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사랑은 갑자기

<span class="sv_member">에메트</span>
에메트 @acidcatsle
2026-02-07 18:46

01.

 

해린은 포기한 꿈에 미련을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사실 미련을 두기도 힘들었다그 꿈은 해린의 꿈이 아니라 양부모가 아직도 사랑하는 죽은 딸의 꿈이었으므로.

입에 올리지 않고 줄곧 삼키고 있었던 말을 입에 올리며 꿈을 포기한 날해린과 양부모는 현실로 돌아왔다죽은 딸과 닮은 부분을 찾으며 자신을 한계로 몰아가던 숨 막히는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해린은 새로운 길로 걸어갔다양부모는 그런 해린을 말리지 못 했다.

 

양부모에게서 완벽히 독립한 해린이 찾은 새로운 길에서도 한계는 찾아왔다그때마다 해린을 위로한 것은 이제 막 데뷔한 신인가수벨의 노래였다파란 장미를 닮은 푸른 눈동자와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 외의 정보는 공개되지 않은 벨의 노래는 강하게 해린을 매료시켰다오래 노래해줬으면 좋겠다는 해린의 바람대로 벨은 오랫동안 노래했다.
늘어난 벨의 노래만큼이나 해린의 직위가 높아졌을 때벨은 콘서트를 개최했다핑계를 대고 티켓팅에 도전했지만실패한 해린의 자리는 없었다해린이 다음 콘서트를 노리자고 스스로를 위로했을 때기사가 나왔다.

벨이 콘서트를 끝으로 은퇴한다는 기사였다.

 

 

02.

 

여전히 벨의 노래를 즐겨들었지만 콘서트 장소였던 극장 근처에는 가지 않았던 해린이 극장 근처로 간 것은 업무 때문이었다업무는 막차가 끊긴 후에야 끝이 났다술을 마시는 바람에 차도 운전할 수 없었던 해린은 결국 숙소를 잡기로 했다보통 때는 잘만 지나가는 편의점을 방문한 것은 술 때문이었다술은 언제나 양부모의 집에서 나오면서 끊었던 초콜릿을 생각나게 했으니까.

 

편의점에 들어간 해린은 늘 먹던 초콜릿을 발견하지 못 하자 초콜릿을 포기하고 커피가 있는 냉장고로 걸음을 옮겼다해린이 자주 먹는 커피를 발견하고 냉장고를 열려던 그 순간이었다모자를 쓴 누군가의 손이 해린보다 빠르게 냉장고를 열었다해린은 냉장고를 열어서 캔 맥주를 꺼낸 사람의 눈이 낯설지 않다고 생각하며 커피를 꺼냈다계산을 마치고 편의점을 나온 순간해린은 그 사람의 눈이 낯설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닮았네.”

 

벨이랑.

은퇴해버린 제 가수랑 닮은 눈을 가진 사람이라니우연이라도 한 번 더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며 해린은 커피에 빨대를 꽂았다.

 

 

03.

 

커피에 빨대를 꽂으며 바랐던 우연은 엉뚱한 방향으로 찾아왔다해린은 휴대폰에 저장만 해두고 매번 피했던 양부모의 전화를 받는 바람에 재회하게 된 편의점의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오늘은 모자를 쓰지 않았지만 편의점의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스쳐가듯 만났어도 아름다운 사람은 잊어버리기 힘든 법이기도 했고.

 

갈색 피부큰 키금색 머리카락푸른 눈동자테리어드 W. 매저즈라는 이름을 가진 아름답지만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지닌 눈앞의 여성이 입술을 움직였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테리어드가 잃어버린 물건을 발견한 사람은 해린이 아니라 해린의 양부모였으나 그런 속사정을 오늘로 끝나버릴 만남의 상대에게 털어놓기는 애매했다말을 삼킨 해린은 카페에 오면 늘 주문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 뒤말했다.

 

잃어버린 물건은 계속 생각나는 법이니까요.”

소중한 물건일수록 그렇죠.”

 

말을 마치고 앞에 놓인 커피를 마신 테리어드가 말했다소중한 물건을 찾아주신 분께 하는 답례가 커피뿐이라는 게 아쉽군요회사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길러진 눈치가 해린에게 기회라고 속삭였다벨과 닮은 푸른 눈을 가진 테리어드를 향한 흥미그 흥미를 버리지 못한 해린은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미련을 드러낸 양부모를 정리하는 일을 미래의 자신에게 떠맡기며 말했다.

 

시간이 있으시다면 식사는 제가 대접하고 싶습니다.”

 

커피의 답례로요.

해린이 덧붙이는 말을 들은 테리어드가 픽 웃으며 대답했다.

 

가게를 직접 골라도 된다면 그렇게 할게요이해린 씨.”

 

 

04.

 

모든 일은 처음이 어렵고 그 다음은 어렵지 않았다관계를 쌓아가는 일도 마찬가지였다회사에서의 인간관계보다 더욱 세심하게 신경을 쓴 끝에 해린은 테리어드와의 관계를 친구이상 연인미만의 관계로 진전시킬 수 있었다여전히 벨과 테리어드의 눈이 닮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테리어드와 보내는 시간은 지금까지 만났던 어떤 사람과의 시간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오늘 해린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장소는 아름다운 도시의 야경을 볼 수 있는 루프탑 카페였다카페인 동시에 와인바인 가게의 메뉴판을 한참을 들여다보고 주문한 와인과 음식이 해린과 테리어드가 앉은 테이블에 차려졌다건배를 하고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가게에서 들려오는 음악의 익숙한 전주가 해린의 귀를 두드렸다벨의 데뷔곡이었다한계에 부딪힌 해린을 많이 위로한 그 곡을 이 장소에서 듣게 될 줄이야감회에 젖은 해린이 포크를 내려놓으려는 순간이었다테리어드의 입술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포크를 내려놓는 것조차 잊은 채로 테리어드의 노래를 들은 해린은 그제야 자신이 테리어드의 눈을 보고 벨의 눈과 닮았다고 생각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놀란 표정도 짓는군요해린 씨.”

놀란 표정 정도는 지을 수 있습니다그런데 테리어드 씨도 이 노래를 아는군요.”
그리운 곡이어서요.”

 

내게도 그렇다는 말을 노래를 부른 당사자인 테리어드 앞에서 하기에는 부끄럽다고 생각해서 삼킨 해린은 포크를 내려놓았다파란 장미를 닮은 푸른 눈동자로 언제나 해린을 위로하는 노래를 불러준 아름다운 여성의 머리카락을 밤의 바람이 간질였다해린은 노래만이 아니라 눈앞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테리어드 W. 매저즈에게도 매료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입술을 움직였다.

 

좋아하는 가수가 있었습니다첫 번째 콘서트 티켓팅에 실패해서 직접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보지 못 했지만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언제나 제게 힘이 되어줬어요.”

두 번째 콘서트는 안 열었나요?”

첫 번째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은퇴했거든요비록 직접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보지 못 했지만 그 가수가 지금도 행복하길 바랍니다.”

분명 행복할 거예요해린 씨 같은 팬이 있잖아요.”

테리어드 씨는요?”

내 행복을 묻는 이유는 해린 씨가 날 좋아하기 때문인가요?”

 

피할 방법이 없다피할 생각도 없었지만라고 솔직하게 대답한 해린은 테이블에 놓인 테리어드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 입술을 움직였다당신을 많이 좋아해요해린의 고백을 들은 테리어드는 말없이 일어난 뒤해린에게 잡힌 손을 뺐다거절의 답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고 표정을 고치는 해린의 앞에 테리어드의 손이 내밀어졌다.

 

춤추기에 좋은 곡이 들려와서요.”

당신의 춤 신청을 거절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어요테리어드 씨.”

다행이네요.”

 

앞으로도 계속 춤을 춰줄 파트너가 약해지는 사람이 나라는 건.

말을 마친 테리어드는 의자에서 일어나 자신의 앞에 선 해린을 보다 고개를 숙였다함께 마신 와인의 향과 함께 다가온 온기를 눈을 감고 받아들인 해린은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전할 날을 기다리며 테리어드를 안았다.

 

함께 미래로 걸어가게 된 두 사람을 축복하는 포근한 바람이 불었다봄을 품은 바람이었다.

 

 

*

티아해린 8주년 축하합니다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8주년이네요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AU로 포카포카한 티아해린을 써왔습니다.

8년이란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유님이랑 테리언니 제가 많이 좋아하고 사랑합니다~!uu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