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찾아왔다
어떤 가수가 부른 노래처럼 모두가 사랑을 찾는 봄이었다. 서로의 손을 잡고 아침부터 바다를 걸으며 대화하던 연인도, 공원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던 귀여운 학생 커플도 행복한 얼굴이었다. 린도도 사랑을 찾기는 했다. 바다에서 만난 연인과 공원의 학생들과 다르게 관계를 진전시키지 못 해서 상대를 연인이라 부를 수 없을 뿐이다.
“그럼 너에게는 아직 봄이 안 왔다는 거지.”
자비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돌직구가 린도를 가격했다. 얄밉다고 투덜거리고 싶었지만 사랑을 찾은 그 날부터 지금까지 린도의 연애 상담을 받아준 사람은 돌직구를 던진 알리스터 뿐이었다. 그가 받아주고 조언하지 않았다면 넘기지 못 했을 위기들을 떠올리고 소름이 돋은 린도가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진. 그래서 곧 다가올 화이트데이에 모든 것을 걸고 아직 오지 않은 봄을 잡을 예정이야.”
“고백할 생각이라면 실패도 대비하도록 해, 린도. 모든 것을 걸면 그만큼 힘들어져.”
수많은 사람과 연애를 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었다. 그 조언이 옳은 방향이라는 사실도 알았으나,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한 이번만은 힘들어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었다.
“미안해. 이번만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
“네가 택한 가시밭길이니 말리지는 않겠지만 힘들면 도망치도록 해.”
힘든데 도망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덧붙이며 커피를 마시는 알리스터를 보며 린도는 웃었다.
“네 충고, 기억해둘게.”
*
무라사키 린도가 최정아와 처음 만난 계절은 작년 여름이었다. 지인의 병문안을 온 사진작가와 그 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스치는 인연으로 끝나버렸을지도 모르는 두 사람의 인연은 바람을 쐬려고 옥상에 올라왔던 린도가 우는 정아를 목격하면서 연결되었다. 손수건만 건네줬더라면 괜찮았을 첫 인상을 예쁘다는 필요도 없는 말을 덧붙이면서 자신의 손으로 추락시켰지만, 정아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친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연인도 아닌 미묘한 관계인 채로.
데이트 도중에 추락했던 린도의 첫 인상이 조금은 괜찮아졌음을 긍정한 정아는, 무라사키 씨라는 호칭을 린도 씨로 바꿨다. 린도의 호칭이 정아가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정아. 예쁜 이름이었다. 첫 만남에 저질렀던 실수 때문에 예쁘다는 말을 항상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있는데도.
“재미있었어?”
처음에는 같이 보러 갈 사람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했던 데이트 신청을 이제는 정아가 흥미를 보이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된 린도가 던진 질문에 조수석에 앉은 정아가 생각에 잠겼다. 내일을 위해 미리 사둔 사탕과 같은 색깔의 입술이 움직였다.
“영화관에서 안 봤으면 후회했을 정도로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린도 씨는요?”
“나도 그래. 당신이랑 봐서 더 재미있었지만.”
얼굴을 붉게 물들인 정아의 검은 눈이 린도를 담았다. 욕심을 버리지 못한 린도에 의해 정아에게 가까워지던 린도의 얼굴을 정아의 린도 씨. 라는 목소리에 멈췄다. 여전히 붉은 얼굴로 정아가 말했다. 고마워요.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욕심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얼굴로 감사의 인사를 하는 정아에게 린도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정아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린도가 화들짝 놀란 표정이 된 정아를 보며 웃었다.
“다음에도 잘 부탁한다는 의미야.”
다른 의미는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 라고 덧붙이며 린도는 생각했다. 오늘도 집에 가서 후회할 거짓말을 해버린 제 입을 때려주고 싶다고.
*
화이트데이를 위해 준비한 사탕이 담긴 쇼핑백을 들고 린도는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 린도가 도착한 장소는 공원이었다. 평일이지만 사람이 많이 올 장소는 피하라는 알리스터의 조언은 괜찮은 데이트 장소를 고르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결전의 날에도 도움을 주는 친구에게 마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하는 사이, 평소보다 밝은 복장의 정아가 다가왔다. 예뻤지만 첫 만남에 한 실수가 있어서 그 말을 삼킨 린도가 웃으며 말했다.
“어서 와.”
“일찍 왔네요.”
“정아도 일찍 왔잖아. 갈까?”
린도는 조심스럽게 내민 손을 잡은 정아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3월에만 피는 다양한 꽃들이 두 사람을 반겼다. 봄의 햇살 아래에서 정아는 그 꽃들보다 빛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풍경도 보이지 않고 한 사람만이 보이는 순간이라니. 카메라를 가져왔다면 그 욕망을 숨기지 않은 사진을 가득 찍었을 린도에게 정아가 물었다.
“이 공원은 어떻게 알았어요?”
“가끔 들르는 곳이었어. 그때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젠 많아졌네. 아마 데이트 코스로 소개됐겠지.”
“데이트 코스가 될 정도로 예쁜 장소는 특별한 사람이랑 와야죠.”
“내 특별한 사람은 당신이야.”
오늘 갈 데이트 장소의 마지막에 예정되었던 고백이 린도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정아의 얼굴이 자동차 운전석에서 보았을 때보다 붉게 물들었다.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달은 린도는 정아의 손을 잡고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구석의 벤치로 향한 뒤, 벤치에 앉은 정아에게 가져온 쇼핑백을 내밀었다.
“화이트데이니까 고백은 사탕을 주고 하려고 했는데… 일이 꼬였으니까 지금 줄게. 대답은 편할 때 해줘.”
린도가 내민 쇼핑백을 받은 정아가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고민하며 생각에 잠긴 린도를 불렀다. 정아를 본 린도는 정아의 손에 들린 반지를 보고 벙찐 표정을 지었다. 사이즈를 물어보지 않고 구매해서 선물에서 제외시킨 반지였다. 저 반지가 정아의 손에 있다는 것으로 자신이 들고 오려던 쇼핑백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린도가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려던 그때, 정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두 사람만의 세계가 된 벤치 주변에 울렸다.
“원래 주려고 했던 선물은 사탕이었어. 그건…”
“알아요.”
부드럽게 웃은 정아가 반지가 맞는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운 뒤, 린도를 보며 물었다.
“어때요?”
“예뻐. 하지만 반지보다 정아가 더 예뻐. 그 말을 오늘 만난 순간부터 하고 싶었어.”
“그럼 앞으로는 솔직하게 말해요.”
벤치에서 일어나 린도의 곁으로 다가온 정아의 두 팔이 린도를 끌어안았다. 먼저 자신을 끌어안은 정아를 마주 끌어안은 린도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진심을 입 밖으로 내어놓았다.
“좋아해. 최정아가 좋아.”
드라마나 영화에 쓰기는 힘든 한심한 고백이었으나 그 고백에 담긴 진심을 아는 정아는 린도의 품에 있었다. 따스한 햇살. 체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 봄이라는 계절이 탄생의 마법을 부리기 시작한 공원에서,
“나도 좋아해요.”
그의 봄이 찾아왔다.
*
세나언니에게 드립니다. 긴 시간 함께 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3^
**
시츄는 세나님이 주셨습니다.
사탕 주려고 쇼핑백에 넣어놨는데 엉뚱한 쇼핑백 들고나와서 벙찐 상황이었어요.
***
첫 문장에 말한 모두가 사랑을 찾는~ 노래는 우타다 히카루의 벚꽃 흘려보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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