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유인력은 사랑에 빠진 사람을 책임지지 않는다
반갑습니다. 라고 말하며 악수를 청한 손님은 악수가 끝나자 라세인이 지금 사용하는 이름을 입에 올렸다. 웨이드 카모플라쥬(Wade Camouflage). 위장이란 뜻을 가진 단어를 성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말도 안 되는 현실에서 의심이라는 구름을 걷어주는 것은 시간을 들여서 이 별, 지구에 만든 호텔 겸 레스토랑이었다. 뱀파이어 헌터 조직, 카펠라의 본부라는 진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이렇게 수고를 할 필요가 있냐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카펠라가 상대하는 뱀파이어―저택의 주민은 아무런 기반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수고를 해서 지구에 정착하는데 성공한 자들이었다.
마법이라는 빠르고 쉬운 방법을 버리고 선택한 방법 덕분에 시간이 들긴 했지만 이 호텔 겸 레스토랑을 캐내려는 시도는 없었다는 점을 볼 때는 성공적인 위장이었으나, 이 위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호텔 겸 레스토랑의 오너가 될 사람을 내세워야했다. 많은 사람들이 후보에 올랐으나 가장 합격점이 높았던 사람은 다른 세계에서도 헌터 조직의 보스를 하고 있는 라세인이었다. 순순히 받아들인 라세인에게 웨이드 카모플라쥬라는 가명과 이런저런 일들이 선물처럼 떠안겨졌다.
길어진 머리의 정리를 미룰 정도로 바쁠 때도 있었지만 떠안겨진 일들에 불만을 가진 적은 없었다. 이것은 맹약자로서 라세인이 해야 할 일의 일환이었으므로. 에르위니아에게 우직하게 굴지 말고 바쁠 때는 부하나 대리인에게 맡기라는 잔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많은 일들을 감당했던 라세인은,
-많은 일을 짊어지고 계신데 제때 쉬시며 일하시나요?
아인하르트의 말을 듣고 처음으로 자신을 돌아보았다. 많은 일들을 혼자서 감당했다가 무너지는 사람을 라세인은 많이 보았다. 아주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으나 자신이 걸어갈 긴 길을 위해 라세인은 일을 나눠서 하는 법을 익혔다. 처음에는 낯설었다. 하지만 변화에 적응한 라세인은 큰 도움을 준 아인하르트에게 줄 선물을 고르다 부하의 “이번 선물은 평소보다 더 신중하게 고르네요. 보스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줄 선물이에요?”라는 농담에 들고 있던 볼펜을 떨궜다.
자각해버린 마음은 금방 크기를 키웠다. 준비한 선물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줄 수 있을 때까지 아인하르트와의 만남을 미루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변화처럼 이 마음을 숨기는데 적응할 시간을 갖자고 결심하고 돌아가려던 순간에 만난 맹약자의 적이자 세계의 멸망을 바라는 분리된 자와의 전투가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면, 라세인은 고백을 포기했으리라. 하지만 결심은 바뀌었고 라세인은 혼란한 전투 중에도 무사히 지켜낸 선물을 전하며, 자신의 마음을 아인하르트에게 고백했다.
-그대가 많이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 그리고 가끔은 그대를 웃게 해줄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욕심이지만.
끝내 정리하지 못한 말을 마치고 꺼낸 좋아해. 라는 포장도, 낭만도 없는 라세인의 진심을 들은 아인하르트의 답은 쓰다듬이었다. 부드러운 쓰다듬이 끝난 직후, 아인하르트는 라세인을 끌어안았다. 자신을 끌어안는 이 행동이 아인하르트가 인간 세상에서 배운 가장 따뜻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 했던 라세인이었으나 거절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대가 아니라 아인하르트를 좋아한다는 말을 그녀의 애칭인 아인과 함께 반복해서 부르고 응석부리듯이 조금만 더 끌어안고 있어도 되냐는 말을 전한 그 날의 기억을 라세인은 웨이드 카모플라쥬의 가면을 버리고 자신으로 돌아오며 떠올렸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여유가 생겨서 웃을 수 있지만 한동안은 웃을 여유도 없었다. 일을 끝내고 아인하르트를 만나면서 지금의 일이 현실임을 자신의 모든 감각으로 확인한 후에야 받아들인 라세인은, 소중한 사람이 생긴 새로운 일상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었다. 무언가 엄청난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었으나 아인하르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따뜻해진 마음으로 소파에서 일어난 라세인은 스마트폰을 들었다. 평범한 스마트폰으로 보이지만 특수하게 제작된 물건이라 라세인이 허락한 사람 외에는 만질 수 없는 이 스마트폰의 갤러리에는, 얼마 전에 데이트를 하며 아인하르트와 찍은 사진 몇 장이 있었다.
“오늘 만나는데도 보고 싶다니.”
연인이 된 순간부터 예감했지만 자신의 사랑은 하늘이나 바다만큼 커지고 싶은 모양이다. 이렇게 커진 제 사랑을 보여줄 방법을 아직 모르는 별은 화면을 가득히 채운 연인의 사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연애하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이유를 알 것 같아.”
세계를 이동할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원거리 연애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물며 자신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튀려는 생각을 정리한 라세인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은 뒤, 걸음을 옮겼다.
*
사귀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인하르트는 잘 꾸미는 편이었다. 선호하는 복장으로 추측되는 폴라티와 긴 치마를 입고 회색 머리카락을 다양한 헤어스타일 중에 하나로 꾸미는 아인하르트는 정말 아름다웠다. 지금까지 읽은 다양한 책 속에 있는 문장들로 누군가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방법을 배워두지 않았던 과거를 다시금 후회하던 라세인은 표정을 고치며 안경 너머의 보석 같은 눈으로 자신을 담는 아인하르트와의 거리가 좁혀지길 기다렸다. 노래하지 않을 때도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는 아인하르트의 목소리가 라세인의 귀를 두드렸다.
“미안해요. 기다렸어요?”
“오래 기다리지 않았어. 방금 전에 왔거든.”
갈까? 라고 물으며 내밀어진 라세인의 손에 아인하르트가 손을 올렸다. 몇 번이나 잡아서 이전보다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이 손을 잡는 순간은 긴장하고 만다. 아프지 않게 잡고 싶은 마음과 이 손을 놓고 싶지 않은 욕심이 충돌해서 벌어지는 실수를 걱정한 긴장이었다. 하지만 그 긴장은 맞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아인하르트의 체온을 느끼면 마법처럼 사라졌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마법을 부리는 소중한 연인과 풍경을 눈에 담고 보폭을 맞춰서 걷던 라세인은 오늘의 목적지이자 데이트 장소인 도서관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그대의 마음에 드는 책이 많은 도서관이면 좋겠군.”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종류의 책을 구비하는 도서관이라고 들었으니 괜찮을 거예요.”
“다행이야. 그런데 난 이 도서관에 구비된 책들 중에 내 마음에 드는 책이 적어도 괜찮을 것 같아. 내게는…”
아인과 같이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니까. 라고 덧붙인 라세인은 자신의 얼굴이나 귀가 붉게 물들어있지 않길 바라며 아인하르트를 보았다. 아인하르트의 얼굴에 번진 작은 미소가 라세인의 눈을 채웠다. 세계를 지키는 길잡이별은 그 순간,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는 나쁜 생각을 하고 말았다.
방금까지 읽었던 책을 덮은 아인하르트가 조용히 일어났다. 의자를 빼내는 작은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라세인은 아인하르트가 일어나서 걸음을 옮길 때까지 책을 바라보다 아인하르트가 걸음을 옮긴 후에야 책에서 눈을 떼어냈다.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기는 했으나 장소는 도서관이었다. 책을 고른 뒤에는 책의 세계에 빠지는 것이 규칙인 장소에서 라세인은 책을 읽으면서도 가끔 규칙을 어기고 아인하르트를 보았다. 말을 걸지 않고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채우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아인하르트를 만나기 전에는 알지 못 했다.
알아버린 지금의 라세인은 자신이 더 이상 아인하르트가 없는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인정했다. 설령 마음을 고백하면서 생각했던 고통스러운 선택을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아인하르트를 놓지 못 하겠지. 그것이 당연해진 현실 속에서 아인하르트를 쫓던 라세인이 처음 책을 고르던 때, 높은 곳에 있었던 책을 보던 아인하르트를 떠올렸다. 낮은 곳의 책을 고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지만 만약 높은 곳의 책을 고르게 된다면 아인하르트를 도와주고 싶었던 라세인은 조심히 일어난 뒤, 아인하르트가 간 코너로 향했다. 그리고,
높은 책장에 꽂힌 책을 고르기 위해 아인하르트가 올라간 사다리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던 도서관의 손님이 건드렸다. 중심을 잃은 사다리에서 바닥에 무사히 착지한 아인하르트를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바닥으로 떨어지는 책들에게서 보호하기 위해 그녀를 안고 몸을 피했다. 타인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아서 건 마법에 의해 요란한 소리는 없어졌으나 문제는,
“……”
아인하르트를 안 다치게 하고 무사히 몸을 피하는 것에 집중하는 바람에 너무 가까워진 거리를 계산하지 못 했던 것이었다. 라세인이 아인하르트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아인하르트에게 닿았던 것은 고백했던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 커져버린 마음을 조절하지 못 해서 아인하르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몰래 지켜왔던 안전거리가 제로가 된 상황이 라세인의 머릿속에서 모든 말을 날렸다.
아름다운 연인을 말없이 보던 라세인은 제 얼굴과 귀가 뜨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붉어진 것이겠지. 생각을 할 정도로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아인하르트가 괜찮음을 확인하는 질문부터 던지기로 하고 입술을 움직이려던 라세인보다 아인하르트가 빨랐다. 손으로 라세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아인하르트가 물었다.
“괜찮아요, 라세인?”
책을 맞았다면 등이겠지만 등에서는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괜찮아. 아인은 괜찮나? 라고 물어본 라세인은 괜찮아요. 라고 대답하는 아인하르트와 거리를 벌리려다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고백하던 그 날은 자신의 표현이 엉망이었다면 오늘은 주변이 엉망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엉망인 상황에서도 언제나 아인하르트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모든 것을 품어주는 밤처럼. 혹은 찰나임에도 눈을 떼어낼 수 없는 새벽처럼.
길잡이별이라고 불리는 청년은 잡은 연인의 손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타인의 눈이 있는 장소라는 것을 생각해서 많은 것을 참았으나 애정만은 숨기지 못한 입맞춤이었다.
“더 있다가는 아인에게 내 억지를 들어달라고 욕심을 낼 것 같으니까 일어나지.”
“욕심도 참다가는 독이 될 수 있어요.”
“나를 생각해주는 아인의 다정함은 고맙지만 평소보다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핑계로 같이 있어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거든. 그 말은… 그대에게 가장 주고 싶은 것을 그대가 받아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 날에 하고 싶어.”
나는 준비를 해도 그 말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연습은 해둘게. 라고 중얼거리며 일어난 라세인은 아인하르트에게 손을 뻗었다. 아인하르트가 뻗어진 라세인의 손을 잡았다. 조금 망설이다가 아인하르트의 손을 놓은 라세인은 엉망이 된 주변을 정리했다. 아인하르트와 함께 정리한 덕분인지 주변은 금방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정리는 끝났군. 아인이 찾던 책은…”
찾던 책이 어디 있는지를 물어보려던 라세인을 아인하르트가 끌어안았다. 라세인은 자신을 끌어안은 아인하르트를 보다 아인하르트를 부르려던 입술을 닫은 뒤, 아인하르트를 끌어안고 그녀의 보석 같은 눈을 바라보았다.
“내 욕심은 독이 될 일이 없어, 아인. 언제나 내 욕심을 밖으로 끌어내는 그대가 곁에 있으니까.”
말을 마친 라세인은 고개를 숙여 아인하르트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댔다. 그리고 노래했다.
“I could kiss them all day if she'd let me”
아인하르트가 끌어낸 자신의 욕심을.
*
새벽에 르네님께 멋진 연성을 받고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이야기 드리고 쓴 랏땅이랑 아인입니다. 연애하는 중~! 이라는 설정으로 도서관 데이트 하는 두 사람을 써보았습니다.uu
최대한 소프트...하게 써보려고 노력했는데 소프트 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지도. 혹시 수정할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이야기 해주세요.
23년 3월 17일 >> 추가합니다. 오늘부터 공식으로 연애하게 되었습니다. 이 연성은 공식입니다.uu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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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유인력은 사랑에 빠진 사람을 책임지지 않는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2.I could kiss them all day if she'd let me : Bruno Mars - Just The Way You Are의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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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풀었던 르네님과 풀었던 썰이랑 이것저것 다 넣어본 연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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