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03 조각글(혜아도연)
누군가와 함께 자고 눈을 뜨는 것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집에서는 가끔, 피리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 시절에 잠깐씩 귀로 들려왔던 연주와 비슷하면서 다른 연주에 홀린 것처럼 걸음을 옮긴 가혜의 걸음이 멈췄다. 봄의 색을 벗고 여름의 색으로 물든 정원에 긴 머리를 높이 묶은 도연이 있었다. 입술에서 떼어낸 피리를 잠시 바라보던 도연이 가혜를 발견하고 웃었다. 웃음이 도연이 한 행동의 전부였다. 이후에 어떻게 행동할지는 가혜의 선택에 맡기는 것처럼.
언제든 잡힐 거리에 있는데도 쉽게 잡혀주지 않는다. 이래서 바람을 닮았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멈췄던 걸음을 옮긴 가혜는 피리를 집어넣은 도연의 앞에 섰다. 정원보다 더욱 진한 여름을 품은 도연의 눈과 입술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일찍 일어났군. 오늘은 외출할 일이 없어서 더 자도 괜찮소만.”
“배려는 고맙지만 다 잤어. 연주 중이었던 거 같은데 내가…”
“남편인 내게 부인인 그대가 요구하지 못할 일은 없지.”
연주를 방해하는 일도 부인인 가혜라면 해도 된다는 소리다. 상상한 적이 없는 배려에 얼굴이 붉어진 가혜의 머리카락을 도연의 손이 부드럽게 매만졌다. 부부의 얼굴이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다. 어젯밤에도 같은 방에 있었지만 아무 일이 없었던 계약으로 맺어진 부부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더 가까워지지 않고 언제나의 거리로 돌아가려는 도연의 옷깃을 가혜가 두 손으로 잡았다.
“내가 입 맞춰달라고 요구하면 그것도 받아주려고?”
“정말로 바란다면 하겠소. 정말로 바라시오, 가혜?”
농담이라고 말하고 물러나는 것이 이 상황을 해결할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았으나 가혜는 그 방법을 따르지 않았다. 가혜는 입술을 움직여 어느 때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도연에게만 들릴 크기로 속삭였다. 가혜가 속삭이는 말을 들은 도연이 부드럽게 매만지던 가혜의 머리카락에 손을 넣었다. 얼굴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입술과 입술이 닿았다. 눈을 감은 가혜는 제 몸이 도연의 팔에 가둬지는 것을 느끼며 인정했다. 자신은,
바람을 닮은 이 사람을 사랑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로 붙잡아 소유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버릴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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