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수의 대가
01.
평범한 인생과 어울리는 평범한 마지막이었다. 짝사랑하는 사람과의 데이트 도중이었다는 점에서는 낭만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고사라는 점에서 불운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그 평범한 마지막에 카멜리아 테슬라는 바랐다. 죽고 싶지 않아. 강한 바람에 화답하듯 나타난 것은 천사가 아니라 악마였다. 새까만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악마. 카멜리아를 죽음의 늪에서 구한 짝사랑하는 사람과 똑같은 모습의 악마는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살고 싶어, 클라이드?”
카멜리아 테슬라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02.
상대를 유혹해서 마음을 빼앗으라는 제안을 받은 수많은 매체의 주인공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구매한 책과 블루레이에서 본 장면들이 카멜리아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살고 싶어? 라는 질문에 상대가 악마라는 것은 무시하고 고개를 끄덕인 자신이 판 무덤이었다. 아, 죽기 직전이니까 무덤은 아니고 무덤의 문일지도. 생각을 수정하며 손에 든 커피를 본 카멜리아는 이 추운 겨울, 옥상에서 만나자는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인 제 짝사랑 상대를 바라보았다. 스트로베리 블론드의 머리카락과 메탈에 가까운 차가운 회색 눈동자를 가진 신사, 다니엘 로렌 윈체스터. 신사복을 입히고 지팡이를 들려준 뒤, 19세기 영국 길거리에 세워놓아도 어색하지 않을 신사의 모습을 한 그는 카멜리아가 살아남기 위해 마음을 빼앗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악마가 정해준 사람. 그 악마 역시 다니엘이란 게 문제였지만. 같은 사람인지 아니면 모습만 똑같은 다른 사람인지 절대 대답해주지 않고 의문만 늘려가는 또 하나의 다니엘을 머릿속에서 지운 카멜리아는 다니엘에게로 다가갔다.
“다니엘 씨, 그 날은 죄송했어요. 갑자기…”
“갑자기?”
“쓰, 쓰러져서. 저도 긴장해서 빈혈이 올 줄은 몰랐거든요.”
지병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인 카멜리아는 엉뚱하고 자유로운 신사의 얼굴에 번진 웃음에 빨라지는 고동을 느꼈다.
“클라이드의 말대로 하지. 그런데 얇게 입었군. 겨울바람에 날아가겠어.”
“옥상이라 겉옷을 안 가져와서 그래요.”
“겉옷은 챙겨. 다음 데이트에도 쓰러지면 곤란하니까.”
곤란하다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카멜리아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에게 겉옷을 벗어서 걸쳐준 다니엘이 방금 ‘다음 데이트’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다음이라니. 다음이 있다니. 데이트에 실패하면 다음이 없다는 인터넷의 수많은 글들을 보고 노심초사 했던 나날들에 안녕을 고하며 카멜리아가 활짝 핀 얼굴로 다니엘을 본 순간이었다.
“데이트 신청을 성공하다니. 역시 내 눈은 정확하군.”
카멜리아의 목숨줄을 쥔 악마 다니엘이 카멜리아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빙그레 웃었다. 똑같은 얼굴이지만 악마는 거침이 없었다. 뭔가를 깨버린 것처럼. 혹은 그동안 바라왔던 상황을 악마라는 핑계로 하는 것처럼. 후자는 아닐 것이다. 다니엘 로렌 윈체스터는 카멜리아 테슬라를 짝사랑하지 않았으니까. 같은 마음을 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하지만.
“당신이 나오면 기억이 없어진다면서요.”
“없어진다는 표현은 오답이야, 클라이드.”
“오답이라고 말하면서 정답은 안 가르쳐주네요.”
“세상은 쉽지 않으니까.”
당신이 쉽지 않은 거겠죠. 라고 쏘아붙이려던 카멜리아의 손에서 커피를 빼앗아 간 악마는 아무렇지 않게 카멜리아가 입에 물었던 빨대를 물었다. 간접키스에 신경 쓰는 어린아이는 아니었지만 웃으면서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얼굴이 붉게 물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원하는 반응을 확인한 악마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커피를 넘겼다. 카멜리아는 커피를 받아들었다. 당분을 채우기 위해서 주문한 달콤한 커피가 아까보다 가벼워진 무게로 카멜리아의 손에 들렸다.
다니엘 로렌 윈체스터는 카멜리아와 다르게 달콤한 커피를 싫어한다. 그럼 똑같은 모습을 한 이 악마는―
“달게 먹는군.”
“단거 좋아해요?”
“똑같을까. 똑같지 않을까.”
맞춰봐, 클라이드.
카멜리아는 단서가 없으면 맞출 수 없다는 말을 삼켰다.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악마의 날개가 사라졌다. 악마의 시간이 끝난 것이다. 언제나의 종잡을 수 없는 신사로 돌아온 다니엘과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그를 배웅한 카멜리아는 다니엘이 가져가지 않은 그의 겉옷을 보았다. 살고 싶었다. 그 마음은 악마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 그때와 마찬가지인데 이상하게 다니엘을 볼 때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자신이 그의 마음을 빼앗는데 성공하면 악마는 무엇을 얻고, 다니엘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두려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카멜리아는 빨대를 물었다. 악마가 문 빨대였다.
03.
두 번째 데이트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입을 맞추는 상황까지는 생각하지 못 했던 카멜리아는 다니엘을 바라보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입맞춤이 성공이라면 카멜리아 테슬라는 드디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술에 닿은 것은 입술이 아닌 손등이었다. 사람의 체온이 느껴졌지만 입술이라기에는 너무도 큰 감촉을 느끼고 눈을 뜬 카멜리아는 그 날개를 드러낸 채로 자신의 입술에 손등을 댄 악마를 바라보았다. 빙그레 웃고 있지만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걸로 확신할 수 있었다.
“당신, 다니엘이죠?”
“아니.”
“긍정은 안 했지만 부정도 안 하는걸 보니 맞네요. 왜 자신을 유혹하라고 해요? 그게 당신한테 무슨 이득이 된다고…”
“네가 성공하면 알게 될 거야.”
“내 성공을 당신이 손등으로 막았잖아요. 질투해요?”
“키스가 성공이라고 생각하다니. 클라이드는 연애에 서툰 사람이군. 평가를 수정해야겠어.”
“말 돌리지 말아요.”
눈을 보면 대화를 더 이어나갈 가능성이 생길 것 같아서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았는데 그의 날개는 벌써 사라지고 있었다. 잽싸고 빠르고 얄미운 사람. 마음으로 악마를 향해 투덜거리던 카멜리아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카멜리아. 라고 부르는 다니엘을 보다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점점 깊어지는 키스가 머릿속에서 복잡한 생각을 지웠다.
04.
카멜리아가 다니엘에게 목걸이를 선물 받은 날도 악마는 잠잠했다. 이제 사귀는 사이니까 자신이 다니엘의 마음을 빼앗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결과를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습을 감춘 것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다니. 다음 행동이 예측하기 쉬운 자신과 달리 악마는 다니엘처럼 예측하기 어려웠다. 역시 악마와 다니엘은 모습만 같은 게 아니라 동일인물이 아닐까? 현실에 새까만 날개를 단 악마가 숨어서 산다는 사실은 평범한 카멜리아에게는 별세계에서 벌어진 일에 가까운 상황이었지만 악마는 정말로 악마였다. 날개가 있고 자신을 구해줬다. 그런데 악마가 왜 자신을 위해 이런 복잡한 일을…. 카멜리아의 깊어지는 생각을 멈춘 것은 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였다. 카멜리아는 액정에 표시된 이름을 확인했다. 다니엘. 전화를 받자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만큼 연락도 종잡을 수 없는 연인이 카멜리아의 이름을 불렀다.
클라이드. 힘이 없는 목소리에 놀란 카멜리아가 물었다. 집이에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으나 그의 직업―작가―을 생각하면 집일 확률이 높았다. 비번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결심한 카멜리아는 걸음을 옮겼다.
소파에 누워있는 다니엘의 등에 돋아난 반쪽만 남은 새까만 날개가 카멜리아의 호박색 눈을 채웠다. 푸른 수염의 방을 열었을 때, 그의 부인은 이런 기분을 느꼈을까. 뜨거움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기묘한 기분. 그런 기분을 느끼면서도 카멜리아는 자신이 책 속의 부인과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카멜리아 테슬라는 푸른 수염을 떠난 부인과 다르게 악마와 자신이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 눈앞의 남자를 사랑했다. 속았음에도 분노보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자신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싶다는 말을 어렵게 한 이 서투른 사람이.
다가가서 끌어안았다. 다니엘은 카멜리아를 밀어내지 않고 가만히 안겨 있다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속인 사람에게 해주는 마지막 선물이 포옹이라니. 클라이드는 손해를 많이 보겠어.”
“그런 내가 걱정되나요?”
“손해를 많이 보겠다는 말을 걱정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너뿐일 거야.”
“다니엘 로렌 윈체스터는 걱정하지 않는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걱정되면 평생 붙어있어요.”
그게 내가 원하는 사과 방법이에요.
자신을 속였다는 이유로 생명의 은인에게 자신의 곁에 평생 붙어있으라는 벌을 내린 카멜리아는 머리카락에 입을 맞춘 다니엘이 두 팔로 자신을 끌어안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물어야 할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니의 나쁜 면도 좋은 면도 좋아하니까… 앞으로는 솔직하게 말해요.”
이 얄미운 악마의 사랑에 취해있고 싶었던 카멜리아가 다니엘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얼굴은, 다니엘이 자신을 이름으로 불러준 순간에야 보여줄 예정이었다.
*
올해도 왔다.
다니카멜 1월 1일 연성. 짜라란~! 에유인데 티아가 즐겁게 읽어줬으면 좋겠다. 늘 고마워.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티아랑 다니 내가 많이 좋아해. 사랑해. 와라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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