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er blossom
낮이 길고 태양이 눈부신 여름은 아쉐리카가 사는 세계의 유일한 계절이었다. 과거에는 봄, 가을, 겨울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었다. 없어진 계절의 숫자만큼 많은 것들이 사라졌으나, 사라지지 않기 위해 적응하고 변화한 것들도 있었다. 가장 많이 적응하고 변화한 것은 인간이었다. 끈질기게 살아가고 살아가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자들. 여전히 살아가는 인간은 무모한 일에 도전하고 있었다.
인간의 도전을 좋아해서 자신의 책장을 인간의 도전과 관련된 것들로 빼곡하게 채운 아쉐리카였지만 그런 아쉐리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이번 도전은 무모했다. 없어진 계절의 부활이라니. 봄과 가을과 겨울을 없앤 것은 계절의 나무를 다른 나라를 굴복시키기 위해 베어버리고 약을 부은 인간이었다. 죽어버린 나무를 어떻게 살리려고? 입에 맴도는 질문을 삼킨 아쉐리카는 황제의 명을 받고 집에 온 언니, 카밀라가 던져놓고 간 지도와 이동마법이 새겨진 보석을 보았다. 한 개. 일을 제대로 해결할 때까지 돌아오지 말란 뜻이 보석의 개수에 담겨있었다.
“말로 하라고. 말로.”
어깨를 으쓱한 아쉐리카는 이 저택의 관리도 맡겠다고 했던 카밀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잔뜩 쓴 편지를 남기고 가방에 옷을 챙겼다. 그렇게 많은 옷은 필요 없었다. 일을 제대로 해결할 때까지 돌아오지 말라는 것은 이제부터 가야하는 도시를 집처럼 여기라는 뜻이니까. 도시보다는 외딴 섬에 가까울 목적지에서 이제부터 만나게 될 연구자가 자신을 즐겁게 해줄 사람이길 기다리며 아쉐리카는 보석에 담긴 이동마법을 사용했다. 사용이 끝난 보석이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깨어진 직후, 아쉐리카의 몸은 외딴 섬… 아니. 탑 앞에 있었다.
시간의 흐름이 녹아있긴 했지만 관리를 했는지 깔끔한 문을 두드리려는 아쉐리카의 귀를,
“손님이신가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두드렸다. 봄의. 그래, 동화 속에서 묘사한 다정하고 포근한 봄이 목소리를 지녔다면 분명 이런 목소리일 테지. 목소리의 주인, 운하를 호박색 눈으로 본 아쉐리카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가져온 양피지를 내밀었다.
“아쉐리카 D 브론테. 이 탑에서 살게 된 관리자야. 당신은 마법사인가?”
“이 탑의 주인인 여운하라고 합니다.”
탑을 소유한 마법사는 상급 마법사였다. 왕성에서 일하는 일이 많은데 이런 변경에서 일하다니. 심지어 이 탑은 마을과도 거리가 있었다. 이동마법이 새겨진 보석이 있으면 이동은 금방이겠지만 변경에 있는 탑을 소유한 마법사에게 그만큼의 재산이 있을까? 궁금증을 가득 품게 된 아쉐리카의 앞에 있는 탑의 문을 조용히 연 운하가 말했다.
“잘 부탁해요, 쉐리 씨.”
나도 잘 부탁해. 라고 대답한 후, 아쉐리카는 운하를 따라 탑으로 들어갔다. 여름이란 계절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탑의 서늘한 공기가 낯선 방문자인 아쉐리카를 맞았다.
*
탑의 유일한 마법사인 운하가 할 역할은 나눠받은 계절의 나무의 가지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었고, 아쉐리카가 할 역할은 정해진 기간 동안 계절의 나무의 가지에 꽃을 피우는 연구가 잘 진행되는지를 감독하는 관리자였다. 원래 변경의 탑에는 관리자까지 파견하지 않았으나 위에 계신 분들께서는 이 무모한 연구의 성공을 바랐다. 가장 성공에 가까운 결과를 도출한 마법사가 운하였다. 하지만 변경의 탑에 많은 사람을 보낼 수 없었던 위에 계신 분들이 엄선하고 엄선한 끝에―아쉐리카의 눈에는 시늉만 한 것으로 보였지만― 보낸 관리자가 아쉐리카였다.
돈도 같이 보내기는 했지만 돈과 관리자 이상의 지원은 받지 못한 이 탑에 카밀라가 작게나마 기대를 품었다는 사실이 아쉐리카를 움직인 원동력이었다. 카밀라의 입에서 여운하라는 마법사의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여름에 나는 싹이랑은 조금 틀리네. 연약해보여.”
“무척 연약해서 여름의 바람과는 손조차 맞잡을 수 없죠.”
“마법사 아니야?”
“마법사에요.”
“말을 꼭 시처럼 해서.”
처음 듣는 칭찬이지만 감사하다고 말하며 웃는 운하와 함께 연구실 밖으로 나온 아쉐리카는 자신이 묵을 방과 탑의 다른 방들을 안내 받았다. 탑의 구조를 머릿속에 간단하게 그릴 수 있게 된 아쉐리카가 이 탑에서 혼자 생활하는 거냐고 묻자 운하는 맞아요. 라고 긍정했다. 마법사는 아니었지만 탑에서 생활하는 마법사들 전부가 탑의 주인이 되는 독특한 형태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던 아쉐리카가 운하를 보았다.
“난 마법사는 아니지만 이 탑에 있는 동안, 당신이 알려주는 규칙은 지킬 거야. 그러니까 내가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면 알려줘.”
“편히 생활하세요. 그게 규칙이에요, 쉐리 씨.”
“내가 탑의 중요한 자료를 가지고 도망갈 수도 있는데?”
“밖에 나가면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어서 중요한 자료에는 마법을 걸어뒀어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사라진 봄처럼 따스하긴 했지만 그 따스함은 물렁함과는 달랐다.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이 지킬 것이 무엇인지 아는 이 마법사에게 호감을 품은 아쉐리카는 자신이 품은 호감이 점점 커져나갈 미래를 기대하며 운하의 앞에 섰다. 그리고 운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해. 그리고 만약 함께 밖에 나갔을 때, 당신이 물건을 잃어버린다면 내가 같이 찾아줄게.”
“나도 잘 부탁해요. 그리고 물건을 찾는 일은 힘드니까 마음만 받을게요.”
부드럽게 거절한 운하가 피곤할 테니 쉬세요. 라고 말하며 몸을 돌렸다. 아쉐리카는 탑을 내려가는 운하의 뒷모습을 눈에 담다가 그의 뒷모습이 사라진 후에야 방으로 들어갔다. 푹신한 침대가 이제부터 자신의 주인이 될 아쉐리카를 반겼다.
*
편히 생활하는 것이 규칙이라고 한 운하와의 생활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같이 식사를 만들고 식사를 끝내면 같이 정리하는데 익숙해진 두 사람은 가끔 함께 차를 마셨다. 여름 꽃을 사용한 차였다. 아쉐리카가 끓일 때는 진한 맛이 나는 차는 운하가 끓일 때는 잔잔한 맛이 났다. 잔잔한 맛도 제법 마음에 들어서 차 끓이는 법을 묻자 운하는 흔쾌히 차 끓이는 법을 알려주었다. 알려주는 설명에 사용한 말도 어쩐지 시 같아서 과거에 시인 아니었냐고 묻자 운하는 웃으면서 자신에게 그런 칭찬을 하는 것은 아쉐리카 뿐이라고 했다.
차를 잔잔한 맛으로 끓이게 되었을 때, 아쉐리카는 자신이 운하에게 그런 칭찬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면 하는 욕심을 자각했으나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아직은 드러낼 때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 평온함에 취해있고 싶었다. 저 연약한 싹이 조금이라도 튼튼해지거나 꽃이 피면 평온함도 사라지겠지만.
“다 끝났다.”
오늘의 보고서를 완성하고 기지개를 켠 아쉐리카는 침대에 눕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방을 나왔다. 보고서는 마을에 갈 때마다 보내고 있으니 주말에 운하와 함께 마을에 방문하면 보낼 수 있으리라. 마을에 방문했다가 정말로 운하와 함께 운하가 잃어버린 물건을 찾았던 기억을 떠올리고 웃던 아쉐리카는 고개를 들어 옥상을 보았다. 침대에 누워서 잔다는 선택지를 걷어차고 나온 이상, 방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은 아쉐리카의 성격과 맞지 않았다.
옥상에 도착한 아쉐리카는 탑의 서늘한 바람과 다른 여름의 바람을 맞다가 낯익은 소리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예상대로 운하가 있었다. 그리고 낯익은 소리는 그의 손에 들린 연필과 종이에서 나고 있었다. 그림. 없어진 계절의 다정함을 가진 이 마법사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취미가 있었다. 운하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로 한 아쉐리카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내려가기로 했다. 그러나,
“쉐리 씨, 어서 와요.”
마법사는 자신을 방해한 사람을 이렇게 다정하게 맞아줬다. 이번만이 아니라 저번에도 그랬다. 어째서 그렇게 다정해? 입 안에서 맴도는 말을 삼키고 운하의 곁으로 다가간 아쉐리카는 운하의 곁에 앉았다.
“내가 방해한 것 같은데.”
“쉐리 씨는 이 탑의 주민이잖아요. 방해가 아니니 또 한 명의 주민인 내가 반갑게 맞아야죠.”
“상냥한 주민이네, 운하는.”
“쉐리 씨에게만 상냥한 걸지도 모르죠.”
웃으며 하는 말이 꼭 오늘 마신 차 같았다. 자신이 끓인 잔잔한 맛의 차. 자신이 이 탑에 온 이유와 운하가 이 탑에서 하는 일을 잠시 잊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달콤한 감정이 아쉐리카의 마음에서 넘실거렸다. 흘러넘치기 직전인 이 감정이 피워낸 사랑이라는 이름의 꽃을 전할 시기였다. 하지만―
“영광이야. 그리고 나도 여운하에게만 상냥해.”
운하가 연구하는 새싹에 꽃봉오리가 맺혀있었다. 꽃이 피고 봄이 오면. 자신이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던 그 도전이 이 마법사에 의해 성공한다면.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에 자신의 감정을 전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아쉐리카는 하늘을 보았다. 수많은 별이 반짝이는 여름의 하늘이다. 수없이 보아온 그 하늘을 종이로 선택한 아쉐리카는 자신이 선택한 종이에 가을의 하늘과 겨울의 하늘을 그리다 마지막으로 봄의 하늘을 그렸다. 푸른색의 포근한 하늘.
“당신이 피운 꽃으로 정말로 봄이 오면 말이야. 같이 꽃을 보러 갈까?”
운하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꽃을 봐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포근한 꽃을 우리 둘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포근한 꽃이 어떤 색인지 어떤 형태인지 모르면서 아쉐리카는 그래. 라고 대답하며, 여름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자신의 세계에 여름이 끝나고 새로운 계절이 오기를 소망했다.
여름의 꽃들과 함께 춤추는 별들의 속삭임을 들으며.
*
운하쉐리 11주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하합니다~!
11주년 연성은 여름꽃이 생각나서 여름과 꽃과 관련된 에유로 짜잔하고 가져왔어. 비록 현실의 날씨는 꽃이 말라버릴 거 같이 덥지만 운하쉐리가 있는 곳은 괜찮겠지.
11주년이란 긴 시간 함께 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세하랑 운하오빠 내가 많이 좋아해. 사랑해~
이틀만 지나면 8월이구나. 8월에도 행복한 일이 세하에게 가득하길 바라. 그리고 건강해! 와라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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