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 없는 사랑
새하얀 꽃밭을 눈에 담은 순간, 반짝이던 네로의 눈을 아카르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자신이 말없이 네로를 바라보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 하던 아카르를 네로의 목소리가 현실로 불러들였다. 아카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누군가의 마음을 간질일 수 있다는 것은 언제 경험해도 신비했다. 아카르 르 메르바하의 세계에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신비가 사라진 적이 없었음에도.
변화가 빠른 지구라는 별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신비를 간직한 존재, 악마로 태어났기에 많은 일을 겪었던 네로의 손이 꽃으로 향했다. 새하얀 백합 한 송이를 망설임 없이 꺽은 네로는 손에 들린 백합을 바라보다 아카르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카르에게 줄게.”
“선물인가요, 그대?”
“응, 선물.”
네로는 선물을 받아줄 거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아카르가 자신의 선물을 거절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사실이긴 했다. 사막을 벗어나 세계를 알아가고 배우고 있는 이 작은 악마가 주는 모든 것을 아카르는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으니까. 네로가 준 선물이라는 순수한 이유도 있었지만, 네로가 주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다는 순수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아카르는 두 가지 이유를 전부 들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네로의 손가락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는 감각을 느낀 네로의 표정을 눈에 담지 못 한다는 사실은 아쉬웠으나, 자신들에게는 시간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에 아쉬움은 금방 사라졌다.
“고마워요, 네로.”
“아카르랑 어울리는 꽃이라고 생각했어. 이제 아카르가 꽃을 든 모습 보여줘.”
보고 싶어. 라고 말하는 네로의 얼굴에 엿보이기 시작한 기대라는 감정을 본 아카르는 웃으며 네로의 손에 들린 꽃을 건네받았다. 더 이상 꽃밭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도 아름다운 향기를 선물하는 이 새하얀 꽃, 백합에게 지구의 사람들은 순결과 변함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부여했다.
아카르는 네로에게 이 꽃의 꽃말을 알려준 적이 없었다. 이 꽃만이 아니라 다른 꽃도 마찬가지였다. 네로가 아직 꽃말에 대해서는 궁금하게 생각한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궁금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알려주지 않는 것이 옳을까.
아카르는 누군가를 체스말로 사용하거나 수하에게 지시를 내릴 때는 없던 망설임을 자신의 마음에 피워낸 네로의 손을 잡고 입술을 움직였다. 꽃에는 꽃말이 있어요, 그대. 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네로가 물었다.
“그 꽃에도 꽃말이 있어?”
“있어요. 꽃말이 없는 꽃이 드물죠. 이 꽃은 백합. 꽃말은 순결. 변함 없는 사랑이랍니다, 그대.”
“꽃말도 아카르에게 어울리네. 선물하길 잘 했어.”
네로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사막에서 피어나는 꽃조차 본 적이 없었을 네로가 이 꽃과 이 꽃말의 무엇을 보고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는지 아카르는 몰랐다. 아마 들어도 금방 긍정할 수는 없으리라. 그렇지만,
“춤출까요, 네로?”
“꽃밭에서?”
“꽃이 망가지는 게 걱정되나요, 그대?”
“아니. 아카르라면 금방 복구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
“다른 일을 하고 싶군요, 그대. 내 추측이 맞나요?”
응. 하고 긍정의 대답을 한 네로는 아카르의 손을 잡은 채로 꽃밭에 누웠다. 아카르는 이유를 물어보지 않고 네로의 옆에 누웠다. 어떠한 행동을 하기 전에는 자신에게조차 이유를 물었던 은의 대공이라 생각할 수 없는 행동이었으나, 상대는 아카르의 완벽을 아무렇지 않게 무너뜨리는 유일한 존재, 네로였다.
무너진 완벽만큼 엉망이 되었음에도 꽃들은 향기를 내뿜었다. 자신들을 고장내버린 대가로 이 짙은 향기에 취하라는 것처럼. 꽃들이 바라더라도 꽃들의 향기에는 취할 수 없는 은발의 마족은 자신을 유일하게 취하게 할 수 있는 작은 악마를 보았다.
“예뻐?”
주어가 없었다. 그래서 주어가 꽃인지 네로인지 알 수 없었음에도 아카르는 예뻐요. 라고 대답하며 네로의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떨어뜨렸다. 입맞춤을 받은 네로는 간지러워, 아카르. 라고 말했지만 아카르의 입맞춤을 거절하지 않았다. 입맞춤이 간지럽기는 하지만 거절할 정도로 싫지는 않다는 뜻이다.
만족스럽게 웃는 아카르를 본 네로가 다시 입술을 열었다.
“꽃말이라는 걸 들은 순간부터 나란히 누워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어떤 꽃말 때문인지 궁금하네요, 그대.”
“변함 없는 사랑. 나는 변함없다는 게 뭔지 몰라. 하지만 모르는데도 그 말은 아카르랑은 어울린다고 생각해.”
“고마워요. 하지만 내게도 변함은 있어요, 그대. 그리고 그 변함은 네로가 안겨주죠.”
“내가?”
“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증명하기도 어렵지만 나는 변하고 있어요.”
네로를 만나서 아주 많이 변했답니다.
백합 향에 둘러싸인 채로 내뱉은 솔직한 마음을 들은 네로가 웃으며 입술을 움직였다.
“나도 아카르를 만나서 변하고 있어.”
어떻게 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라고 덧붙인 네로가 잡았던 아카르의 손을 놓았다. 그 직후, 네로의 두 손이 아카르의 두 뺨을 감쌌다. 부드러운 온기가 아카르의 입술을 덮었다. 아카르는 이번에도 자신에게 먼저 다가온 사랑스러운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사랑스러운 온기에 취해서 모든 것을 망각하고 싶은 달콤한 오후였다.
*
생일 축하해! 오늘도 랑이사랑앤캐들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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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 주는 건 앤오님(랑님)이랑 푼 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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