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나비
1.
세상이 시시하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세상 사람들이 동물 머리와 인간의 몸통을 가진 기괴한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 리딜 콘스탄틴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다 한숨을 쉬었다. 어느 병원에 가도 의사들은 그를 정상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까지 여우 머리와 인간의 몸통을 가진 기괴한 모습으로 보인다면 의사들이 내린 정상이라는 판단은 틀린 것이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성공을 일찍 손에 움켜쥐는 바람에 세상이 시시해진 청년은 혼자 쓰기에는 커다란 침대에 누웠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머리는 리딜의 마음과 다르게 휴식을 강하게 원했다. 하기야 방금 거울로 자신의 모습마저 기괴하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걸 확인한 상황이다.
“병원을 옮길까.”
중얼거리며 리딜은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세상 사람들과 자신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보이길 소망하며.
2.
일주일이 흐르자 리딜은 자신의 모습이 처음으로 기괴하게 보였던 날에 바랐던 소망을 버렸다. 세상 사람들과 자신이 기괴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을 고칠 방법이 없다면 적응해야한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기괴한 모습으로 보였던 때에 깨달은 리딜의 적응은 빨랐다. 비록 거울이 아니라 사진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해야한다는 점이 불편했지만 그 점도 곧 적응되리라.
또 다시 정상이라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서 병원에 가거나 가던 병원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을 버린 리딜은 직원들 사이에서 좋은 평판을 듣고 있는 새로 오픈한 카페의 문을 열었다. 딸랑이란 맑은 소리와 함께 열린 카페 내부로 들어온 리딜은 기괴한 모습의 사람들이 줄을 선 카운터로 향하다 걸음을 멈췄다.
기괴한 모습의 사람들 사이에 기괴하지 않은 모습을 한 청년이 있었다. 깔끔하게 묶은 은색 생머리가 흔들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리딜은 음료를 주문하기 위한 줄에 합류했다. 사람들이 제 몫의 음료를 들고 떠나가며 청년과의 거리가 좁혀질 때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정말로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보이는 걸까? 내가 사람을 너무 보고 싶어서 착각한 게 아닐까? 수많은 생각은 앞의 사람이 사라지고 마침내 제 차례가 되어서야 멈췄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주문을 한 리딜을 왼쪽 귀에 나비 귀걸이를 한 은색 생머리의 청년, 벨라가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리딜이 본 카페의 직원들과 다르게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다. 다른 주문은 없으신가요? 라고 묻는 벨라의 목소리에 네. 라고 대답하고 카드를 건넨 리딜은 결제를 마친 카드를 받고 조금 기다리자 주문한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다시 벨라를 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누르며 커피를 받은 리딜은 빨대를 입에 물고 카페 밖으로 나왔다.
지금까지 마신 어떤 아메리카노보다 맛있는 커피였지만 그 맛보다 벨라가 더 신경 쓰였다. 트라움(Traum). 독일어로 꿈이라는 이름을 가진 카페의 이름을 눈에 담으며 리딜은 결심했다. 앞으로 한동안은 이 곳에만 오기로.
3.
하이네 벨라크루즈. 카페가 사람으로 붐비지 않는 시간에 끈질긴 질문을 통해 듣게 된 벨라의 이름을 리딜은 자연스럽게 불렀다.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을 부르는 듯한 자연스러움에 벨라가 한숨을 쉬었지만 리딜은 뻔뻔했기에 메뉴를 많이 시키는 것으로 대응했다. 성공이 그에게 안겨준 돈 덕분에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소식가라 어떤 메뉴는 카페에서 먹지 못 하고 포장해야했지만 평범하게 보이는 벨라를 볼 수 있다면 이런 불편은 감수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시 평범하게 볼 수 있다는 희망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 하는 벨라가 오늘도 카페에 방문한 리딜을 보았다.
“아메리카노 한 잔. 햄버거는 포장이시죠?”
“아직 안 말했는데 벌써 아네요. 벨라한테 내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는지는 몰랐어요.”
“이 시간에 당신이 늘 주문한 메뉴니까요.”
다른 메뉴를 추가로 주문하려던 생각을 버린 리딜은 오늘도 벨라의 왼쪽 귀에서 빛나는 나비 귀걸이를 보았다. 한결 같은 사람이다. 옛날에는 그런 사람을 시시하다고 생각했는데 벨라의 한결 같음은 좋았다. 이 사람이 이전처럼 세상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이어서? 스스로에게 자문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던 리딜은 벨라가 건네는 포장된 햄버거와 아메리카노를 받았다.
“또 봐요.”
답 대신 한숨을 돌려주는 일이 많았던 벨라가 조심히 가요, 리딜. 이라고 대답했다. 트라움 밖으로 나온 리딜은 트라움의 간판을 바라보다 자신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시시함을 잊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지금까지의 그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위험한 행동들로 시시함을 잊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는 참으로 단순한 행동이 시시함을 없앴다. 이런 행동으로도 시시함이 없어지는구나. 웃던 리딜은 주차장에 세워둔 자신의 자동차로 향했다. 그리고 자동차의 거울에 비치는 자신이 이전과 같은 평범한 모습임을 확인했다. 몇 번이나 확인한 끝에 지금 자신이 평범하게 비치는 것이 착각이 아니라 현실임을 알게 된 리딜은 핸들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웃다가 생각했다.
거절될 가능성이 크겠지만 벨라에게 선물을 안겨주고 싶다고.
4.
자동차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벨라는 리딜의 선물을 거절했다. 실패였으나 굴하지 않는 리딜은 다음 날에도 선물을 건넸다. 벨라는 두 번째 선물도 거절했다. 거절하는 벨라에게 다양한 핑계를 대며 선물을 받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어떤 핑계도 벨라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런 실패는 무척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성공하면서 맛보지 못한 실패임에도.
“선물은…”
“선물 말고 데이트는 어때요?”
이번에도 실패할 거라 생각하며 던진 제안에 긴 침묵이 흘렀다. 당황했나? 그렇게 생각하며 벨라가 내어줄 ‘거절’을 기다리던 리딜의 귀를 “일요일이라면요.”라는 벨라의 목소리가 두드렸다. 다른 카페에서는 기분 내키는 대로 주문을 바꿔대는 곤란한 손님이었지만 이 카페에서는 주문만은 하나로 통일하는 ‘주문만’ 고마운 손님인 리딜의 어두운 감청색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좋아요. 일요일. 무르기 없기에요.”
많은 생각이 스친 듯한 표정이 되었던 벨라가 리딜이 건네주는 휴대폰 번호가 적힌 명함을 받았다. 자신의 휴대폰 번호가 적힌 명함을 답례처럼 건네준 벨라가 입술을 열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시죠?”
“네, 오늘은 햄버거 뺄게요.”
5.
첫 데이트는 성공적이었다. 벨라는 트라움에서보다 편한 모습으로 많이 웃었고 리딜은 벨라와 있으면 세상이 더 이상 시시하지 않고 반짝이는 무언가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점점 세상이 예전처럼 평범하게 보인다는 것도. 기괴한 모습으로 보이던 시기가 꿈처럼 느껴졌다. 현실인데. 그래서 이전보다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사이가 되었음에도 망설이는 걸지도 몰랐다.
두 번째 데이트라는 관계의 변화를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상황을.
벨라가 상대라면 실패도 두렵지 않았었던 시간들이 거짓인 것처럼 망설이면서도 카페에 찾아온 리딜을 벨라가 맞이했다. 비가 거세게 내리는 날이어서 여기저기 흠뻑 젖은 리딜에게 벨라가 물었다.
“우산은요?”
“난 차 있는 사람이잖아요.”
“비를 가볍게 보지 마세요.”
“감기 조심하라는 얘기죠?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벨라. 아, 오늘은 더 주문 안 받겠네요.”
시간을 확인한 리딜이 손을 흔들었다. 주문은 다음에 할게요. 작별의 인사를 남기고 트라움 밖으로 나온 리딜이 거세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주차장을 향해 걸어가던 순간이었다. 비에 젖은 도로를 걷는 발소리가 리딜의 귀를 두드렸다. 그리고,
“우산 가져가세요.”
그걸 말하려고 이 빗속을 뛰어오다니. 비에 푹 젖은 리딜은 우산을 썼음에도 뛰어오느라 비에 젖어버린 벨라를 바라보다가 웃었다. 답잖게 망설이며 도망치는 것도 이제는 무리였다. 인정해야했다. 세상 사람들이 평범하게 비치기 시작한 지금도 하이네 벨라크루즈만은 여전히 다른 사람보다 빛나는 이유를. 한때는 희망으로 생각했던 청년의 앞에 선 리딜이 입술을 움직였다.
“이번주 일요일에 시간 있어요?”
“우산부터…”
“데이트 하고 싶어요, 벨.”
멋대로 희망이라 생각했다가 사랑하게 된 당신이랑.
우산을 받으면 대답하겠다는 벨라의 말에 우산을 받은 순간, 벨라가 리딜의 손을 잡았다. 순순히 벨라를 따라간 리딜은 트라움에 돌아온 벨라가 건네주는 수건을 받았다. 여분으로 놔둔 것으로 보이는 옷도 같이 건넨 벨라가 말했다.
“당신이 감기에 안 걸리면요.”
승낙의 대답을 한 벨라의 두 팔을 잡아서 끌어당긴 리딜은 순순히 자신의 품에 안긴 벨라의 얼굴에 키스를 비처럼 뿌리며 말했다.
“네, 나는 튼튼하니까요. 감기는 안 걸릴게요.”
귓가에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말한 리딜의 입술이 벨라의 입술을 덮었다. 돌아올 일요일, 자신의 이 행동이 벨라를 감기에 걸리게 만든다는 슬픈 미래를 알지 못한 채로.
*
리딜벨라 4주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하합니다~!!
저번에 썰로 풀었던 벨라만 동물머리를 한 기이한 형체로 보이지 않는 리딜로 풀었던 리딜벨라 썰을 4주년 기념 연성으로 짠~하고 가져왔음!
쥐가 즐겁게 읽어줬으면 좋겠다!^3^
언제나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내가 쥐랑 벨라 많이 좋아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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