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불꽃이 머무는

<span class="sv_member">에메트</span>
에메트 @acidcatsle
2026-02-07 18:04

귓바퀴에 구속구를 착용하고 세계의 적이나 세계의 적이라 불리게 될 자들을 제거하는 역할을 맡기 전부터 전장에서 살아온 가혜의 위험을 감지하는 감각은동생인 가의와 진유가 인정할 정도로 뛰어났다도연과 결혼한 뒤에 찾아온 평온한 생활에 휴식이라도 취하는 것처럼 조용했던 감각은 오늘 날아온 선물과 초대장에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가혜는 자신의 감각을 깨워준 선물과 초대장을 은색 눈에 담았다잘 포장된 선물과 초대장은 가혜의 오빠이경을 배신하고 오빠의 친구인 비현을 선택한 상아가 보낸 물건이었다천헐궁 가주의 집으로 보낸 물건과 초대장이니만큼 독은 없으리라.

 

그런데도 반응했다면―

거절하라는 뜻이겠지.”

 

가혜는 자신의 말을 자연스럽게 이으며 등장한 남편도연을 보았다반가움이 녹아있는 웃음을 얼굴에 그리며 어서 오라고 인사하는 가혜에게 다녀왔소라고 인사한 도연은 상아의 가혜의 시선을 붙잡고 있던 상아의 선물을 보았다.

 

받지 않고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소.”

편한 길이겠지만 내가 귀에 착용하고 있는 귀걸이의 무게를 잊어버릴 수는 없지.”

갈 생각이오?”

고민 중이야.”

곤란하다면 내게 맡기는 방법도 있지.”

 

혜아.

자연스럽게 자신의 애칭을 입에 올리며 기대고 숨을 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말하는 도연을 올려다보던 가혜는 고개를 저었다도연의 제안처럼 그의 뒤로 피하고 숨는 것이 가장 편하고 쉬운 방법이라는 사실은 알았다하지만 그 방법이 결국 자신의 편의를 위해 도연을 이용하는 일이었다거절의 뜻을 담아 고개를 좌우로 휘저은 가혜가 말했다.

 

이런 일에 그대를 방패로 쓸 생각은 없어.”

가겠다는 뜻이군.”

그래야지언제쯤이 좋을까.”

모레그리고 그녀는 혼자 오라고는 하지 않았소.”

 

여전히 빈틈이 많군이라고 초대장을 손으로 툭툭 두드리며 웃는 도연을 보던 가혜는 말없이 도연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고마워가혜가 입에 올린 감사의 인사를 들은 도연은 가혜를 품에 끌어안았다따뜻한 품 안에서 가혜는 눈을 감았다위험함을 알리면서 곤두서버린 모든 감각이 금세 안정을 찾는 것을 알아챈 가혜는 두 팔로 하늘로 돌아가는 날까지 자신과 함께 할 동반자를 끌어안은 뒤감았던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그 직후전하고 싶은 말을 자아내기 위해 벌어진 가혜의 입술 위로 다정한 온기가 내려앉았다.

 

새의 깃털처럼 살포시.

 

*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러운 딸의 생모이긴 했지만아내인 상아와 비현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그럼에도 비현이 상아와의 결혼을 유지하는 이유는 상아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세력을 써먹을 곳이 많아서였다쓰는 사람의 손에도 상처를 입히는 양날의 검 같은 세력이기는 했지만비현은 그 점이 이 세력의 주인인 상아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연인의 동생을 향한 유치한 질투심을 접지 못 하고 연인을 배신하고 자신을 선택한 여자그 여자는 오늘 자신의 유치한 질투심을 제어하지 못 하고 질투의 대상인 가혜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선물과 초대장이라는 포장을 비현의 이름을 빌려 12궁 가주의 집으로 보낸 결과였다그리고 가혜는 비현의 예상대로 도연과 함께 왔다.

 

상아는 가혜 혼자 오길 바랐을 테지만어린 나이에 한 가문의 가주가 되어 천헐궁이라는 귀족가를 지키고 싸워온 도연은적지에 부인을 혼자 보낼 정도로 감각이 무딘 사내가 아니었다.

 

여전히 감이 좋으시군요.”

감이 없었다면 오래 전에 많은 것을 잃었겠지.”

 

웃으며 대답한 도연에게 긍정의 대답도부정의 대답도 내어놓지 않은 비현은 아내상아가 증오하고 제 동생희운이 오랫동안 사랑했던 가혜를 보았다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 했음에도 자식을 낳으라는 요청을 받은 은색 눈의 천족관장하는 화염만큼이나 많은 것을 불태울 존재의 선택을 받은 것은 도연이었다많은 것을 고려한 영리한 선택이었으나―

 

점점 더 무거워질 텐데요.”

그 때는 무게를 줄일 방법을 찾으면 되오.”

 

함께라고 덧붙이는 도연의 말에는 그가 한 각오가 녹아있었다잘 지켜보죠장로인 비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으나친구를 배신하고 죽음의 늪으로 떠민 정적의 칭찬이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은 도연은 웃음을 지우고 가혜의 곁으로 다가갔다이 웃기지도 않는 촌극을 만든 상아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임을 알리고 인사를 마칠 때까지 도연은 가혜의 손을 놓지 않았다.

 

함께라는 말을 괜히 덧붙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증명하는 그들을 보던 비현은 몸을 돌렸다초대를 말리는 것이 나았으리란 후회로 제 얼굴에 번지는 씁쓸한 미소를 삼키며.



*
혜아도연
아켐언니랑 썰 풀다가 생각나서 샤샤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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