다.
“당신이 보고 싶어서요, 벨.”
가벼운 입맞춤을 끝내고 작별 인사를 건네려던 리딜을 벨라가 불렀다. 리딜. 생각해보니 리딜은 제 이름을 부르는 벨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벨라는 모르겠지만 그 모습은 조직의 윗분들의 명령을 기다릴 때보다 더 얌전했다.
“들어와요. 차 정도는 대접해줄 테니까.”
“차로 안 끝날지도 몰라요. 난 벨을 좋아하거든요. 거리를 유지하는 의사로 있고 싶으면 그 키스마크 한 번으로 끝내요.”
언제나 밀어내는 사람은 벨라였는데 이번에는 반대가 되고 말았다. 모순적이지만 코앞까지 다가왔던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 리딜은 깨달았다. 좋아한다는 마음으로 이 사람을 울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이것이―
“아직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답은 안 들었잖습니까.”
이어지던 리딜의 생각을 벨라의 손이 멈췄다. 당신도 자신을 붙잡을 목줄 정도는 필요할 테고요. 잠깐의 침묵 뒤에 벨라가 꺼낸 말에 웃던 리딜은 목덜미에 키스마크가 남았던 그 날처럼 벨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피하지 않는 벨라를 영원히 자신의 곁에 붙들어두고 싶다고 생각하며 리딜이 속삭였다.
“놓지 말아요. 그럼 언제나 살아올게요.”
“못 믿어요.”
“믿게 해줄게요. 그러니까―”
당신의 리딜이 되게 해주세요.
말을 마친 리딜의 입술이 벨라의 입술에 닿았다.
*
자정에 주려고 했는데 쥐 자러가는 것 같아서 조금 빨리 업로드. 전에 쓰고 싶다고 썰 풀었던 마피아+키스마크 리딜벨라입니다.u.u
생일 미리 축하해~! 행복하고 따뜻하고 건강한 생일 보내길 바라. 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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