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회귀한 헌터의 새로운 목적

<span class="sv_member">에메트</span>
에메트 @acidcatsle
2026-02-07 19:02
1.
생존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이 늘어날 만큼 세계는 빠르게 변화했다. 던전. 헌터. 길드. 세계를 변화하게 만든 것들이 마지막을 향해 걸어가는 해린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마지막에 스쳐간 것은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수많은 몬스터를 나이프로 찢어발기며 상어라는 별명을 얻은 금발의 여성 헌터. 왜 지금 당신의 얼굴이… 의식이 사라졌다. 끝을 맞이한 해린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2.
해린은 자신의 귀를 두드리는 박수 소리의 주인들을 본래 색을 컬러 렌즈로 덮어놓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양부와 양모. 해린의 인생을 꼬아놓는데 한 몫을 한 두 사람에게서는 병원 특유의 냄새가 났다. 각성한 능력자는 오감이 일반인보다 몇 배는 발달한다. 이 발달을 선택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 해린은 자신의 상황을 다시 정리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은 모든 기억을 가진 채 회귀했다. 섬도시였던 언더시티에 세계 최초로 길드를 만들어서 수많은 헌터들을 언더시티로 날아오게 만들었던 S등급의 헌터처럼.

“정말 잘 됐어. 축하해.”

죽은 딸과 똑같은 이름을 해린에게 붙인 양모가 자신의 상황에 대한 정리를 끝마친 해린을 바라보았다. 눈물 가득한 눈을 한 양모는 이제부터 병석에 누워서 죽어가는 동생에 대해 이야기하겠지. 대부분의 회귀자들은 이전의 생과 다른 선택지를 골랐겠지만, 길드로 들어가지 않으면 양부모의 품에서 독립할 수 없는 해린은 쉽게 거절이란 선택지를 고를 수 없었다. 그래도 이번 생에서는… 고민하는 해린의 귀를 낯익은 길드의 이름이 두드렸다.

크리센서멈(Chrysanthemum). 이름만은 낯익은 그 길드는 해린이 회귀 전에 마지막으로 떠올린 상어라는 별명을 가진 헌터, 테리어드 W. 매저즈가 속한 길드였다. 바쁘게 던전을 누비고 다닐 테리어드가 속한 길드가 거절을 선택하려는 이 순간에 튀어나올 줄이야. 해린은 자신의 목적을 알린 유일한 사람의 얼굴―지금은 7년 전이니 테리어드는 27살인 그때보다 어린 모습이겠지만―을 떠올리며 입술을 열었다.

생존. 유치하다면 유치한 제 목적을 듣고 예상과 다르게 웃지 않았던 테리어드와 같은 길드라니. 자신이 회귀한 이유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테리어드와 같은 길드에 가입한다는 미래 하나로 이 삶이 나쁘게 흘러가진 않을 거라는 참으로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3.
양부모의 제안을 수락하고 가입한 길드도 이전 생에서 가입한 길드와 마찬가지로 가입을 원하는 헌터를 테스트했다. 이전 생의 경험으로 무척 쉽게 그 테스트를 통과한 해린은 길드가 자신을 위해 마련해준 ‘집’을 바라보았다. 하우스메이트 한 명과 함께 살 집이긴 하지만 무척 넓었다. 방 세 개에 욕실 두 개. 문제는,

길드에서 준 특수한 카드키를 가져가자 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이 집을 독점했던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닿는 숏컷 머리카락을 가진 갈색 피부의 여성 헌터, 테리어드의 모습이 렌즈에서 해방된 해린의 바다색 눈을 채웠다. 짐이 담긴 가방을 손에서 놓고 테리어드의 앞에 선 해린이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이 집에 살게 된 이해린입니다.”
“테리어드에요. 어서 와요.”

이해린 씨. 이름인 해린으로 편하게 부르면 된다고 대답한 해린은 잘 부탁한다는 말을 덧붙인 뒤, 짐을 가지고 테리어드가 알려준 빈 방으로 향했다. 짐을 정리한 해린은 일 때문에 테리어드가 밖으로 나가서 더욱 넓게 느껴지는 집에서 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테리어드는 회귀하지 않은 것 같았다. 회귀 사실을 숨겼을 가능성도 있지만, 회귀하면서 가지게 된 자신의 새로운 능력인 ‘판별’에 테리어드가 회귀자란 정보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다행이지.”

죽음을 경험하지 않으면 회귀할 수 없다. 그리고 회귀를 통해 손에 넣은 새로운 삶이라는 기회가 회귀자에게 이득만 주지는 않는다. 해린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던전의 보스였던 몬스터는 새로운 삶이라는 기회조차 실패하고 인간으로서의 자신조차 잃어버렸으니까. 그 말로를 본 상황에서 테리어드도 회귀자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마음이 지금보다 더 복잡해졌을 거라 생각하며 해린은 포크를 내려놓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이 테리어드를 마지막에 떠올린 이유를 이제 안다. 해린은 테리어드를 좋아했다. S급 헌터이며 눈부신 미래가 기다릴 테리어드에게는 자신과 얽히는 것보다 더 좋은 선택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마음을 접고 고백을 포기했지만. 이번 생에서의 목적을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로 정한 해린이 다시 포크를 들었다.

자신이 이 세계에서도 눈부신 미래를 향해 나아갈 테리어드를 사랑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번 생에서는 테리어드를 빨리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좋았다.


4.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이전에는 후회했던 선택들을 자신이 원하는 선택들로 바꿔가며 회귀 이후의 삶을 즐기던 해린에게 주어진 두 번째 임무는 던전 공략이었다. 두 명만이 들어갈 수 있는 그 던전은 한동안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던전이었다. 보스 몬스터가 두 명만이 들어갈 수 있는 던전에서는 출몰하지 않았던 등급 측정 불가의 드래곤이라, 맨 처음 들어갔던 두 명의 헌터가 사망하고 던전 브레이크 직전에 S등급 헌터들로 공략해서 던전 브레이크의 위기를 막았던 던전, 비터크레스(Bittercress).

영상을 몇 번이나 봐서 던전을 공략하는 매뉴얼까지 만들 수 있는 그 던전을 자신이? 심지어 파트너로 선택된 사람은 회귀 전의 생에는 이 던전의 공략 멤버로 뽑히지 않았던 테리어드였다. 자신의 회귀로 이 세계가 바뀌어가고 있는 걸까? 회귀의 이유조차 모르는 회귀자는 자신의 파트너로 정해진 테리어드를 보았다. 던전에 함께 들어가 등급 측정 불가의 드래곤을 함께 물리치게 된 테리어드가 푸른 눈으로 해린을 보며 물었다.

“걱정되나요?”
“유능한 선배가 함께인데 걱정될 리가요.”
“다행이네요, 해린.”

이번에 공략하게 될 던전에서 등급 측정 불가의 드래곤이 나타난다는 말을 해도 믿을 사람은 없다. 하물며 테리어드는 회귀한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매뉴얼이라도 만들어두기로 하며 해린은 방금 전에 자신의 패드로 전송된 던전의 자료를 확인했다.


5.
테리어드의 나이프가 드래곤의 핵을 꿰뚫는 모습을 보며 해린은 방금 전, 테리어드의 외침을 생각했다. 몬스터의 공격 범위를 정확히 알지 못 한다면 말할 수 있는 좌표. 그 좌표를 테리어드가 외쳤다. 자신을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자신만이 이 세계의 유일한 회귀자라고 믿고 있었던 해린은 또 한 명의 회귀자일 가능성이 큰 테리어드의 곁으로 다가갔다.

“고맙습니다. 테리어드 덕분에 다치지 않았어요.”

확신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 테리어드에게도 특수한 능력이 있었다면 이 상황은 말이 된다. 당신도 회귀했나요? 질문 하나로 끝날 간단한 상황에서 해린은 입을 다물었다. 만약 같이 회귀했다고 해도 그걸 감춘다면 테리어드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결론을 내린 해린의 뺨에 테리어드의 손이 닿았다. 장갑을 벗은 손은 따뜻했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요.”

괜찮아요, 해린.
해린이 질문을 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목소리는 더욱 따뜻했으나 해린은 침묵했다.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는 목적과 반대되는 선택이었다.


6.
당신도 회귀했나요? 그 질문을 삼키고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테리어드와 생활하던 해린은 오랜만에 겹치게 된 휴일에 테리어드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테리어드는 해린의 데이트 신청을 흔쾌히 승낙했다.
데이트 당일, 얼마 전에 해린이 구입한 자동차에 함께 탄 두 사람은 바다가 잘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나누는 대화에는 일과 관련된 이야기는 없었다. 일상의 이야기가 화기애애하게 오가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다소 풀어진 복장으로 있는 집과는 다르게 단정한 복장의 테리어드를 보며 해린은 웃었다. 회귀의 이유는 여전히 모른다. 앞으로도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람의 곁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몬스터가 되는 비침한 말로만은 걷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해린은 입술을 움직였다.

“당신이 싫지 않다면 함께 바다를 보고 싶어요. 괜찮을까요, 테리어드?”

픽 웃은 테리어드가 말했다.

“난 이미 당신과의 데이트를 승낙했어요, 해린.”

어디를 가든 따라가겠다는 의미임을 깨달은 해린은 빨라지는 심장의 고동과 달리 얼굴이 붉게 물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안도하며 자른 스테이크를 입에 넣었다.

“마지막은 야경. 낭만적인 데이트 코스네요.”

언더시티라는 섬도시의 야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이 곳은 해린이 회귀 전에 무척이나 좋아했던 장소였다. 해린은 자신의 데이트 코스에 낭만적이라는 평을 한 테리어드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테리어드의 손을 놓았다. 헌터라는 삶을 완전히 잊은 데이트였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다. 그래서,

“우리한테는 낭만이 어울리지 않지만요.”

꺼낼 수 있었다. 예전 회귀 이전의 삶에서 테리어드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해린의 말을 들은 테리어드는 맞아요. 우리에게는 낭만이 어울리지 않죠. 라고 대답했다. 회귀하기 전에 해린이 테리어드에게 돌려주었던 대답이 눈앞에 있는 테리어드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로가 회귀했음을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확인한 두 사람은 던전에서와는 다른 분위기 속에서 침묵했다. 침묵을 깬 사람은 해린이었다.

“새로운 목적이 생겼습니다.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는 목적. 그래서 마지막에 생각난 당신을 일찍 만나려고 당신의 곁에 왔어요. 지금이라면 알 수 있습니다. 내 목적이 바뀐 이유는… 자신의 마음을 묻었던 게 이전의 삶에서 가장 큰 후회이기 때문이겠죠.”
“두 번째 기회를 얻어도 수많은 사람들이 후회를 경험해요.”
“맞아요. 나도, 당신도 거기서 벗어날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해린은 자신을 바라보는 테리어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신과는 다른 목적을 품고 두 번째 삶을 걸어가는 테리어드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자신을 향해 내밀어진 해린의 손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가늠하는 것처럼. 혹은 생각에 빠진 것처럼.

“당신 삶의 파트너가 된다면 후회를 해도 나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긍정적이네요. 이전의 당신과 다르게.”
“여유라고는 조금도 없는 모습이 당신에게는 긍정적으로 보였다니 다행이네요.”
“그 말을 입에 올릴 정도의 여유는 있군요.”

대답을 마친 테리어드의 손이 해린의 손을 잡았다. 해린은 손을 잡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자신을 끌어당긴 테리어드의 품에서 테리어드를 올려다보았다. 

“놀라길 바랐나요?”“조금은요. 하지만 놀라지 않는 당신도 나쁘진 않네요.”

익숙해서.
덧붙인 테리어드는 픽 웃으며 해린을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품에서 꺼낸 무언가를 해린을 향해 내밀었다. 말로 하는 대답보다 더 확실한 긍정을 뜻하는 ‘나이프’가 해린의 앞에 있었다. 테리어드에게 받은 나이프를 품속에 넣은 해린은 테리어드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아름다운 야경보다 더욱 강렬하게 자신을 매혹시키는 테리어드의 목을 끌어안은 해린의 입술이 움직였다.

“최고의 대답을 한 내 삶의 파트너님, 키스해도 될까요?”

질문의 대답은 입술을 뒤덮은 빠른 온기였다.


*
티아해린 9주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하합니다~!!시간이 빠르게 흘러서 어느샌가 9주년이 되었네요! 전부 유님이 함께해주신 덕분인거 같아요.올해도 건강 잘 챙기시고 좋은 일들 가득한 하루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늘 감사합니다~ 이번 연성은 회귀물로 준비해봤어요!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유님이랑 티아양 제가 많이 좋아하고 사랑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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