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루드베키아 앞에서

<span class="sv_member">에메트</span>
에메트 @acidcatsle
2026-02-07 18:34
Nickelback - Far Away(Boyce Avenue 커버)


죽음의 그림자를 이겨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오래 전에 포기해버린 자식이기 때문인지 테미르디케의 부모는 테미르디케가 하는 일에 관여하지 못 했다. 루드베키아의 후계자가 되었을 때도 자신의 일에 관여하지 못 하는 부모를 보면서 테미르디케는 나스카를 떠올렸다. 만나지 못 했던 시간이 가족들보다 짧기 때문인지 나스카는 부모와 다르게 테미르디케가 하는 일에 관여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디케.”

애칭을 부르는 목소리가 어제 만났다가 헤어진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귀하가 가족보다 더 가족처럼 느껴져. 그 말을 조용히 삼킨 테미르디케는 자신보다 작아진 소꿉친구를 눈에 담았다. 5살 연상이라 어른이 되는 것도 테미르디케보다 빨랐으나 키는 추월당한 나스카의 손이 테미르디케의 머리카락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피했을 손길을 얌전히 받아들인 테미르디케는 나스카가 어린 시절처럼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빗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스카를 불렀다.

“나스.”
“손 떼어내야 해? 못 만난 사이에 비싸졌어, 디케.”
“귀하라면 계속 해도 돼.”
“흥이 깨졌으니 그만할래. 그런데 비싸졌다는 말은 부정 안 하네.”
“사실이니까. 여는 나스랑 못 만난 사이에 사실을 긍정하는 법을 배웠거든.”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싸움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삶을 살겠지만 테미르디케의 몸값은, 내일 나스카를 만나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던 어린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졌다. 자신의 말을 긍정하라는 뜻을 담아서 얄밉게 웃는 테미르디케를 빤히 바라보던 나스카는 오늘도 할 일을 훌륭히 수행한 수정구를 천으로 닦으며 입술을 움직였다.

“씨앗이 없으면 꽃은 피울 수 없어, 디케.”

나스카는 반쪽자리지만 마녀였고 그녀의 능력은 예언이었다. 지금 그녀가 입술을 움직여서 꺼낸 말이 뜬금없이 내뱉은 가벼운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챈 테미르디케는. 루드베키아의 후계자가 되면서 배운 다양한 교육 덕분에 유지되는 표정에 안도하며 나스카의 말에 동요하기 시작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나스의 말이 맞아. 씨앗이 없으면 꽃은 피울 수 없어.”

과정이 있어야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말이야.
동요하는 마음을 숨기고 테미르디케가 내어놓은 해석에 돌아온 나스카의 반응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쓰러질 것처럼 피곤하니 이만 갈게.”라는 작별 선언이었다. 짐을 정리하는 나스카를 도와주기 위해 뻗어진 테미르디케의 손을 나스카는 어린 시절처럼 가볍게 밀었다. 억지로 도와주고 싶은 충동을 누른 테미르디케는 정리를 끝내고 멀어지는 나스카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이 한 해석을 생각했다.

-과정이 있어야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테미르디케 아일라 루드베키아는 변했다. 그럴만한 과정을 거친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현재의 테미르디케였다. 하지만 테미르디케도 변화시키지 못한 것은 있었다. 그것을,

“귀하에게 알려주고 싶네, 나스.”

오늘처럼 작별을 핑계로 도망치지 못 하게 끌어안고 붙잡은 채로 알려주고 싶었다. 생각만 했을 뿐인데도 후계자가 되기 위해 받은 교육에 사용한 시간과 비용을 무색하게 만들며 겉으로 드러나려는 커다란 욕망을 누른 테미르디케는 걸음을 옮겼다. 나스카와 다시 만날 수 있는 내일이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

*

“디케.”

다시 만날 수 있는 내일이 빨리 오기를 바랐던 시간들이 꿈처럼 변화시키는 목소리가 귀를 두드렸다. 사랑하는 연인이자 누구보다 자신을 솔직하게 만드는 나스카의 목소리였다. 테미르디케는 눈을 떠서 자신을 부르는 나스카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자신의 옷을 입고 있는 나스카의 모습이 테미르디케의 보라색 눈을 채웠다.

“유혹하는 거지? 어젯밤으로는 부족했다고?”
“아침에도 했잖아.”

시간을 정정하는 나스카의 팔을 잡아당긴 테미르디케는 제 품에 순순히 안기게 된 나스카의 뺨에 입을 맞췄다. 아침까지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는데도 테미르디케보다 먼저 일어난 나스카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 함께 보낸 시간의 여운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 여운을 강렬한 쾌락으로 바꿔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게으름을 피우면 오늘 나스카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것’을 보여줄 수 없게 된다. 곤란하지. 라고 입 속으로 중얼거린 테미르디케는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나스카가 선물한 키스를 받으며 눈을 감았다.

간단한 식사를 함께 한 두 사람은 준비를 마치고 방을 나왔다. 어디로 가, 디케? 라고 물으며 손을 조금 더 강하게 잡는 나스카를 눈에 담은 테미르디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가까워. 이 저택의 정원이거든.”
“지금은 겨울이잖아.”
“여는 겨울이라는 가혹한 계절조차 이길 수 있는 멋지고 유능한 마법사거든.”
“무리해서 작아지지 않으면 그 말을 인정할게.”

긍정해주지 않는 사랑스러운 나스카의 손을 놓고 나스카를 공주님처럼 안아든 테미르디케는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목적지에 도착한 뒤, 여전히 공주님처럼 안겨있는 상태로 테미르디케가 만든 ‘특별한 풍경’을 두 눈에 담는 나스카를 보았다. 천천히 테미르디케에게서 내려온 나스카가 계절을 잊어버리고 피어난 샛노란 꽃에 손을 뻗었다. 부드러운 꽃잎이 나스카의 손을 간지럽히며 흔들렸다.

“이 꽃이 여의 선물이야.”
“계절을 무시하고 꽃을 피워 내다니.”
“나스에게 보여주고 싶었거든. 본래의 계절에도 예쁘지만 귀하와 여가 같이 보는 순간에는 더 예쁠 것 같았어. 괜한 짓인가? 역시?”
“칭찬해주고 싶은 짓이야. 무리를 안 했다면.”
“정말로 안 했으니까 칭찬해.”

여는 나스의 칭찬을 무척 좋아하거든 라고 말하는 테미르디케는 자신의 손을 붙잡은 나스카가 이끄는 대로 걸었다. 마법으로 피어난 꽃들 앞에 서게 된 테미르디케는 꽃들 중 하나를 꺾어서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 나스카를 보았다.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춘 나스카는 자신이 완성한 꽃반지 하나를 테미르디케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웠다. 손가락에 끼워진 꽃반지를 바라보던 테미르디케도 꽃을 하나 꺾었다. 그리고 조금 빠르게 꽃반지를 완성한 그는 자신이 만든 꽃반지를 나스카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웠다.

“다음엔 진짜 반지로 하자.”

테미르디케의 말을 들은 나스카의 손이 멈췄다. 많은 것을 함께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 다 알았다. 나스카의 시간은 짧았다. 테미르디케가 붙잡으려고 해도 갑자기 끝나버릴 수 있는 것이 그녀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빨리 솔직해지지 못 했다는 사실을 후회했으나 끝까지 서로의 곁에서 함께하기로 한 테미르디케와 나스카가 서로의 손을 단단히 얽었다.

“내 손가락 사이즈는 알아?”
“우리는 반지를 고르러 같이 갈 거야. 그러니까 귀하의 손가락 사이즈는 알 필요가 없지.”
“모를 때는 솔직하게 말하는 용기가…”
“이 꽃반지를 귀하의 손가락에 딱 맞는 사이즈로 만들 수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알려줄래, 나스?”

얄밉게 웃으며 애타는 입맞춤을 선물하고 멀어지는 테미르디케의 목을 다급히 끌어안은 나스카가 테미르디케를 바라보며 말했다. 멀어지지 마. 곁에 있어. 노을보다 더욱 강렬히 타오르는 나스카의 사랑을 느끼며 테미르디케는 입술을 움직였다.

“언제나 귀하의 곁에 있을 거야. 여는―”

영혼까지 나스의 것이니까.
이번 생에도, 다음 생에도, 그 다음 생에도 자신의 영혼을 소유할 반쪽자리 마녀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인 뱀은 두 팔로 반쪽자리 마녀를 끌어안은 뒤, 고개를 숙였다. 계절을 잊고 피어난 샛노란 루드베키아 꽃향기에 감싸인 연인이 서로의 입술을 겹쳤다.


*
디케나스 2주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시간이 휘리리릭 흘러서 2주년이 되었네요. 이 빠른 시간은 쏘님이 있기에 쌓을 수 있었던거 같아요. 함께 쌓아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2주년 기념일 연성은 오피셜로 가져와봤습니다. 영혼까지 나스의 것이라는 이 마법사를 잘 받아주세요.<<2년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쏘님이랑 나스 많이 좋아해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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