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없이 전부
긴 시간을 살면서 온갖 일을 다 겪은 라세인이었지만 몸이 작아지는 일만큼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평소보다 낮은 시야, 사용에 무리가 없는 능력과 다르게 금방 바닥나는 체력 같은 핸디캡도 적응이 힘든 이유였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작아진 모습 때문에 따라오는 이런저런 제약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소통을 할 수 있는 나이―10대 초중반 정도―인데다 적의 음모로 어려진 것이 아니라 돌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애를 쓸 필요가 없었다.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맹약자는 작아진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신려를 사용할 때마다 그를 사랑해서 힘을 빌려주는 신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권능이 세계에 나타나는 것으로 만족했으나, 몇몇 신들은 만족하지 못 하고 이런 장난을 쳤다. 그가 가는 곳마다 비가 오게 하거나 잠을 자지 못 하게 하거나. 아무 것도 먹지 못 하고 자기만 한 적도 있었다. 그때는 정말 곤란했지. 라고 중얼거리며 쓴 웃음을 지은 그때였다.
“라세인?”
어린아이처럼 굴면 귀를 두드리는 낯익은 목소리의 주인에게 이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라세인 데 루베르니겔은 그 정도로 뻔뻔하지 못 했다. 그리고 이 목소리의 주인―아인하르트에게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맹약자로 살고 있으니 심하게 다친 언젠가는 아프지 않다는 하얀 거짓말을 할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은 라세인의 푸른 눈이 아인하르트를 보았다.
“금방 알아보는군.”
“알아보면 곤란한 상황인가요?”
“아니. 알아보지 못 하는 쪽이 곤란한 상황이지.”
실제로 라세인의 피보호자인 아이렌은 어려진 라세인을 금방 알아보지 못 했다. 알아본 뒤에는 귀엽다는 말을 라세인이 그만해달라고 말할 때까지 입에 달고 있었지만. 평소에는 자신을 올려다봤던 아인하르트를 올려다보게 된 라세인은 그녀가 등에 맨 가방을 발견했다. 옷차림 역시 언젠가 보았던 것처럼 평상복보다는 어딘가에 다녀왔다고 말했을 때의 옷차림에 가까웠다. 아인하르트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면 붙잡지 않고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한 그때.
“일행은 없나요?”
“지금은 없지. 하지만 대화를 해주는 그대에게 차를 마셔달라거나 같이 식사를 해달라고 말하면 그대가 일행이 되겠군.”
조금씩이지만 아인하르트를 만나서 변해가고 있는 마법사이자 마녀가 들으면 “조금 더 그 모습으로 있게 해주고 싶네요, 라세인.”이라고 말하며 지팡이를 찾을 대답이었다. 하지만 지팡이를 찾을 이브를 바로 옆에서 보더라도 라세인은 아인하르트에게 지금과 같은 대답을 던졌을 것이다. 어려지기는 했으나 아인하르트와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거짓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일행이 되죠, 라세인.”
수락한 아인하르트가 손을 내민다. 잡으려던 라세인은 잠깐만. 이라고 말한 뒤, 아인하르트를 보았다. 수락해준 것이 고마울 정도로 직접적이지 못한 제안이었다. 바로 고쳐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같이 차를 마셔줘, 아인. 식사도 해주면 좋겠지만 그대가 시간이 없다면 그건 나중으로 미뤄도 좋아. 그리고…”
미안해. 다음부터 그대와 무언가가 하고 싶을 때는 직접적으로 제안할게.
이번처럼 돌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덧붙이며 라세인은 아인하르트의 손을 잡았다.
*
차를 마시고 식사까지 함께 한 직후, 예상보다 빠르게 본래의 몸으로 돌아온 라세인은 다음을 기약하는 작별 인사를 하려다 아이렌이 들려준 정보를 기억하고 아인하르트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내어달라고 부탁했다. 이번 제안은 아까와는 다르게 직접적이었다. 아까 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지인들이 보았다면 단시간에 레벨업을 했다고 놀렸을 테지. 그 놀림을 받아도 싸다고 생각하며 라세인은 제 부탁을 수락한 아인하르트의 손을 잡고 호수로 걸어갔다. 작은 조각배를 빌린 그는 아인하르트를 먼저 태운 배에 조심스럽게 올라탄 뒤, 노를 저었다.
배가 붉은 노을과 다가오는 저녁을 품은 밤하늘을 거울처럼 비추는 호수의 중앙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담아서 띄운 등불들이 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던 라세인은 시선을 돌렸다. 배에 앉아서 그 풍경을 구경하는 아인하르트의 모습이 푸른 눈을 가득히 채웠다. 라세인이 이 별에 오기 오래 전부터 살아서 다양한 곳을 여행한 아인하르트는 언젠가 이런 풍경을 보았을까. 보던 보지 않았던 그녀에게 오늘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기를 바라며 라세인은 입술을 움직였다. 움직이는 입술 사이로 새어나가는 반주 없는 노래를 들은 아인하르트의 보석처럼 아름다운 눈이 라세인을 담았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풍등을 보지 않고 라세인을 보던 아인하르트는 노래가 끝난 후에야 말했다.
“고마워요.”
“내가 해야 할 말이야. 많은 일을 함께 해줘서 고마워, 아인.”
호수를 떠나기 위해 노를 저은 라세인은 아인하르트가 호수의 풍경이나 등불을 조금 더 볼 수 있도록 최대한 천천히 노를 저었다. 자신이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배려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배에서 내리는 순간, 그는 깨달았다. 방금 자신이 한 것은 배려였으나 동시에 둘만의 순간이 끝나는 것이 싫었던 자신의 욕심이었음을.
제 욕심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한 길잡이별은 배에서 먼저 내린 뒤, 아직 배에 있는 아인하르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을 잡고 배에서 내린 아인하르트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가 떼어낸 뒤, 아인하르트를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오늘이,
“다음에도 함께 해줬으면 좋겠어.”
아인하르트에게도 욕심을 내고 싶었던 날이길 바라며.
*
*
르네님 생일 축하드려요! 생일선물로 라세인을 가져와봤습니다.uu
수정할 부분 있으시면 언제든 이야기 해주시고 오늘만이 아니라 언제나 즐거운 일 가득하시길 바라요~!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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